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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디터의 신혼일기] 결혼하고 나면 연애 때 기념일은 어떻게 해?

1년에 하루만큼은 처음 연애를 시작하던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 김현유
  • 입력 2019.07.12 16:48
  • 수정 2019.07.12 16:50
ⓒWestend61 via Getty Images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현존하는 최고의 로맨틱 가이♂ 중 한 사람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부러 자신의 생일날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시라도 결혼 기념일을 잊을까봐 그랬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던 2007 대선도 12월 19일에 치러져 의도치 않게 전국민이 그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알아버리게 됐다. 정말 사실 그다지 알고싶지 않은 그야말로 Too Much Information이었지만 나도 알고 남편도 알고 허프포스트 임직원 일동도 알고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마저 알고 모두의 뇌리에 박혀버렸으니 그 로맨틱한 영향력(?) 하나만큼은 정말 인정...^^...

사실 오늘, 그러니까 7월 12일은 대충 남편이 나한테 처음 고백 비슷한 것을 했던 날이다. 왜 고백이 아니라 고백 비슷한 것이냐면 우리 사이엔 썸 같은 것도 없었고, 길거리에서 어쩌다 말을 걸어와 이름과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로 지낸지 2주 밖에 안 됐는데 대뜸 ”넌 나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며 강압적으로 굴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남편의 얼굴을 본 순간 이야기의 장르는 로맨스로 전환되었다. 그는 내 이상형이었으니까. 나는 얼빠다.

썸도 없었고 ”사귀자”는 고백도 없이 물 흐르듯 어느 순간 연인이 되어있던 우리는 그렇게 구라파(歐羅巴) 스타일의 연애를 지속했다. 그런 만큼 한반도의 유구한 문화인 ”오늘부터 1일!” 같은 것은 따로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해외 나가서 술먹고 다음 날 시뻘건 국물 못 먹으면 해장이 안 된다고 징징거리는 뼛속까지 K-Human인 바, K-Culture인 기념일 같은 것은 그래도 챙겨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귄 날짜가 없어서 기념일을 만들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대충 당신이 나에게 고백 비슷한 걸 한 날을 기념일로 삼자! 그래서 매년 7월 12일에는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기념일 삼아 한옥을 빌려 한복을 입고 논다든가,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를 한다든가, 뭐 그런 이벤트를 하며 보냈다. 정말 애국적이고 건전한 나날이었단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N주년이니 1000일이니 하는 기념일이 몽땅 사라졌다. 어차피 처음 사귀기로 한 날은 애초에 없었고, 결혼기념일에 결혼을 했던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결혼기념일만 챙기는 게 맞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거창하게 명품빽을 선물해주는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물론 그런 기념일이 법적으로 제정돼 사법부의 강제 하에 샤넬이나 입생로랑 등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누구라도 만세를 외치겠지? 히힣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섭섭한 마음의 근원은 이거였다. 결혼기념일만 챙기며 살다 보면, 앞으로 살아갈 동안 우리는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될 것 같다!는 점. 아직 둘 뿐인 지금도 막상 연애 때 얘기를 잘 안 하게 되는데, 기념하는 날마저 없어지면 우리가 연애를 했었다는 사실조차 깜깜 추억속에 묻혀버릴 것 같은 것이다. 그러니 그냥 1년에 하루쯤은 정해 놓고 연애 시절을 추억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는 게 솔찍헌 심정인 셈이다.

거창하게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칼질하면서 선물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추리닝 차림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더라도 하루만큼은 처음 연애를 시작하던 그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맨날 마주하고 편안하게 대하는 가족이 아니라 연애 초반 잠깐이라도 안 꽁냥거리면 미칠 것 같던 연인의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넌 나랑 결혼하게 될 거야”라고 말하던 때 나를 보던 눈빛으로, ”어머 이 오빠 완전 혼다 케이스케 닮았어”라고 생각했던 때 그를 보던 마음으로.

살다 보면 더 많은 기념일들이 생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7월 12일은 추억속에 묻히겠지만, 우리 둘이서만 가족을 이루고 있는 지금의 마음은 그렇다. 그리고 축하할 날이 많은 건 좋은 거잖아?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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