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7월 11일 12시 0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7월 11일 13시 30분 KST

'트럼프 혹평' 영국 대사가 사임했다. 차기 유력 총리 보리스 존슨에게 비판이 쏟아진다.

대럭 대사는 보리스 존슨이 자신을 보호하기를 거부하자 사임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ASSOCIATED PRES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국 정부를 신랄하게 평가한 외교전문이 유출돼 난감한 처지에 몰렸던 킴 대럭 미국주재 영국 대사가 10일(현지시각) 끝내 사임했다. 문건이 유출된 지 사흘 만이다.

대럭 대사는 곧 취임할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자신을 보호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사임을 결심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악담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총리의 보호마저 기대할 수 없다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종종 ‘영국의 트럼프‘라고도 불리는 존슨은 전날(9일) 보수당 당대표 TV토론에서 ‘총리가 되면 대럭 대사를 보호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여섯 번이나 명확한 답변을 거부했다. 사실상 교체를 시사한 것이다.

퇴임을 코앞에 두고 있는 테레사 메이 총리가 관례를 깨고 퇴임 직전 직접 후임자를 임명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존슨이 ‘트럼프에게 아첨할 만한 인물’을 후임으로 임명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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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미국주재 영국 대사로 활동해 왔던 킴 대럭. 그는 외무부에서만 40년 넘게 경력을 쌓아왔다.

 

″현재 상황은 제가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럭 대사가 사임서에서 밝혔다. ”제 임기는 올해 말까지 계속됩니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새 대사를 임명하도록 하는 게 책임있는 행동이라고 믿습니다.”

유출된 문건에서 대럭 대사는 트럼프와 트럼프 정부를 ‘기능장애‘, ‘예측불가’ 등으로 묘사했고, ‘어설프고 서투르다’고 평가했다. 민감한 내용이긴 하지만, 이게 기밀 외교전문임을 감안하면 특별히 경우에 어긋난다고 볼 수는 없다. 부적절한 일도 아닐 뿐더러 위법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 내용이 보도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럭 대사와 메이 총리를 싸잡아 비난했다. 대럭 대사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고, 실제로 공식 만찬 초대 명단에서 그를 제외시켰다. 영국과 미국의 통상장관 회담에도 배석하지 못했다.

영국 정부는 주재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평가”를 본국에 보고하는 게 대사의 정당한 임무이자 권한이라며 대럭 대사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존슨과 경쟁하고 있는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 역시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대럭 대사에게는 곧 자신의 새로운 ‘보스’가 될, 차기 총리 ‘0순위’인 존슨의 입장이 가장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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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차기 총리(보수당 대표) 후보 보리스 존슨(왼쪽)과 제러미 헌트가 TV토론을 벌이고 있다. 2019년 7월9일.

 

한편 정부와 당 내에서도 존슨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앨런 던컨 외무부 차관은 존슨에게 ”한심한 태만 행위”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훌륭한 외교관을 희생시킨 것이다.”

보수당 의원 패트릭 맥글로린도 가세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외국 정부의 공격을 받고 있는 성실한 공무원을 지지하지 못한 인물이 차기 총리가 되겠다니 볼썽사나운 일이다.”

가디언은 대럭 대사는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존슨이 해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문건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유출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이건 친(親)-유럽연합(EU) 성향으로 알려진 대럭 대사를 브렉시트 찬성파로 교체하기 위한 정치적 기획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