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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 총장은 "국회의원 수준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기획] 국회는 어쩌다 혐오시설이 됐나? - (3)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 인터뷰

  • 백승호
  • 입력 2019.07.11 09:56
  • 수정 2019.07.11 13:08

정치인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민의를 살피고 그것을 토대로 국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이 간단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서일까요? 한국 정치, 특히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했습니다. 사람들이 국회의원의 말을 무조건 믿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국회가 사람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불신이 더 커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프포스트는 모바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와 함께 정치혐오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국회에 대해 큰 불만과 불신을 보인 가운데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을수록 그 불만의 정도는 더 컸습니다.

정치가 무엇인지를 정치권에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들을 찾아가 직접 그 해명과 반성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진짜 정치’의 단면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기획인터뷰는 보좌관 김성회, 국회의원 금태섭,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를 상대로 진행했으며 총 3편에 걸쳐 게재됩니다.

 

 

국민들이 왜 이렇게 국회의원을 싫어하냐고 묻자 유인태 총장은 ”한 때는 국회의원이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렸던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87년 6월 항쟁을 통해 독재정권을 끌어낼 당시에만 해도 우리 국민들은 정치와 정치인에 뜨거운 열정과 관심을 보냈다는 설명이다.

그러부터 31년이 흘렀다. 이제 국민들은 국회를 믿지 못한다. 무능력하고 싸움만 일삼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유인태 총장은 ”국회는 원래 싸우라고 만든 곳”이라고 말하면서도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싸움만 하고 끝내니 욕을 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92년, 45세의 나이로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7대,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지난 2018년부터 국회 사무총장을 지내고 있다. 스스로를 ”정계은퇴상태”라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정치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있는 27년 경력의 정치 원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국민들이 왜 이렇게 국회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나?

우리나라처럼 정치인을 물갈이하는 나라가 없다. 총선 한 번 하면 초선 의원이 50% 가까이 들어온다. 선거가 시작되면 득표율을 올리기 위해 여야 할 것 없이 인재영입위원회를 만들어 명망있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데려온다. 그런데 이 사람들 국회 들어오면 기존 정치인이랑 똑같은 비난을 받는다. 사람은 계속 물갈이하는데 국회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국회의원의 수준 문제가 아니다. 제도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무엇을 해야 하나? 나라의 미래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거대 양당 체제 하에서는 두 정당이 정권 탈환을 가지고 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선거가 끝나는 다음날부터 정권을 잡은 쪽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빼앗긴 쪽은 어떻게 하면 5년 후에 다시 탈환할지만 고민한다. 원래 국회는 싸우라고 만든 곳이다. 싸우되 타협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합의 없이 싸움만 하고 끝나는 게 지금 국회다.

지금 한국 사회의 이해관계는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같은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기업도 재벌기업과 중견기업, 영세기업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이렇게 복잡다단하고 다원화된 사회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두 당만이 살아남는 제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대표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선거제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의회와 분산해야 한다. 제도를 이렇게 바꾸지 않는다면 정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싸움박질만 하다 끝난다.

 

그래서 이번에 선거제 개편안이 나왔다. 비례성을 높여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게 골자다. 당연히 비례대표 의원의 숫자가 늘어야 하는데 여론의 반대가 거세니까 전체 의원 숫자는 그대로 두고 지역구를 줄이겠다고 한다.

해방 당시에는 국회의원이 인구 10만명 당 한명 꼴이었다. 지금 우리 국민이 5천만이니까 그대로 따르자면 의원 수가 500명은 되어야 한다. 정치학자들 논문을 보면 400여명이 적당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그게 적정수면 뭐하나? 국민들은 오히려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 꼴보기 싫은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자고 하면 동의하겠나?

다만 왜 의원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 한다. 의원 수를 300명으로 유지한 상태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하게되면 지역구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농촌에 더 큰 피해가 간다. 안그래도 농촌에 사람이 없어서 다섯 개 시군에 국회의원 하나 뽑을 정도인데 지역구 숫자를 줄이게 되면 여섯개 일곱개 시군에 국회의원 하나를 뽑게 된다. 그러면 농촌의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겠나? 농촌의 박탈감이 커지지 않겠나?

 

국회가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의회는 여전히 힘이 약한 것 같다. 청와대 청원만 해도 그렇다. 사법부, 입법부가 처리해야 할 현안들을 청와대가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

국민들은 청와대가 제일 힘이 센 곳인지 알고 있으니까 거기에 청원을 올린다. 그러나 청원을 잘 살펴보면 청와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올라온다. 청원 올라온 것 중에 청와대가 해결한 게 하나라도 있나?

얼마 전 ‘어느 당을 해산하라’는 청원이 경쟁적으로 올라왔다. 청원이 오히려 국민 갈등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은 좋지만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이 이런 데서 불만을 갖고 분노를 하는구나’ 일깨워주는 역할은 하고 있다고 본다.

 

유인태 사무총장은 “청원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국회에서 새로운 전자청원제도를 준비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 국민들은 꼭 국회의원을 통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국회에 청원할 수 있다. 국회 청원은 ‘답변’에 그치기 쉬운 청와대 청원과는 달리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에 더 실질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다.

 

언론 등은 한국 정치를 비판하며 보좌관 없이 일하는 스웨덴 국회의원이나 월급 없이 명예직으로 일하는 외국의 지방의원등을 모범사례로 꼽는다. 한국의 정치가 그만큼 후진적인 것으로 볼 수 있나?

물론 유럽이나 외국의 정치제도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지방 의원들 무급으로 하자는데 그렇게 되면 돈 없는 사람이 어떻게 공익활동을 하겠나? 먹고 살만한 동네 유지들만 지방의회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보좌관 숫자 문제도 단순히 볼 게 아니다. 독일 같은 나라는 의원이 직접 뽑는 보좌진 숫자만 따져보면 한국보다 적다. 그러나 의회가 쓰는 예산은 우리보다 더 많다. 국회 사무처에 입법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충분히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박사들이 수두룩하다. 이 사람들 인건비로 많은 예산을 지출한다. 그나라 국회의원들은 사무처에 배치된 인력을 활용할 수 있으니 보좌관 숫자가 적어도 일하는 데 문제가 없다. 우리 국회 사무처도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 입법조사처도 만들고 전문 인력들을 확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언론사는 국회의원들이 연봉 14%를 셀프 인상했다고 보도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의 취재 결과 국회의원 연봉 14%인상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실제로는 공무원 연봉 인상률과 동일한 1.8% 인상이었다.

유인태 사무총장은 이 보도에 대해 “의원들이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국회 스스로가 비난을 자초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유 총장은 “의원들이 자신들의 처우를 자신들이 결정하는 구조기 때문에 불신이 생기는 것”이라며 “국회의원 월급, 보좌진의 수 같은 부분은 외부 기구에서 결정하게 하고 그 결정에 따른다면 불신이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민들은 어떤 기준을 갖고 국회의원을 평가해야 하나?

국회의원은 국익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 저출산에 고령화에 우리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원보다는 자기 지역구 예산 한 푼 더 가져가는 국회의원이 다음 선거에 당선될 확률이 높다.

예산을 살펴보면 정부도 나름대로 판단을 해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사용한다. 급한 지역에 먼저 도로도 깔고 다리도 놓는다. 그런데 힘 있는 정치인들이 그 예산 빼앗아서 덜 시급한 자기 지역구에 가져간다. 이건 새치기다. 우리 다 새치기 싫어하지 않나? 그런데 새치기 잘 하는 국회의원이 재선 확률이 제일 높다.

예전에 굉장히 개혁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 국회의원이 되자 마자 12월 달에 ‘제가 우리 지역구 예산을 이만큼 확보했습니다’ 하고 문자를 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니까 그런 문자를 안보내는 의원이 없더라. 나라 전체의 이익은 고려 안하고 자기 지역구에만 예산 많이 가져오는 의원들, 우리 국민들이 낙선시키는 안목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거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는 절대 잘하는 일이 아니다.

 

유인태 총장은 국회의원들의 ‘법안 실적’ 부풀리기 행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들이 의정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이미 나온 법안을 토씨 하나 고쳐서 제출하다 보니 같은 내용의 법안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유인태 총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의원들이 중복해서 발의하는 법안을 법제실에서 일괄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총장은 중진 의원들이 ‘법안 심사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관행’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입법 기관인 국회에는 각 분야별로 법안을 심사하기 위한 상임위가 나뉘어있다. 이 상임위 안에는 법안의 내용을 심사하는 법안심사 소위원회(이하 소위), 예산을 심사하는 예결산심사 소위, 청원을 심사하는 청원심사 소위 등이 있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곳은 법안심사 소위다. 하지만 3선 이상의 중진 들은 법안심사 소위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할 일이 거의 없는 청원심사 소위 같은 데서 일을 한다.

유 총장은 이런 문화에 대해 “한 3선만 됐다 하면 그런 데(법안심사 소위) 안들어간다. ‘뭐 꼰대같이 이런 거 하려 하냐’며 눈치를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안을 제대로 심사하려면 연륜 있는 의원의 안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희상 국회의장 이런 문제점을 고치고자 지난 4월 ‘일하는 국회법’을 만들었다.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국회는 법률안 심사를 분담하는 소위원회를 복수로 두게 된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의원들이 법안 심사에 참여할 수 있다.

 

ⓒHuffpost KR

 

시대가 변하는 속도에 비해, 정치권이 잘 못 따라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이 노화했기 때문에 젊은 층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의도에 정치 신인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안정적인 정치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독일이다. 독일 총리를 지낸 사람들 살펴보면 대개 16~17세에 정계에 입문한다.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때 입당하고 지방의회를 거치고 자질을 계속 검증 받으며 중앙정치 무대에 올라온다. 한국 청년들 중에서도 우리 공동체의 앞날을 결정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고 싶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치를 하고 싶은) 우리 청년들도 독일처럼 한 단계씩 밟아 올라오면 좋은데 한국은 그런 길이 막혀 있다.

2003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지방선거 기초의회 의원(시,군,구 의원)선거가 중선거구제로 바뀌었다. 제대로 중선거구제를 하려면 3~4명을 뽑아야 하는데 거대 양당이 야합을 해서 한 지역구에서 두 명만 뽑히게 만들었다. 이렇게 되니까 거대 양당 소속이면 무조건 당선이 된다. 무조건 당선이 되니까 예전 같으면 선거에 안 나왔을 사람들, 각 정당의 오래된 고참당원들이 기초의회에 다 덤벼들었다. 제도가 바뀐 뒤 서울시 구의회 평균 연령이 시 의회 평균 연령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 되어버렸다(광역 의회는 소선거구제로 한 명만 선출한다). 선거에 치열한 경쟁이 없는 거다.

여성 의무공천처럼 청년도 지방의회에 의무적으로 공천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의회에서도 지금처럼 2명만 뽑지 말고 한 4명씩 뽑아서 청년들도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청년들에게 길을 터줘야 청년들이 자기 지역기반 갖고 정치적 역량을 쌓고 중앙정치무대에 올라올 수 있다. 청년들 표 잡겠다고 무슨 공천 오디션을 해서 갑자기 국회로 불러들이고… 그 사람들 당선되고 나서 다음이 없다. 전직 국회의원으로 남는다.

 

ⓒHuffpost KR

 

은퇴 후 계획을 묻자 유 총장은 “무슨 일을 하겠냐, 내가 70이 넘었는데” 라며 손사레를 쳤다. 방송에서 눈치보지 않고 정치권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한 그였지만 ‘그것도 내 말이 먹혀야 떠들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작년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출마설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역할을 분명히 알고 움직이는 정치인이었다.

“나갈 사람이 없다든가, 아니면 있어도 다른 사람으로는 힘들고 너 나와야 혹시 조금 뭘 해 볼 만하다든가. 이런 정황이면 명분이 있는 건데. (지금 상황은)정치 신인들이 나가도 다 해 볼 만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실컷 해 먹은 노인네가 젊은 친구들 기회를 뺏는 거는 도리가 아니잖아요.”

- 2018.05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중

 

유 총장은 국회 사무총장으로 있는 동안 국회의원들의 잘못된 행태, 예산 낭비들에 대한 정보를 끝까지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국회사무처가 (의원들의 문제점을 밝히는) 정보를 공개했을 때 불려가서 혼났다”면서 “나는 더 이상 정치도 안 할 거고 나잇살을 먹었으니까 지X 들을 못한다”며 걸쭉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런 정보공개 자체가 의원들이 국민들로부터 지탄받는 걸 예방하는 효과가 꽤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 원로 유인태는 때로는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고 때로는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은 이해해야 한다며 그들을 변호했다. 국민들이 무작정 미워하지 않는 국회를 만드는 것, 건강한 정치를 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드는 것. 정치인 유인태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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