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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반일 후려치고 싶은 허수아비

반일과 관련한 주작 글들이 떠돈다

  • 박세회
  • 입력 2019.07.10 12:25
  • 수정 2019.07.10 16:41
ⓒ일간베스트

지난주 인터넷과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사진 한 장이 떠돌았다. 한 아파트에서 일본산 차량의 주차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사진 속 공지문에는 ”우리 아파트 1층, 지하주차장에 일본산 차량은 일체 주차할 수 없으니 다른 곳에 주차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실이라면 개인의 재산권을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침해한 매우 특이한 사례로 남았을 것이다. 

출처를 찾아봤다. 사진 속에 올라온 공지문 게시일은 7월 5일. 7월 5일 자로 검색되는 이미지 중 가장 게시 시간이 빠른 건 ‘그’ 사이트에 올라 온 게시글이었다.

사진 속에 슬쩍 드러낸 ‘주월’과 ‘2차’라는 정보로 광주 주월동의 2차 아파트를 검색한 결과 8개 아파트가 나왔다. 이중 대단지 3개의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보았으나 그중에는 이런 게시물을 올린 아파트가 없었다. 또 한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보통) 관리사무소 명의로 나가려면 직인이 찍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구글/일간베스트

그 사이트에서 광주 지역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소위 ‘주작’ 글일 가능성이 무척 높은 셈이다. 이런 게 주작인 걸 확인해야만 하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 내가 이렇게 불쌍한 짓을 하게 만든 그 사이트 유저가 밉다. 밉지만 또 A4 용지에 이런 글을 프린트 해서 벽에 붙이고 찍어서 올렸을 수고를 생각하니, 그 유저가 불쌍하고 안타깝고 정신건강이 염려되고 심정이 복잡하다. 

같은 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본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를 소유했다는 한 유저가 ”김치 테러를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원 글을 보면 ” 7월 3~5일 사이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김치테러를 당했다”라며 ”범인을 잡아 꼭 처벌하고 싶은데 이런 테러를 당한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조언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글이 잘못된 애국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식성에는 딱이었다. 댓글에는 ”국가간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윤봉길 의사를 더 욕되게 하는 행동”, ”무식함의 끝” 등의 댓글이 달렸다. 작성자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정치적인 의제로 바뀐 것이다. 

ⓒ피해자가 렉서스클럽코리아에 올린 사진

언론은 더했다. 조선비즈는 ”렉서스 차량에 김치 테러…日 경제제재에 난감해진 일본차 소비자들”이라는 기사에서 ”일본차에 김치를 투척한 사진까지 올라오는 등 일본 제품 소비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까지 늘면서 애꿎은 일본차 소유자들 역시 난감해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국민신문고에 투고까지 하면서 경찰이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는 일부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9일 경찰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렉서스에 뿌려진 오물은 김치가 아니라 취객이 구토한 토사물”이었다. 한 취객이 지난 4일 이 차량이 주차되어 있던 대구 달성군 현풍면의 롯데시네마 인근을 지나가던 중 이 차량 트렁크 부분에 구토를 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가짜 뉴스는 빨리 퍼지지만 가짜 뉴스에 대한 반론은 잘 번지지 않는다. 9일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온 날에도 해럴드경제 등은 ”‘김치테러’ 당한 렉서스 소유주 “이미 산 일본車, 어찌합니까””라는 기사를 발행했다. 

네이버에 ‘일본차 김치 테러‘로 검색하면 뉴스 카테고리에 아래와 같은 검색 화면이 잡힌다. 20시간 전에 토사물이라고 경찰이 밝혔음에도 뉴데일리 등이 19시간 전에 ”이건 아닌데… ‘일본차 김치 테러’ 소식에 네티즌들 한숨”이라는 기사를 발행한 걸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캡처

이는 허수아비를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일어난 참사다. 허수아비 후려치기란 비판하기 쉬운 소수의 의견이나 허위의 담론을 널리 퍼진 문제처럼 내세워 그 대상 전체가 같은 문제를 지닌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이를 공격하는 형태를 말한다. 작성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도 없는 워마드의 일부 게시글을 예로 들어 페미니즘 전체를 비판하는 행위가 그 좋은 사례다. 

첫 번째 사례는 악의를 가진 작성자가 후려치고 싶은 반일의 허수아비를 스스로 만들어 반일을 후려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전시한 사례로 볼 수 있겠고, 두 번째 사례는 원 작성자의 단순한 피해 사례를 일부 사람들이 반일의 허수아비로 열심히 떠받들고 전시한 사례로 볼 수 있겠다. 허수아비라도 일단 후려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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