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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에게 모유 수유를 하던 기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젖은 잘만 나왔다

(위 사진의 인물은 필자가 아닙니다)
(위 사진의 인물은 필자가 아닙니다) ⓒNarongrit Sritana via Getty Images

둘째 아들 임신 34주차 때 오른쪽 가슴에서 멍울이 있는 걸 발견했다. 오른쪽 가슴에서는 이미 젖이 나오고 있었다.

당시 두 돌 반이었던 큰아들에게 젖을 먹일 때는 왼쪽보다 오른쪽 가슴에서 젖이 훨씬 많이 나왔다. 하지만 오른쪽 가슴에 젖이 막힌 곳이 생겨 수유 기간 중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다. 이번에도 같은 곳에 딱딱한 부분이 생겨서 나는 비슷한 문제가 생긴 거라고 짐작했다.

임신 중에도 젖이 막히는 게 가능한가 싶어 그 주에 산부인과에 가서 물어보았다. 큰아이를 낳고 젖을 먹일 때 생긴 것과 비슷한 멍울이 오른쪽 겨드랑이에도 생겼다. 그 의사와 내가 만나던 다른 산부인과 의사들은 멍울이 별 것 아니라고 했다. 나는 34세였으며 임신 34주차였고, 수유 경험이 있었다. 모든 의사들은 내 증상이 젖 분비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아주 활달한 두살박이에게 배변 훈련을 시키고 있었고, 업무 강도가 높은 직장에서 전업으로 일하고 있었던 터라 안도했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남편 외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없는 외국이었다.

그리고 둘째를 낳았다. 태어난지 6주 뒤, 수유는 아주 수월했다. 첫째 때 힘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오른쪽 가슴에서 더 많이 나오긴 했지만, 양쪽 가슴에서 다 젖이 잘 나왔다.

둘째는 체중도 쑥쑥 늘었다. 하지만 오른쪽 가슴의 성가신 막힌 분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겨드랑이의 멍울은 테니스공 정도로 커졌고 아프기 시작했다. 강남 지역의 자연분만센터를 통해 수유 컨설턴트를 만나보기로 했다.

나는 한국 민족이긴 하지만,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한국어는 거의 못한다. 한국에 사는 동안 익힌 유용한 말이라곤 “한국어 할 줄 몰라요.” 밖에 없었다. 통역가를 통해 수유 컨설턴트와 대화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대화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내 질문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 내가 들은 대답이 제대로 통역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컨설턴트 역시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젖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젖이 덜 나오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더니 가라고 했다.

그 방법대로 했더니 가슴과 겨드랑이가 조금은 나아졌지만 둘 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출산 후 8주 뒤 병원에 가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산부인과의에게 멍울을 보여주었다. 의사는 아마 수유 관련인 것 같다고 했지만 나를 일반외과로 보냈다. 당시는 평범한 낭종이라 생각해서, 낭종 치료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겨드랑이 초음파 검사를 받는 동안 나는 방사선 전문의가 당일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낭종이라고 확인해주길 바랐다. 겨드랑이 멍울이 사라져 불편함이 없는 상태로 집에 돌아가 남아있는 출산휴가 2주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신이 났다. 그러나 의사는 부풀어오른 겨드랑이 림프절 몇 군데 안에 피가 통하는 것을 보았다. 의사는 수유로 인한 낭종이 아님을 알아냈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음 주에 조직 검사를 받기로 했다.

일상 생활로 돌아갔고 별로 신경쓰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조직 검사 중 의료진이 “조직 샘플이 아주 부드러우니 아마 암은 아닐 것 같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암일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방사선 전문의는 겨드랑이 초음파 검사 결과를 좀더 자세히 관찰해 보았고, 젖분비샘종(수유선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중에 온갖 곳에서 젖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겨드랑이, 드물지만 심지어 성기에서도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틀 뒤에 전화가 왔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전이된 선암이었다. “유방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고 방사선의는 말했다.

“잠깐만요, 지금 내가 암에 걸렸다고 했나요?” 의사는 유방조영술을 받으러 오라고 했지만 다른 정보는 주지 않았다. 나는 무너져내렸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오라고 했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없으면 내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생각했다. 이제 아장아장 걷는 큰아이는 어머니에 대해 어렴풋한 기억만 가질 것이고, 새로 태어난 아이는 날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다음 날 오전에 유방조영술을 받았다. 스캔 결과가 바로 나왔다. 오른쪽 가슴의 덩어리가 또렷이 보였다. 이건 유선이 막힌 게 아니라 유방암이었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알루미늄이 들어간 데오도런트는 몇 년 전부터 쓰지 않고 있었다. 유전자 검사로 유방암 발병 확률이 높은 BRCA 유전자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아들에게 1년 넘게 꾸준히 수유했는데, 그러면 유방암 발병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 오른쪽 가슴의 7cm 짜리 종양은 유선이 막힌 것으로, 겨드랑이의 7cm짜리 종양은 모유에 의한 낭종으로 오인되었다. 부어오른 림프절이 11개 있었다. 유방암 3기 진단이 나왔다.

그날 나는 여러 검사를 받았다. 유방 조직 검사, 두 번째 초음파 검사, 부어오른 림프절 스캔, 암이 전이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한 CT 스캔(다행히 전이는 되지 않았다)을 받았다. 암이 뼈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MRI와 뼈 스캔도 받았다(다행히 뼈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열흘 뒤 미국에서 치료 받기 위해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워싱턴 D.C,로 옮겼다. 통역가를 통해 의료 정보를 전해듣는 어려움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암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미국에 돌아온 첫 주에 유방 외과의와 종양의를 만났다. 진단을 받은 뒤 1개월하고 이틀이 지난 다음 처음으로 항암주입(chemotherapy infusion) 치료를 받았다. 그게 3개월 전의 일이다.

그 이후 나는 유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수유는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화 주제 중 하나다. 정말 다양한 일들이 생길 수 있고, 아무 탈도 없이 수유를 마치는 사람은 드물다. 내 가슴이 다른 인간의 식량원으로 구실하며 가장 유용하게 쓰이고 있던 시기였다. 가슴이 순수히 성적인 것인 시기는 지났지만, 가슴이 나를 죽일 거라고 걱정해야 할 시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유가 잘 나오던 오른쪽 가슴 절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의사들은 그게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한다.

암 투병 중인 사람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내게 왜, 그리고 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 애써보았다. 전체론적 접근을 하는 어떤 의사는 말도 안되는 희생양들을 열거했다. 내가 20대 때 치과에서 받은 근관 치료, 컴퓨터가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한 것, 입양되었고 내가 거부 당했다고 느낀 것 등이었다(마지막 이론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나를 입양해준 부모님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한국에서 고아로 자라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나는 그의 이론들을 하나도 믿지 않았고, 내 암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런 게 있기는 한지 아마도 영영 모를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알지 못한다는 건 힘들지만,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투병에 쏟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슴의 멍울은 유선이 막힌 것이다, 겨드랑이 멍울이 수유와 관련된 것이다라는 의사들의 말을 내가 너무 쉽게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믿고 싶어서 믿었던 것일 수도, 다른 가능성을 고려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때 내 삶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또다른 (심각할 수도 있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처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자신과 건강을 보다 중요시하는 것도 가능했다. 멍울을 처음 발견했을 때 가슴과 겨드랑이의 초음파 검사를 의뢰할 수 있었다. 임신 중에도 초음파 검사는 정기적으로 받아왔다. 10분만 더 시간을 냈다면 의사들과 나는 몇 달 일찍 암을 발견할 수 있었다. 3단계까지 가기 전에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성 8명 중 1명은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다양하고 효과가 좋은 치료법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유방암의 생존률은 높은 편이며 특히 초기에 발견했을 경우 높다. 멍울이 만져진다면 검사를 받아보라. 유전자 검사도 고려해보라. 직계 가족 중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없다 해도 BRCA 유전자가 있을 수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하면 유방 건강 관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내가 유방암을 겪으리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다. 특히 이 나이에 진단을 받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런 일을 맞닥뜨리기 전에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계속 투병할 것이고, 이겨내서 앞으로도 아이들의 엄마이자 남편의 파트너로 남으리라 낙관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읽은 여성들 중 일부라도 이로 인해 내가 경험한 고통과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HuffPost US의 My Boobs Were Busy Breastfeeding My Newborn. Then They Turned On Me.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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