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9년 07월 09일 13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7월 11일 10시 35분 KST

손혜원 보좌관 김성회는 자신이 '관종'이 맞다고 말한다

[기획] 국회는 어쩌다 혐오시설이 됐나? - (1) 김성회 보좌관 인터뷰

 

정치인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민의를 살피고 그것을 토대로 국정을 운영해야 합니다. 이 간단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서일까요? 한국 정치, 특히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에 달했습니다. 사람들이 국회의원의 말을 무조건 믿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국회가 사람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불신이 더 커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프포스트는 모바일 리서치 기업 오픈서베이와 함께 정치혐오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조사 결과,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국회에 대해 큰 불만과 불신을 보인 가운데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을수록 그 불만의 정도는 더 컸습니다.

정치가 무엇인지를 정치권에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들을 찾아가 직접 그 해명과 반성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진짜 정치’의 단면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기획인터뷰는 보좌관 김성회, 국회의원 금태섭,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를 상대로 진행했으며 총 3편에 걸쳐 게재됩니다.

흔히들 ‘관종(관심종자)’이 아니면 국회의원이 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언론은 의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그날에 입은 옷까지도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다. 국회의원이란 게 원래 그런 직업이다. 대중의 이목을 끌고 자기 이야기를 던지면서 그걸 법과 정책으로 만들어낸다. 뉴스를 만들지 못하고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정치에 힘을 싣기 힘들다.

그래서 보좌관들은 인터뷰를 꺼린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의원에게 비춰야 하기 때문이다. 혹시 의원의 이름이 가릴까,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영화로 따지자면 조연이 아니라 스텝인 셈이다. 보좌관에게 허락된 곳은 무대 안쪽의 한구석이 아니라 저 어두컴컴한 무대 뒤편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손혜원 의원실의 김성회 보좌관은 아주 특수한 경우였다. 그는 종종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내비쳤다. 손 의원과 함께 유튜브에 출연하며 자기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고 팟캐스트나 라디오에 출연해 정치 현안에 대한 생각도 꺼냈다. 김 보좌관에게 “관종이냐”고 묻자 그는 곧바로 “그렇다”고 말했다. 손혜원 의원은 그런 김 보좌관을 ‘동반자’라고 지칭했다. 손 의원은 ‘보좌관의 정치’를 기꺼이 허락하며 스포트라이트를 김성회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김성회 보좌관은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보좌관 생활을 끝낸다. 보좌관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우리’가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계속 고민 중이라며 다소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솔직한 속내를 꺼내기도 했다.

 

JTBC에서 드라마 ‘보좌관’이 방영 중이다. 자신의 직업이 곧 제목인 드라마인데, 기분이 어떤가?

 

JTBC

 

처음에 그 드라마가 방영됐을 때 우리(보좌관)끼리는 ‘판타지’라고 그랬다. 보좌관을 무슨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묘사하는 게 솔직히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 그걸 본 사람들은 보좌관을 ‘와 대단한 직업이다’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그리고 초반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점점 더 현실적인 정치드라마가 됐다. 보좌관 간의 갈등, 의원과 보좌관의 사이, 의원회관 내부의 모습 등을 보면 예전 정치드라마보다는 디테일을 훨씬 잘 살리고 있다.

고마운 마음도 있다. 오리는 물 위를 우아하게 떠다니지만 물 아래에서는 열심히 발버둥을 친다. 우리는 오리로 치면 물갈퀴다. 드라마가 마치 수중 카메라로 오리의 물갈퀴를 잘 조명해주는 느낌이다.

 

드라마를 보면 극 중 송희섭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의원들은 왜 카메라만 돌아가면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가? 돋보이기 위한 연출인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내는 장면이 보도돼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의원도 안다. 그래도 소리를 지르는 건, 정말 화가 나서 그러는 거다.

작년 국감 당시 빙상연맹 내부 폭력 사건을 증명할 녹취를 확보했다. 이걸 공개하게 되면 누가 녹취를 전달했는지 당사자들은 다 알 수밖에 없다. 내부고발자 입장에서는 큰 피해를 감수하고 고발에 나선 상황이다. 그런데 증언석에 선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그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에 답변을 피한다. 내부고발자는 자기 목숨을 내놨는데 증인이 그렇게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대답을 회피하면 의원은 평정심을 잃을 수밖에 없다.

 

흔히들 국정감사를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라고 이야기한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일할 당시 비정규직 노조 분들이 찾아오셨다. 지방자치단체가 최저임금을 어기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공무원인데 그걸 어기겠냐며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그분들이 계속 억울함을 호소하셨다. 이상해서 확인을 한 번 해보기 위해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실태조사를 했다. 자료를 받아보니 믿기 힘든 결과가 나왔다. 전국 지자체 중 절반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확인해보니까 공무원들이 공무원법으로 월급을 받다 보니 근로기준법을 잘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식비, 교통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공무원들이 모르고 있었다. 아는 기자를 섭외해 사건을 설명했다. 해당 기자는 사안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1면 기사를 약속했다. 국정감사 시기에는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성과를 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일한다. 중앙일간지 1면에 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감 첫날, 정청래 의원이 행정안전부를 불러 호되게 질타했다. 행정안전부는 잘못을 시인하고 문제를 고칠 것을 약속했다. 국감이 끝나고 나니까 노동자들이 고맙다며 문자도 보내주고 전화도 줬다. 어떤 노동자는 3년치 밀린 월급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보람차더라. 아직도 그날 나온 신문을 집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김성회 보좌관에게 이 일을 택한 계기를 묻자 그는 강경대 열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강경대 열사와 같은 나이, 같은 학번이다. 김 보좌관은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학생이 공권력이 휘두른 쇠파이프를 맞고 살해를 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나는 정상적인 사회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세상을, 정치를 바꾸고 싶었다”고 말하면서도 “시위만으로는 그 변화를 얻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이 있겠다

그 고발 이후로 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담하는 팀이 생겼다. 해당 노동자들이 8년 동안 요구했던 내용이다. 고용노동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최저임금 제도를 설명하러 돌아다녔다. 우리의 고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이것들이 2년, 3년 쌓이면 결국 큰 힘을 발휘한다.

정치란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운동이 열 걸음을 가거나 아니면 현실에 부딪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면 정치는 겨우 두 발걸음만 옮겼다가 다시 한 걸음을 후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지지자들은 왜 고작 그만큼 밖에 나아가지 못했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정치는 한쪽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정당은 영어로 ‘파티’다. 이 정당과 저 정당, 이 파트와 저 파트가 만나 교집합을 이루는 만큼 전진하는 것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비정규직’이라고 자조한다. 격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다들 힘들고 고달프다고 한다. 10년을 채우면 연금이 나온다는데 못버티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왜 여의도에 있나?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불안함이 없는 건 아니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별정직 공무원, 말씀하신 대로 비정규직이다. 우린 해고 통보가 없다. 당일에 의원실에서 면직서를 제출하면 그 순간 해고가 된다.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할 수 없다.

그런 신분인 줄 알면서도 여기서 일한다. 이 직업을 즐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순간에도 그날 오후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지 못한다. 휴가를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삶에 때때로 탄식을 늘어놓는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예측할 수 없는 삶 자체가 우리에겐 즐거움이 된다. 매일 매일 예고 없이 닥치는 일에 머리를 맞대고 가장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 자체에 기쁨을 느낀다.

 

김성회 보좌관은 “보좌관 풀이 생각보다 좁다”면서 “한 의원실을 그만두어도 다른 의원실로 가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전이나 갑질 같은 것으로 쫓겨나는 경우는 다르다. 이 바닥에서 도태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가 부패하고 이권이 많이 오간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생각해보시라. 돈 1~2천만 받아도 수갑 차고 징역을 사는 게 이곳이다. 보기엔 더러워 보여도 보이는 게 전부인 곳”이라고 말했다.

 

뉴스1


얼마 전 손혜원 의원이 목포 투기 의혹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국면이 바뀌었다. 기획된 결과인가?

언론사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혜원 의원이 “이건 안되겠다. 정면 돌파하자”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손 의원이 결단하자 저는 의원에게 ‘목포로 내려가자’고 제안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번째는 목포 시민들이 이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자는 의도였고 두번째로는 기자들에게 그 공간을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만약 그 자리에서 어떤 기자가 의원이 반박할 수 없는 의혹을 제기한다면 의원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의원의 결백을 믿었고 진심을 믿었다. 사즉생 생즉사의 각오로 의원을 무대에 세웠다. 손혜원 의원이 오를 제단을 잘 쌓았다. 그 공간에 어울리는 멋들어진 의자를 골랐고 의원은 의자에 어울리는 체크무늬 정장을 입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기자들은 길거리를 가득 메운 목포 시민들의 환호 소리를 들었다. 너무 허름해서 당장 내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건물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의원은 기자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투기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동력이 빠졌다. 어느 기자도 손 의원의 입을 닫게 할 질문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의원을 위한 제단을 쌓았는데 정작 그 위에 오른 건 기자들이었다.

사진이 퍼져 나가고 의혹은 사그라들었다. “아 별거 아니네, 기자들이 이상한 이야길 한 거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다음날부터 손혜원 의원에 대한 추가 보도가 나와도 대중들이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손혜원 의원은 이제 정치를 그만두시나?

다음 총선에 출마 안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목포 사건 이전에 내린 결정이다. 출마는 하지 않지만 당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원래대로라면 내년 총선에서 총선 홍보 일을 맡을 예정이었다. 제가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홍보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최근 사건이 터지고 탈당했다. 당장은 복당할 수 없는 처지라 안타깝긴 하다.

 

그는 보좌관의 업무를 “두개의 접시를 준비해서 올리는 사람”이라고 요약했다. 의원이 판단하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마련하는 게 보좌관의 업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선택이 틀리면 의원은 치명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선택을 잘해야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고 두 개의 접시를 잘 준비하는 사람이 보좌관”이라고 덧붙였다.

 

보좌관으로서는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는 편이다. 눈치가 보이지는 않나?

보좌관은 2인자고 그림자다. 말 그대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양하는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을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손혜원 의원은 특이하게도 보좌관인 나를 동반자라고 생각해주었다. 의원의 격려와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다른 보좌관에 비해서 시끄러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보좌관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정치를 하고 싶어서 보좌관을 하는 경우, 그리고 보좌관이 적성에 맞아서 보좌관을 하는 경우. 전문가로 살아가는 보좌관이 보기에 저처럼 시끄러운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를 하고 싶은 보좌관은 같이 떠들길 원하기도 하고 서로 그런 모습을 응원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보좌관 이정재는 소위 ‘배지’를 달기 위해 움직인다. 보좌관 김성회에게도 그런 욕망이 있나?

종종 누군가가 “언제부터 정치를 시작할 거냐”고 물으면 나는 “지금도 정치를 하고 있다”고 답한다. 국회의원만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의원을 설득하고 의원실 식구들과 함께 힘을 합쳐 법안을 바꾸고,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구해내는 것도 정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도 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욕심이 항상 있다. 내가 생각한 정책적 아이디어를 직접 실현해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보좌관도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한다고 봤을 때,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제가 꿈꿔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보좌관이라는 직업이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김성회 보좌관은 “우리가 어떤 대단한 일을 이뤄내고 그걸 언론사에 설명할 때 손혜원 의원이 아니라 손혜원 의원실이라고 나간다는 점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원이 이뤄낸 성과 뒤에는 항상 그를 조력하는 아홉 명의 보좌진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성회 보좌관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것은 여타의 직장인이 이야기하는 직업적 기쁨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세상이 바뀌어가는 현장, 그 중심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보일 수 있는 자부심이었다.

보좌관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로 드러나는 지표에만 신경 쓰다 보니 실제 민의를 경청하는 데는 소홀하다며,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을 한참 동안 신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든 연구소의 페이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국회의 보좌관은 드라마 속 장태준 같은 히어로는 아니었다. 그저 단단한 사명감 속에서 자기의 일을 즐기는 정치인, 혹은 예비정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