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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총선 : 새 총리는 누구인가? 치프라스 정부는 어떻게 무너졌나?

중도우파 신민당의 미초타키스 대표는 그리스 최초의 '급진좌파 정부'를 이끌어 온 치프라스로부터 정권을 탈환했다.

  • 허완
  • 입력 2019.07.08 18:58
  • 수정 2019.07.08 19:05
7일 총선에서 승리가 확정된 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신민당 대표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아테네, 그리스. 2019년 7월7일.
7일 총선에서 승리가 확정된 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신민당 대표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아테네, 그리스. 2019년 7월7일. ⓒLOUISA GOULIAMAKI via Getty Images

감세와 투자 확대를 공약한 그리스의 보수 야당이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국가부도 위기 속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됐던 알렉시스 치프라스(44) 급진좌파연합(시리자) 대표는 4년 만에 실각했다.

7일(현지시각) 치러진 조기총선 결과(개표 99%)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51) 대표가 이끄는 신민당은 39.85%의 득표율로 31.53% 득표에 그친 시리자를 따돌리고 원대 제1당 지위를 탈환했다. 

1당에게 추가 의석이 배정되는 그리스 선거제도에 따라 신민당은 전체 300석 중 과반을 초과하는 158석을 차지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반면 2015년 총선에서 145석을 얻었던 시리자는 86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신민당의 압도적인 승리다.

그리스의 새로운 중도우파 정부를 이끌게 된 미초타키스는 승리 확정 이후 연설에서 감세와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치프라스는 ”국민들의 판단을 받아들인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스의 새 총리에 취임할 중도우파 성향 미초타키스는 일자리 창출과 투자 유지 확대, 감세, 개혁 등을 공약했다. 
그리스의 새 총리에 취임할 중도우파 성향 미초타키스는 일자리 창출과 투자 유지 확대, 감세, 개혁 등을 공약했다.  ⓒANGELOS TZORTZINIS via Getty Images

 

그리스 새 총리 미초타키스는 누구인가?

그리스 보수 정당의 거물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 전 총리(1990~1993년 재임)의 아들인 미초타키스는 시리자에 정권을 내준 이후인 2016년 치러진 당 대표 선거에서 당선된 이래 줄곧 신민당을 이끌어왔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국제 금융회사와 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던 그는 2004년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 정부(2012-2015년)에서는 개혁행정부 장관에 발탁돼 대대적인 공공부문 축소, 세금제도 개편 등을 추진했던 이력이 있다.

그는 ‘작은 정부‘와 감세 등을 지향하는 정통 보수주의자로 평가된다. 정실인사와 관료주의 타파, 교육 개혁, 독점 규제 같은 개혁 조치를 내세우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케도니아의 국호를 ‘북마케도니아’로 부르는 데 합의한 치프라스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며 국가주의 여론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 합의는 대다수 국민들의 반감을 불렀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미초타키스는 대대적인 개혁 조치와 경제 성장을 약속하면서 중도 성향 유권자와 청년들을 공략했다. ”오늘부터 우리는 여러분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야만 했던 그 나라를 바꾸는 작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가 당선 확정 직후 말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기자회견을 떠나고 있다. 아테네, 그리스. 2019년 7월7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선거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기자회견을 떠나고 있다. 아테네, 그리스. 2019년 7월7일. ⓒAlkis Konstantinidis / Reuters

 

치프라스는 어쩌다가 정권을 잃었나?

치프라스 총리의 등장과 실각은 구제금융, 그에 따른 긴축정책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는 긴축 거부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지만 끝내 구제금융을 대가로 긴축을 수용해야만 했고, 그리스의 구제금융 체제 졸업을 이끌었음에도 그 효과를 아직 체감하지는 못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그리스는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촉발된 국가부채 위기 끝에 2010년 구제금융을 시작으로 총 세 번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 유로그룹,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재정지출 삭감, 구조개혁 등 혹독한 긴축 조치를 요구 받았다. 한국이 IMF 사태 때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훨씬 더 오랫동안, 훨씬 더 혹독하게 겪어야 했다.

2015년 1월 치러진 조기총선 당시 치프라스는 채권단의 혹독한 긴축 조치 요구를 거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그리스 역사상 최초의 급진좌파 정부 출범이자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 순간이었다.

당선 이후 그는 채권단의 협상 조건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제안을 내놨으나 ‘트로이카’로 불리는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스는 은행 체계 붕괴와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위기에 내몰렸다.

치프라스는 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채권단의 협상 조건 수용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국민투표 결과는 치프라스 총리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줬다. 그리스 국민 10명 중 6명은 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거부했다.

지난 2015년 치프라스 총리가 끝내 3차 구제금융에 합의한 이후 그리스 곳곳에서는 추가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치프라스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노조 총파업 당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긴축 반대' 깃발을 내건 모습. 테살로니키, 그리스. 2015년 11월12일.
지난 2015년 치프라스 총리가 끝내 3차 구제금융에 합의한 이후 그리스 곳곳에서는 추가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치프라스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노조 총파업 당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긴축 반대' 깃발을 내건 모습. 테살로니키, 그리스. 2015년 11월12일. ⓒSAKIS MITROLIDIS via Getty Images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국민투표 직후 ‘그렉시트’ 위기가 고조되는 등 혼란이 커지자 결국 치프라스 총리는 앞서 자신이 거부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내용의 구제금융 조건을 수용했다. 890억유로(약 118조원) 규모의 세 번째 구제금융과 추가 긴축 조치에 합의한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부과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긴축 조치들을 시행해야만 했다. 연금이 삭감됐고, 재정지출은 축소됐으며, 세금을 올렸다. 유권자들이 배신감을 느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해 8월 구제금융 체제를 종식시켰다. 로이터는 그리스 경제가 상승세로 돌아섰음에도 실업률은 여전히 유로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18%대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리스를 오늘날의 자리에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려운 결정들을 내려야만 했고, 막대한 정치적 대가를 치렀다.” 패배가 확정된 이후 치프라스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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