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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 가정폭력 경험 : 제도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부인이 국적을 획득하면 도망가리라 생각해 한국인 남편이 고의로 국적 취득을 도와주지 않는 일이 적지 않다"

결혼이주여성들이 2011년 6월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들의 추모제를 마친 뒤 희생자들의 영정과 가정폭력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여성가족부로 행진하고 있다. <a href='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0797.html?_fr=mt2#csidx00c893682ed20c08da9dbb4e4a75ce8'></div></a>
결혼이주여성들이 2011년 6월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들의 추모제를 마친 뒤 희생자들의 영정과 가정폭력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여성가족부로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2007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온 캄보디아 출신 쏙카(가명)는 결혼 생활 3년 차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은 결혼 초부터 “밭에서 같이 일하려고 내가 돈 주고 너를 데려왔다”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다 쏙카가 아이와 함께 캄보디아 친정에 다녀온 뒤부터 머리카락을 붙잡고 벽에 밀치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폭력을 일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울면서 말리면 남편은 밖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티브이(TV)를 크게 틀어놓고 쏙카를 때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돌아오는 건 “네가 참아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쏙카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갈 때쯤 남편을 설득해 국적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후 쏙카가 쉼터로 몸을 피하자 경찰에 ‘부인이 가출했다’며 국적 신청을 취소해버렸다.

6일 전남 영암군에서 베트남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가운데, 국적 취득에 있어 한국인 배우자가 전적인 권력을 행사하도록 해둔 법 조항 등으로 인해 이주여성들이 배우자에게 종속되고, 이런 종속 관계가 가정폭력 피해를 더욱 키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발표한 ‘결혼이주 여성 체류실태 결과발표 및 정책토론회’ 자료를 보면, 2017년 결혼이주 여성 920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387명(42.1%)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가정폭력 피해 유형(복수응답)을 보면, 피해자 가운데 81.1%(314명)가 가정에서 심한 욕설을 듣는 등의 심리 언어적 학대에 시달렸고, 67.9%(263명)는 성행위를 강요받거나 남편의 가족으로부터 성추행·강간 피해를 입는 등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흉기로 위협당했다’는 응답도 19.9%(77명)나 됐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를 겪은 이주여성 가운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30.7%(119명)에 그쳤다. 피해 여성 36.1%(140명)는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35명),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29명),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29명) 등의 이유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배우자에게 종속돼 가정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한국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신원보증’ 문제를 꼽았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부부간 권력이 평등하지 않은 한국사회의 성차별 문제에 더해 국제결혼 커플의 경우 평균 10살 이상 나이 차이에 따른 위계가 발생하다 보니 한국인 남편이 외국에서 온 나이 어린 부인을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우리 집에 들여놨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2011년 결혼이주 여성이 국내에서 체류 연장 허가를 받을 때, 한국인 배우자가 ‘위장결혼 방지’ 취지로 신원보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할 것을 명시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표명했다. 이후 신원보증서 제출 규정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결혼이주 여성이 국적을 취득하기 전 한국에 체류하려면 혼인 관계 사실 등에 대한 한국인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하다. 한국인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신원보증을 철회할 경우 이주여성은 체류 자체가 어려워진다.

강 공동대표는 “결혼이주 여성이 한국에서 영주권·국적을 취득하려면 한국인 남편이 혼인 관계 유지 등에 대한 신원보증을 비롯해 제출서류 구비에 절대적인 협조를 해줘야 한다”며 “한국인 배우자가 외국인 배우자의 안전한 체류와 국적 취득에 있어 전적인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관련 법령이 결정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명숙 대구이주여성쉼터 소장도 “결혼이주 여성들 가운데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인이 국적을 획득하면 도망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인 남편이 고의로 국적 취득을 도와주지 않는 일이 적지 않다”며 “최소한 자녀가 초등학교 취학연령이 되면, 혼인의 진정성을 인정해 이주여성이 단독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결혼이주 여성들이 전문적인 상담과 법률지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올해 안에 전국 5개 지역에 이주여성 상담소를 설치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대구에 전국 최초로 ‘대구 폭력피해이주여성상담소’가 문을 연 데 이어 충북과 인천에도 각각 이달 16일과 19일 상담소가 문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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