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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생활 15년, 집밥이 멀어지는 이유

혼자 해먹는 집밥 재미없지만, 그래도 감자는 먹어야겠다

  • 홀로
  • 입력 2019.07.07 13:54

주말 낮에 마포에 갔다가, 자주 가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포장해 왔다. 진득진득하게 졸아든 떡볶이 소스를 종지에 조금 덜어 놓았다가, 저녁에 다진 청양고추랑 마요네즈, 참깨를 넣고 황태 소스로 만들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황태채를 한 줌 넣고 살짝 누릇하게 구우면, 바삭바삭 소리가 날 정도로 황태살의 보송한 결이 살아난다. 오늘처럼 소스까지 갖춰 놓고 맥주를 곁들이면, 전주 가맥집에서 연탄불에 구워주는 황태구이가 부럽지 않다.

오래전 전북에 여행을 갔다가 건어물 안주에 따라 나온 이 조합의 소스를 처음 먹어보았다. 이 소스의 핵심은 ‘북어장’이라고 부르는 캐러멜을 섞은 걸쭉한 간장소스다. 예전엔 이걸 구할 수가 없어 데리야키소스를 사다 흉내를 냈다. 그런데 이젠 아예 가맥집에 납품되는 시판 제품을 소용량으로 판매해서 인터넷으로 쉽게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소스를 잘 사지 않는다. 사봤자 몇 번이나 먹겠는가 싶어서다. 예전엔 해 먹을 줄 몰라 버리는 게 많았는데, 이제는 알지만 안 해 먹어서 버리는 게 많다. 온갖 양념, 소스, 드레싱을 냉장고 문짝에 쟁여놓던 게 언제인가 싶다.

자취 15년차를 바라보는 지금, 살림은 손에 익었지만 점점 집에선 뭘 해 먹지 않게 된다. 빨래나 청소는 갈수록 공을 들이는데, 밥만은 반대로 점점 놓게 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요리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이제 이 정보는 부분적으로만 사실이 되었다. 대학에 와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도 한 10년은 열심히 밥을 해 먹었다. 매일 메뉴를 바꿔가며 도시락을 직접 쌌다. 베이킹도 했다. 홈쇼핑으로 자반고등어도 사고, 여름엔 오이지도 담갔다. 하지만 요새는 그렇게 재료를 사다 손질하고 조리하는 본격적인 음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 계란말이나 국수, 햄부침 정도. 우리 집은 바야흐로 도시락 김 전성시대다.

수납장으로 들어가버린 밥솥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는 1인분은 사 먹는 게 더 간편하고 저렴할 때가 많아서다. 예를 들면, 김밥. 언젠가 집에서 만 김밥이 먹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넣었더니, 3만원이 나왔다. 그거면 김밥을 스무 줄은 쌀 수 있다. 한 줄에 2천원 하는 야채김밥과 비교하면, 같은 양을 정확히 반값에 먹는 셈이다. 문제는 내가 김밥을 두 줄밖에 못 먹는다는 것. 집밥이 외식보다 저렴하려면 많이 사서 많이 먹는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요새 쏟아지는 1인용 홈밀 키트도 아직은 내 지갑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다. 원룸에 옵션으로 들어 있는 130리터짜리 냉장고는 4인 가정의 냉장고처럼 뭘 꾸역꾸역 채워 넣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웹툰 <밥 먹고 갈래요?>에 나오는 것처럼, 부지런히 얼려도, 부지런히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지금보다 좀 나중에 버려질 뿐.

그래서 밥도 요새는 그냥 즉석밥을 쟁여놓고 먹는다. 전에는 한 번에 밥을 많이 지어서 밀폐용기에 소분해 냉동보관을 했다. 아무리 할인을 해도 쌀 씻어 밥하는 것보다 저렴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어차피 결국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건 똑같다. 게다가 밥 짓고 얼리는 데도 전기가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다. 쓰레기 배출이 늘어나는 죄책감이 드는 대신 냉동실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가끔 냉동실 뒤에서 얼린 지 오래된 밥을 발견하고 꾸역꾸역 먹는 고통도 없다. 지금 우리 집 전기밥솥은 몇 달째 싱크대 수납장에 들어가 있다.

둘째, 밥은 그렇다 치고 반찬도 해 먹지 않는 건 조리 도구 탓이라는 핑계를 댈까 한다. 지금 사는 집은 가스레인지가 없다. 싱크대에 붙박이로 전기레인지가 있는데, 화력이 약해서 굽고 볶고 끓이는 게 죄다 시원치 않다. 그나마도 위아래로 배열된 화구 2개 중에 실제로 쓸 수 있는 건 하단 1개뿐이다. 상단 화구 쪽엔 싱크대 턱이 걸쳐져 있어서, 열기가 직접 닿아 화재 위험이 있었다. 싱크대 턱밑은 먼저 살던 사람들이 이미 까맣게 그을려 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위험하게 설치를 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금세 납득했다. 원룸이 다 그렇지 뭐.

셋째, 그렇다. 혼자 먹는 게 이제 재미가 없다. 얼마 전에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꺼내 같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 면을 건져 먹은 국물에 순두부를 넣어 안주용 찌개도 해 먹었다. 그게 뭐라고, 너무 맛있었다. 친구가 돌아간 뒤에 설거지한 그릇들을 엎어놓은 주방을 보며 생각했다. 독립을 한 뒤에도 혼자 밥을 차리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설거지를 하는 시간들이 그 자체로 충만했던 때가 있었다. 그 마음을 되찾을 때, 집밥은 야식이나 술안주가 아닌 매일 나를 먹이고 다독이는 밥으로 돌아올 것이다.

ⓒScience Photo Library via Getty Images

먹던 가락은 여전해서

사람이 먹던 가락이 어디 가지는 않아서, 먹는 궁리도 여전히 하기는 한다. 수납장 안에 들어가 있는 전기밥솥은 아마 삼복이 돌아올 때쯤 다시 만나지 싶다. 더위와 추위 한가운데일 때 몸이 허하면 집에서 백숙을 해 먹는다. 생닭을 사다 통마늘과 옥수수차 티백을 넣고 밥솥으로 푹 찌면, 계곡 가서 사 먹는 구수한 백숙과 비슷한 맛이 난다. 고기를 건져 먹고 국물에 죽도 끓여 먹으려면 한 번에 한 마리는 많다. 그래서 닭은 삼계탕용으로 사지 않고, 닭볶음탕용으로 토막 낸 걸 사서 반 마리씩 해 먹는다.

하지가 막 지났으니 감자도 한 번 먹어야겠다. 감자는 전자레인지로 찌면 겉이 쫄깃해져서, 이것도 주로 밥솥으로 찐다. 설탕하고 소금을 살짝 넣어 간이 밴 찐 감자는 차가운 우유하고 먹으면 맛있다. 남는 걸로는 감자샐러드. 감자를 으깨고 오뚜기 크림수프 가루를 몇 숟갈 넣어 섞는다. 그리고 후추를 뿌리면 시판 매시트포테이토 같은 맛이 난다. ‘퍼묵퍼묵’해도 맛있고, 식빵을 사다 샌드위치를 해 먹어도 좋다. 여기에 우유를 부어서 끓이면 감자수프도 된다.

황태채를 먹고 싶어 사온 청양고추 천원어치 가운데 1개를 다져 먹고 10개가 남았다. 냉장고에 치킨무나 오이피클 남은 게 있나 뒤져봐야겠다. 시판 피클 국물에 소주랑 설탕을 좀 넣고 바르르 끓여서 부으면 뚝딱 피클을 만들 수 있다. 만드는 건 쉬운데 그건 또 뭐랑 먹어야 하나. 찐 감자랑 닭백숙에다 먹을까. 올여름엔 친구들을 좀 불러다 먹여야겠다.

글 · 유주얼

*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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