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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판사가 국정원 직원 증인에게 "고맙다"고 하다

'유우성 사건' 재판정에선 황당한 인사가 오가고 있었다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우성씨가 2014년 2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검찰증거에 대한 조작 여부와 관련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우성씨가 2014년 2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검찰증거에 대한 조작 여부와 관련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기억하시지요. 유우성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아 <한겨레>와 <뉴스타파>의 공동 취재로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게 2014년이니 벌써 5년전 일이 되어갑니다. 네. 많은 분들이 아시듯 제가 한겨레에 다닐 때 보도한 내용들이지요. 기자로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유우성씨는 2015년 10월 최종적으로 간첩 협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조작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들 일부는 재판에 넘겨졌고 아직까지도 재판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유우성씨 사건은 이렇게 어느 정도 진실도 밝혀졌고 책임 있는 국정원 간부들까지 재판에 넘겨졌으니 적어도 이 사건은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재판을 받는 국정원 간부들도 증거가 다 드러났으니 이제는 죄를 뉘우치고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제가 이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결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언론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조작에 가담한 국정원 직원들은 여전히 뻔뻔하게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기자들이 이제는 이 사건 재판정에 취재도 잘 안오니까 안심한 걸까요. 저는 얼마전 권영철 국정원 전 대공수사국장의 항소심(국정원법 위반 직권남용 등 혐의) 형사 재판(2019년5월3일, 2019년 6월7일)을 취재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방청석에는 기자들 대신 전현직 국정원 직원들이 권영철 피고인을 응원하기 위해 빼곡하게 자리 했고요. 심지어는 권영철씨의 변호인이 변론을 할 때 재판정에서 국정원 전직 관계자들이 박수까지 치다가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권씨는 자신감에 한껏 고무되어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목욕탕에서 들을 수 있는 ‘울림 목소리’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요. 권씨는 정제된 톤으로 당당하게 판사를 향해 주장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연설처럼 들렸습니다. 무슨 수사국장이 기자들 상대로 브리핑을 하듯이요. 그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습니다.

“판사님. 국가안보 수사라는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는 피해자 유우성씨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방청석에 함께 있던 우성씨의 변호사들은 분을 삭이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판사님. 저의 죄를 뉘우치고 유우성씨에게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라는 취지의 말이 나오길 기대했던 저도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이 사건 조작이 다 드러났는데도 국정원 직원들이 저렇게 당당하게 재판정에서 연설하듯 자신의 주장을 펴고 국정원 동료들은 몰려와 박수를 치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저들이 인간 이하의 파렴치한들이라서 그럴까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이 사건의 법적인 상태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아닙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간부가 이렇게 법정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있는 상태에서도 당당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유우성은 간첩이 맞다. 다만 이를 입증하기가 어려워서 간첩 증거를 조작하는 실수를 범한 것 뿐이다. 따라서 증거를 조작한 죄는 인정하지만, 그 외 간첩 사건 자체를 조작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간첩 수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증거를 조작한 것 정도를 갖고 대공 수사 자체를 못하게 하면 어떡하나. 국가 안보 수사에 최선을 다해온 정황을 참작해 판결해 달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015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대법원은 유우성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최종 판단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015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대법원은 유우성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최종 판단했다.

여러분. 저는 그래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은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여전히 언론의 관심과 집요한 고발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진실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유우성을 간첩이라고 입증하는 데 쓰인 ‘출입경 기록’ 증거를 조작한 사람들과 지휘 체계에 있는 간부들 소수가 재판에 넘겨졌고 ‘간첩 사건 조작 자체’에 가담한 자들은 여전히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즉, 유우성이 간첩이 아닌걸 알면서도 자신의 승진을 위해 혹은 정권 안보를 위해 간첩 기획 사건에 가담한 의혹을 받는 국정원 수사관과 검사들이 아무런 수사도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사건은 출입경 기록만 증거 조작된 의심을 받는게 아닙니다. 유우성씨 동생 유가려의 합동신문센터 조사 단계부터 국정원 수사관들이 허위 자백을 강요한 조작 의혹 사건이고요. 애초에 유가려를 한국에 데려오라고 유우성을 설득한 국정원 직원의 간첩 조작 기획 의혹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정원 댓글 사건 여론 무마용으로 동아일보 등에 피의사실을 공표한 의혹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여기에 미치지 않았고 현재로서는 증거를 조작한 사람들만 재판에 넘겨진 것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국정원 직원들이 당당한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 되시나요. 그래서 저는 당분간 유우성 사건에 책임 있는 국정원 직원들의 재판을 하나하나 참석해 기록화할 계획입니다. 언론과 변호사들은 수사권이 없습니다. 그저 재판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단서들만 갖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촉구할 뿐입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더이상 이 재판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이마저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리포액트’ 홈페이지에 재판 기록을 계속 쌓아두겠습니다. 언젠가는 저의 기록이 다시 활용되어 나머지 밝혀지지 않은 조작간첩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끝까지 책임자들이 처벌받는 정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특히 국정원 간첩 수사를 지휘 감독한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이문성·이시원 검사에 대한 기록도 쌓아갈 것입니다. 이들은 재판에 넘겨지기는커녕 검찰 내에서 정직 1개월 처분 당한게 전부입니다. 서울시공무원간첩조작 사건의 정의가 바로 잡혀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오늘(7월 4일)은 재판정 스케치 하나만 더 전달해 드리고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에서 공개하겠습니다. 공문서변조·행사, 증거은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태희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 국장의 항소심 재판(재판장 차문호)이 지난 6월20일 서울중앙고등법원 302호 법정에서 열렸습니다. 이 사건의 선고공판은 7월11일 예정되어 있습니다. 앞서 지난 1심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재판장 강성수)는 이태희씨의 공문서변조·행사, 증거은닉 등의 혐의중 공문서변조·행사에 대해서만 유죄로 보고 증거은닉은 무죄로 판결했습니다. 이태희씨는 징역 1년6개월 형만 선고 받아 유우성씨는 크게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6월20일 이 사건 항소심 차문호 재판장도 좀 이상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날은 모 국정원 직원에 대한 증인심문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차 판사는 비공개 심문을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유우성씨를 변호하는 변호사들에게조차도 방청석을 나가라고 차 판사는 결정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나와서 어떤 거짓 증언을 하는지 사실 공판 검사들보다는 유우성씨 변호인단이 더욱 잘 압니다. 그러나 판사는 이의 감시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유우성 변호인단의 의견을 제대로 들을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차 판사는 ‘피해자 대리인’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고 굳이 ‘피해자 대리인이라는 분들’ 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차 판사의 이상한 행동과 발언은 더 이어졌습니다.

“피해자 대리인이라는 분들도 방청석에서 나가주시고요. 증인(국정원 직원)이 심문 비공개를 요청하면 비공개가 원칙이지요. 증인이 재판정에 나와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국정원 쪽 증인한테, 나와주는 것만도 고맙다? 이게 판사가 할 소리인가? 판사가 국정원 직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형사소송법 원칙에 맞지 않는 저런 소리를 왜 하지?’

형사소송법 151조를 보면, 재판에서 채택된 증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한 때는 법원이 증인을 감치하거나 과태료를 매기는 등의 조항이 있습니다. 지난 6월27일 부산고법에서 열린 ‘부산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경찰들에게 담당 판사(김문관 재판장)가 다시 소환 요청서를 보내고 출석하지 않으면 과태료와 구인 등 모든 조처를 하겠다고 밝힌 것은 모두 이러한 법의 근거에서입니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을 대하는 서울중앙고등법원 차문호 판사의 태도는 사뭇 다릅니다. ‘증인으로 나와준 것만도 고맙고 그러니 비공개로 심문 해주겠다’고 스스로 밝히다니요. 게다가 유우성씨 변호인단은 방청석에서 나가게 만들고요.

재판의 과정은 공정하고 법의 원칙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재판장 스스로가 유우성씨 변호인단에게 ‘피해자 대리인이라는 분들’이라고 뭔가 격하해서 부르거나 국정원 증인들에게 ‘나와준 것만도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재판의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일단 선고를 지켜보겠습니다.

그 뒤 연재기사를 이어서 쓰겠습니다.

* 여러분의 후원으로 기사가 제작되는 행동탐사언론 리포액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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