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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정착한 달수 씨의 사정을 들어봤다

반경 1㎞ 안에 민어, 병어, 홍어, 꽃게 무침이...

ⓒ사진 달수 제공

목포의 원도심(구시가지)을 사랑한다. 목포역에서 목포항에 이르는 약 1㎞의 거리 안에 병어찜으로 유명한 초원식당, 홍어 삼합의 덕인집, 흔치 않은 꽃게살 무침을 먹을 수 있는 장터식당, 민어 명가 영란횟집이 모여 있어 1박2일 안에 전통의 요릿집을 벼락치기 방문 할 수 있다.

지난주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 한식이 고팠던 친구가 시간을 쪼개 목포로 여행을 함께 가자고 조른 이유다. 남자들끼리 목포 여행을 간다고 하니 아내가 말했다. “목포에서는 ‘바 어항’이 유명하대.” 나는 그때만 해도 바 어항이 제철 생선을 내주는 바 형식의 식당인 줄만 알았다. 오랜 친구 달수(예명)가 목포로 내려가 바를 열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녀가 ‘바(bar) 어항’의 사장님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홍어 삼합을 먹고 냄새나는 몰골로 달수의 바를 찾아 그간의 소식을 나눴다. 목포 술꾼들의 종착지라는 ‘88포차’로 자리를 옮겨 새벽 3시까지 수다가 이어졌다.

달수의 일과는 이렇다. 달수는 오전 10시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고양이 화장실을 체크하고 집 안을 청소한다. 청소라고 해봤자 거창한 건 아니다.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털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가 끝나면 요구르트나 차를 마시고 다시 잔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잠을 잘 만큼 자고 나면 고양이랑 놀아주며 나갈 채비를 한다. 장을 보러 가는 날도 있고, 친구를 만나는 날도 있다.

달수가 목포역 앞 구시가지에 있는 바 어항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략 오후 5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자정까지 문을 열어둔다. 열어둔 문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날도 있고 안 들어오는 날도 있다. 영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나가 운동을 한다. 운동을 마치면 뒹굴뒹굴하며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본다. 달수는 “처음 목포에 왔을 때는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는 느낌이 들었다”며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달수보다 6살이나 많지만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 상태가 뭔지 잘 모른다.

서울에는 고를 수 있는 ‘보기’가 없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달수는 문화예술 관련 전시나 공연을 기획하는 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문화예술 쪽의 인턴은 열정과 체력과 시간을 바쳐 적은 돈을 벌었다. 달수가 겪은 고용 상황을 ‘열정 페이’라는 단어로 축약하고 싶지는 않다. 어쩐지 몇 년에 걸친 거대한 고민이 단어 하나 크기로 줄어드는 느낌이다.

달수는 적당히 벌면서 많이 일하는 삶을 보기에서 지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치열한 삶을 택한 친구들은 대기업에 들어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과 싸우고 있었다. 달수는 달수의 성정에 맞는 일을 찾아 바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또 다른 목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적당한 일을 하며, 적당한 돈을 벌고, 혼자의 힘으로 꾸릴 수 있는 삶이 달수의 고향 서울에는 없었다.

목포가 고향인 친구를 따라 목포 여행을 두 번 다녀온 게 계기가 됐다. 원도심에는 느긋한 여유가 흐르면서도 케이티엑스(KTX)가 닿았고, 조금만 신시가지로 나가면 도회의 편리를 누릴 수 있었다. 목포라면 보기에 없는 삶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이다 못해 매력이 철철 넘치는 월세가 특히 마음을 끌었다. 시에서 주관하는 청년 지원 사업을 신청해 창업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호재였다. 달수는 “하루 매출 5만원이면 삶을 꾸릴 수 있다. 절약하면 저축도 가능하다”며 “임대료도 임대료지만, 서울에서는 소위 말하는 ‘시발비용’도 든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에이 시발’ 하면서 뭔가를 사재끼는 거다. 여기선 스트레스가 적다 보니까 그럴 일이 적다”고 말했다.

서울에 살 때 달수는 자신이 약간의 게으름이 필요한 사람이란 걸 몰랐다. 회사에서 밥을 먹고 낮잠이 쏟아질 때면 체력이 약한 자신을 탓했고, 낮잠을 잘 수 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목포에서 이제 달수는 마음껏 낮잠을 잔다. 목포가 게으른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란 건 아니다. 목포에는 목포의 사정이 있고, 서울에는 서울의 사정이 있다. 달수의 사정이 목포와 어울렸을 뿐이다. 내 성정에 어울리는 도시를 찾을 생각도 못 하고 서울에 정착한 내가 아주 조금 한심해 보였을 뿐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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