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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낙태 취소할 수 있다" 설명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터무니없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Lawrence Bryant / Reuters

미국에서 ‘약물 유산을 취소할 수 있다’고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낙태 취소’(abortion reversal)라는 것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이다.

주요 의학 단체들은 ‘낙태 취소’ 법안이 비과학적이고 위험할 수도 있는 충고를 의사가 여성에게 하도록 강제한다고 우려한다. 임신 10주 전까지의 낙태에 약물을 사용하는 ‘약물 유산’(medical abortion)은 안전하고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올해 미국에서 다섯 개 주(노스다코타,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켄터키, 아칸소)가 약물 유산을 하려는 여성에게 ‘낙태 취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사우스다코타, 유타, 아이다호에는 이미 비슷한 법이 있다. 아칸소는 기존 법을 확장했다.

약물 유산의 원리

보통 ‘낙태 알약’(abortion pill)이라고들 하지만, 약물 유산은 사실 처방전이 필요한 두개의 약을 함께 사용하는 방법이다. 

먼저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을 막아 임신의 진전을 멈추는 미페프리스톤을 복용한다. 그리고 하루 이틀 뒤에 경련과 출혈을 일으켜 자궁을 비우게 만드는 미소프로스톨을 복용한다.

제대로 복용하면 낙태 성공률은 97%에 달한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낙태 반대 단체들이 사용하는 ‘낙태 취소’란 사실 틀린 용어다. 낙태를 일단 하고 나면 여성은 임신 상태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태 취소’의 지지자들은 약물 유산을 중간에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페프리스톤을 복용한 여성에게 미소프로스톨을 먹지 말고 고용량의 프로게스테론을 복용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몇 달 동안 먹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검증되지 않은 ‘실험적인’ 치료법이다. 미국산부인과학회, 미국 최대의 의사 단체인 미국의학협회 등 주요 의학 단체들에서는 반대하고 있다. 임상 실험이 이루어지지도, FDA의 승인을 받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ASSOCIATED PRESS

주요 의학 단체들은 약물 유산에 대해 “환자가 두 약을 모두 복용할 때 가장 효과적”이며 “미페프리스톤만 먹으면 절반 정도가 임신 상태를 지속한다”고 지적한다. 미페프리스톤 효과 상쇄를 위한 프로게스테론 복용의 안전 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스다코타의 ‘낙태 취소’ 법은 8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미국의학협회는 6월 25일 이 법안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노스다코타에서 낙태를 시술하는 유일한 곳인 레드 리버 여성 클리닉과 생식권 센터가 함께 소송에 참여했다.

이 법에 따르면, 의사는 환자에게 ‘마음을 바꾼다면’ 낙태를 취소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지만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의사는 ‘낙태 취소’를 지지하는 의학 전문가를 찾아갈 수 있도록 관련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신뢰의 문제 

생식권센터의 상근 변호사 몰리 듀앤은 이 법안이 의사에게 비과학적 정보를 퍼뜨리기를 요구하므로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된다고 말한다. 

“‘낙태 취소’는 가짜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법은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강요하며,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의료 윤리를 위배하게 강요한다.”

이는 신뢰에 기반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 “의사는 주의 개입 없이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노스다코타주에 마지막으로 남은 낙태 클리닉의 의료 디렉터 캐스린 이글스턴은 진술서에서 “윤리적으로 낙태 취소 치료를 추천할 수 없다”고 썼다.

“일단, 미페프리스톤을 먹은 뒤 고용량 프로게스테론을 섭취하는 것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거의 연구된 바 없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이러한 약물 사용이 태아에게 선천적 기형 등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한다.” 허프포스트가 입수한 이글스턴의 진술서 내용이다.

또한 이 법이 환자들에게 낙태를 취소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주어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이글스턴은 우려한다.

ⓒLawrence Bryant / Reuters

“나는 낙태를 진행하기 전에 환자에게 확신이 있는지 묻는다. ‘낙태 결정에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 그 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메시지가 희석될 것이다.”

‘낙태 취소’의 역사

‘낙태 취소’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조지 델가도라는 의사다. 2009년 낙태 반대 운동가가 델가도에게 전화를 걸어 “약물 낙태를 시작했으나 마음을 바꾼 여성이 있는데, 혹시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미페프리스톤이 프로게스테론을 막는다는 사실, △유산 위험이 있는 임신 초기 여성에게 가끔 프로게스테론을 처방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성령이 내 마음속에서 두 가지 사실을 합쳐주신 순간이었다. 프로게스테론을 추가로 공급하면 아기를 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델가도가 한 말이다.

그는 첫 번째 약과 두 번째 약 사이의 시간이 “선택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라고 했다. 델가도는 여성이 딸을 낳았다고 주장하는데, 허프포스트의 인터뷰 요청에는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

그 이후 델가도는 자신의 실험적 치료를 받은 여성 6명에 대한 사례 연구를 공동 집필했다. 낙태에 반대하는 주 의회 의원들은 이 연구를 자주 언급한다. 델가도는 또한 낙태약 취소(Abortion Pill Reversal)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입증되지 않은 자신의 치료법에 따라 프로게스테론을 처방해주는 의사와 여성을 연결해주는 24시간 핫라인을 개설했다. 델가도는 자신의 방법으로 500명 이상의 여성이 출산했다고 주장했다.

ⓒNurPhoto via Getty Images

그러나 전문가들은 델가도의 연구가 입증되지 않았으며 큰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신부인과 및 생식학 교수 대니얼 그로스맨의 지적은 아래와 같다. 

“철저히 연구되지 않은 치료다. 발표된 보고서들은 불완전하며 아주 수준이 낮다. 윤리위원회나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감독도 없었고, 정말이지 실험적인 치료다.” 환자들은 위험 가능성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그로스맨은 말한다.

낙태 반대의 최신 전선

약물 유산이 인기 있는 방법이 되었기 때문에, 반낙태 단체들이 ‘낙태 취소’ 법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구트마허 연구소의 엘리자베스 내시는 말한다.

2014년에 이뤄진 낙태의 3분의 1가량은 약물 낙태였다.

“약물 낙태의 비율이 계속 높아진다. 반대자들은 이를 줄일 방법을 찾고 있다.” 내시의 말이다.

그리고 ‘낙태 취소’ 법은 낙태 시술자들이 부정직한 사람들인 것처럼 묘사하려는 오랜 전략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시술자들이 부도덕하며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려 한다. 하지만 결함이 있고 오도의 여지가 있는 정보에 기대는 건 오히려 낙태 반대자들이다.”

* 허프포스트 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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