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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평범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

  • 슛뚜
  • 입력 2019.07.01 17:24

평범한 날이었다.

눈이 떠지는 때에 일어나 밥을 먹고,

베베랑 뒹굴고, 산책도 다녀온.

그러다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게 여겨졌다.

 

사람마다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계기나 시기가 모두 제각각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독립이었다. 단순히 혼자 사는 것 말고 기존에 누리던 물질적, 정서적인 것들로부터의 온전한 독립.

내가 자취한다고 말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본가가 지방이냐고 물었고, 나는 십오 분 거리에 있다고 답했다. 그 대답에 대부분은 웃었다. 내 연령 대에서 보기 드문 일이니까. 비록 학자금 대출액을 갚는 게 까마득했지만 혼자 살면서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고, 월세도 꼬박꼬박 냈다. 그럴듯하게 자취방을 꾸몄고, 베베의 생활까지 책임지고 있다. 그동안 일도 쉬지 않았다.

자취를 시작하고 1년 정도는 엄청나게 힘들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했고, 대학 동기들과 비교하며 억울함이나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 내 마음에 가득 찼던 감정들은 대부분 분노와 미움 같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것이 자꾸 내 정신을 잠식했다.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은 매우 다른데, 나는 오랫동안 내가 살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내 의지로 사는 게 아닌, 존재하기 때문에 살 수밖에 없는삶. 그저 시간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삶.

그런 내가 어떤 계기로 이토록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을까. 불행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지점은 확실한데, 행복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지점은 희미하다. 이제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생활 습관이 어울리는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고 어떤 일을 못하는지.

예전에는 이미 자신의 영역이 확고한 다른 사람을 보며 나만의 색을 가지고 싶어 전전긍긍했다. 그것은 억지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타인 대신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혼자 산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내 안의 나와 함께 살아온 게 아닐까.

어쨌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에 옳다. 작은 것에 만족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었다. 이제 내 안에는 부정적인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이 많아졌다.

집 안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디 하나 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디퓨저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향이 그윽하게 풍기고, 식기는 친구들이 자주 놀러오기 때문에 혼자 사는 사람 치고 많은 편이다. 내가 자주 가는 브랜드의 물건이 곳곳에 놓였고, 방 한편에는 내 생각과 닮은 책들이 줄지어 꽂혀 있다. 스피커에서는 즐겨 듣는 노래가 나온다. 행거에 걸린 옷은 죄다 내가 좋아하는색뿐이다. 집 안 모든 가구와 소품은 나의 생활 반경과 습관에 따라 배치되었다.

집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굳이 오래오래 그 사람을 보지 않아도, 하나부터 열까지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아도 공간이 알려준다. 그 공간을 누리는 사람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는지, 옷은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독립한 지 3년째. 나는 많이 자란 것 같다. 단순히 시간이 흘렀기 때문은 아니다. 심리적으로도 많이 안정되었고, 이제는 내 색도 조금씩 찾아가는 듯하다. 혼자 살기 전에, 그러니까 집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던 일이다. 그저 나의 물건들이 놓여 있는, 내가 먹고 자는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정돈하다 보면 어느새 집이 아닌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고, 내가 가장 나답게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나의 집.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다.

 * 에세이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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