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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택시 기사님과 함께 '좌파 새끼들'을 욕한다

여러분에게도 권하는 방법이다

  • 박세회
  • 입력 2019.06.27 16:11
  • 수정 2019.06.27 16:19
ⓒ뉴스1

회사가 공덕이고 집이 안국이라 급할 때면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 서대문에서 좌회전하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동아일보 건물을 끼고 P턴을 해 세종대로를 지난다. 세종 대로를 지날 때면 택시 기사님은 다섯 중 세 분 꼴로 ‘좌파 새끼들’을 욕한다.

″타다 이것들이 아주 우리 택시를 말려 죽여요. 좌파 새끼들이 정권을 잡으니까 나라가 망해가지고, 이제 곧 공산주의 될 텐데 이민이나 가야지.”

어제는 아주 격한 기사님과 만났다. 우리는 마포에서 새문안로를 타고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P턴을 받아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신호는 파란 불인데 차가 막혔다. 앞을 살펴보니 꼬리물기를 한 종로 방향 차량 두 대가 광화문 쪽 직진 차량을 막고 있었다. ”아, 정체 시간에는 경찰들이 교통정리 좀 잘 해줘야 차가 덜 막히는데”라고 혼잣말을 한 게 잘못이었다.

기사님이 외쳤다.

″아니 교통 단속이고 정리고 할 게 뭐가 있어. 이제 곧 망할 나란데. 그냥 싹 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래!”

″어제도 말이야. 2017년에 탄핵 시위하다가 애국당 열사 다섯이 죽었는데, 진상 규명을 하라는데, 천막을 와서 다 부수고 말이야. 박원순이가 좌파가 되어가지고. 응? 안 그래요? 좌파가 시위하다가 죽었으면 난리 났을 거 아니냐고. 신문사 이것들이 작당을 하고 기사 한 줄을 안 쓰고 말야. 아니 내 말이 맞지. 안 그래요?”

광화문의 다섯 열사는 자주 듣는 레퍼토리다. 진력이 났다. 처음에는 나도 최대한 공손하게 말대답을 했다.

″기사님, 근데 타다 1000대밖에 안 되지 않나요? 그게 택시 업계에 그렇게 큰 위협이 될까요?”

″기사님, 그때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망하신 분들 기사 꽤 나왔는데, 다수의 공감을 얻지 못해서 크게 다뤄지지 않은 거 아닐까요?”

그러나 이제는 절대 이런 말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냥 ”어휴, 정말요?”라고 말한다. ”나라가 정말 망하나요? 큰일이네요”라고 답한다. 애써 말대답을 했다가 큰 호통에 직면하는 수가 있다. 그렇다고 추임새 하나도 안 넣고 가만히 있으면 세상에 관심 없고 생각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정치가 다 남의 일 같죠? 그러다가 자기 일 되는 거여.”

″요새 젊은이들은 생각이 없어. 우리 때는 스무 살만 먹으면 다 어른이었다고. 나도 막 스무살 먹고 87년에 종로에 나가서 민주화 운동하고 그랬다니까.”

정치 냉담자 행세를 하면 어쩐지 기사님의 운전대가 거칠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 방법은 마동석 정도 되는 외모의 남자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결국 나는 매일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의 심정으로 기사님의 가락에 맞춰 탬버린을 친다. ”에휴 좌파가 문제네요”, ”타다 그거 다 불법 아닌가요?”, ”내로남불 정말 너무하죠”. 택시 기사님이 만족한 표정을 짓고 나면 운전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좋은 동네 사시는구먼, 나도 종로가 고향인데, 예전에 이동네는 다 한옥이었어요.” 골목길을 올라가시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으시다. 탬버린만 좀 치면 이렇게 택시가 편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네이버에 택시 스트레스를 찾아보니 타다 욕, 문재인 대통령 욕, 문재인 찍은 젊은이 욕, 생각 없는 좌파 욕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현대인이 감내해야 할 디폴트 스트레스 중 하나다. 그런 분들께 권한다. 괜히 싸우거나 맞서려 하지 말 것. 정치에 관심 없는 척 하지 말 것. 기사님과 함께 이 세상 좌파 빨갱이 반미주의자들을 욕하라. 그게 가장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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