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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왜 르누아르 혐오가 번지고 있을까?

'신은 르누아르를 싫어한다'

  • 박세회
  • 입력 2019.06.26 14:21
  • 수정 2019.06.26 14:37
'르누아르는 그림을 못 그려'(R.S.A.P.) 단체의 회원들이 보스턴 미술관 앞에서 르누아르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그림을 못 그려'(R.S.A.P.) 단체의 회원들이 보스턴 미술관 앞에서 르누아르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고 있다. ⓒBoston Globe via Getty Images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미술평론가 세바스천 스미는 25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르누아르의 사후 100주년을 기리는 한 누드화 전시회에 대한 리뷰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르누아르를 싫어하시나요? 당신만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르누아르에 대한 증오는 현대 미술계에서 보편적인 현상이고 매해 더 많은 지지자가 생기고 있습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르누아르가 미국의 미술계에서 증오의 대상이 된 이유는 뭘까? 기념비적인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15년 10월 보스턴 미술관 인근에서는 ‘신은 르누아르를 싫어한다‘는 푯말을 든 사람들이 거리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르누아르는 그림을 못 그려’(Renoir Sucks at Painting)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 맥스 겔러의 주도하에 열린 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르누아르의 작품 앞에서 역겨워하는 표정을 짓는 사진을 열심히 올리고 있다.

당시 이 행동가들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에 대해 얼마나 깊은 증오심을 가졌는지를 설명한 애틀랜틱의 기사를 보면, 르누아르에 대한 증오는 역사가 깊다. 르누아르는 당대에도 ‘선과 구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색을 난잡하게 사용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애틀랜틱은 ”그의 작품은 모네의 작품처럼 빛과 어둠에 대한 형식적인 탐구나 마네의 작품처럼 세기말의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지 않았다”라고 평했다. 

ⓒUniversalImagesGroup via Getty Images

애틀랜틱이 언급한 르누아르의 말 중에서 르누아르가 생각한 그의 작품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는 말년에 ”내게 있어....그림은 소중하고, 기쁨을 주고 예뻐야 한다. 그래 예뻐야 한다!”라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누드로 들어가면 그 비판은 더하다. 매사추세츠의 윌리엄스타운에 있는 클라크아트 갤러리에서는 지금 한창 ‘르누아르 : 더 바디 더 센스’(Renoir: The Body, The Senses)전시가 열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에서 미술평론가 스미는 ”르누아르를 증오하는 것은 미적인 판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라며 ”그것은 신경증적인 고통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증오는) 현대의 누드가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아니면 단순히 육체적으로 설득력 있는 현실의 일부를 표현해야 한다는 정당한 본능에 근거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르누아르의 모델들은 끊임없이 소름 끼치게 비슷한 모습(넓은 눈, 앙증맞은 코, 통통한 볼)으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다”라며 ”그의 스타일이 시종일관 주제를 압도해서 신체, 꽃, 하늘, 나무 등이 마치 다 같은 뽀송뽀송한 물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며 이 모든 것들이 구분되지 않는 어떤 예쁜 수프 한 사발 같이 섞여 있다”고 밝혔다. 

물론 스미의 글 전체가 르누아르의 작품을 폄하할 목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피에르 보나르는 왜 르누아르를 숭배했는가”라며 ”베르트 모리조, 클로드 모네, 폴 세잔은 왜 그리도 르누아르를 숭앙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Christophel Fine Art via Getty Images

그는 특히 마티스가 ”그 누구도 르누아르보다 사랑스러운 누드를 그린 적은 없다. 그 누구도”라고 말했다며 ”누드에 대해서 마티스가 아무것도 모르고 한 소리라고 하는 건 마치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조악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한편 2015년 소위 ‘르누아르 혐오 운동‘이 일어난 이후 미국의 언론은 이에 대해 여러 차례 논한 바 있다.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터 슈젤달은 ”르누아르에 대한 혐오는 곧 지나갈 것이다”라는 글을 뉴요커에 기고한 바 있다. 그는 이 글에서 르누아르 헤이터(hater)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일컬으며 ”시위대들은 ‘부지발의 무도회’(Dance at Bougival)를 진정으로 감상한 적이 있는가?”라고 역설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1919년 12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올해는 그의 사후 100주년이 되는 해로 세계 여러 곳에서 기념 전시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부지발의 무도회’(Dance at Bougival, 1883)
‘부지발의 무도회’(Dance at Bougival, 1883) ⓒDEA PICTURE LIBRARY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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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술 #르누아르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