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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가난이라는 감각

'기생충'은 반환점을 돌아온 봉준호가 비로소 만난 전환점이다.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배우 송강호의 입으로 발음된 이 대사는 <기생충>의 예고편이 공개됐을 당시부터 귓바퀴를 감아 당겼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 계획이란 무엇인가. 남루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가족이 세울 수 있는, 기대할 수 있는 계획에 관한 호기심. 1분 남짓한 짧은 예고편만으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두 가정의 빈부 격차와 도무지 알 수 없는 부자간의 계획 그리고 더더욱 짐작하기 힘든 포스터의 분위기. <마더> 이후로 10년만의 국내 복귀작이라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기대감을 모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은 강렬한 물음표를 쥐고 영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란 아우라는 그러한 호기심을 더하는 강력한 수식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담담하게 불을 밝힌 스크린 너머로 비춰진 창문 그리고 창문 밖의 풍경. 그 풍경이 바닥까지 내려앉아 있다. 창이 낮다. 반지하 방에서 보이는 세상은 방만큼 낮다. 그리고 그 낮은 세상의 풍경보다도 낮은 방구석에 앉아있던 기우(최우식)의 찌푸린 미간이 카메라에 잡힌다. “큰일났다.” 기우가 말한다. 윗집의 와이파이에 비밀번호가 걸렸다. 요금이 밀려서 통화도, 데이터 사용도 끊긴 스마트폰에 숨을 불어넣던 윗집의 와이파이가 끊긴 것이다. 방구석에 누워있는 아버지 기택(송강호)은 아내 충숙(장혜진)의 발길질에 마지못해 일어나 앉아 아들 기우에게 말한다. “와이파이 그거 높이 들어야 해.” 아들은 그런 아비의 말도 잘 듣는다. 다행히도 와이파이가 잡혔다. 화장실 구석에서 인근에 새로 생긴 커피전문점의 와이파이가 잡혔다. 덕분에 피자가게에서 들어온 포장박스 접기 아르바이트도 구했고, 네 가족이 함께 박스를 접은 뒤 일당을 받았다. 구김살을 쫙 펴주는 다리미 같은 돈을 번 가족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기생충>에 등장하는 네 가족은 기이할 정도로 낙천적이다. 좁고 습한 반지하 방에 사는 네 가족은 가난에 충분히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계획이 생긴다. 친구의 주선으로 부잣집 고등학생 딸의 영어과외선생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기우(최우식)는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누이 기정(박소담)을 부잣집 막내 아들의 미술 과외 선생으로 추천한다. 그 뒤로 계획은 점차 치밀하고 대담해진다. 아버지 기택(송강호)과 어머니 충숙(장혜진)까지 끌어들여 판을 키운다. 개인사업이 가족사업으로 확대된다. 결국 모두 다 취업에 성공한 네 가족은 반지하 방에서 고기도 굽고, 만원에 열두 캔인 맥주만 먹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만 같다. 술을 잔뜩 먹고 흥에 겨울 줄만 알았던 그 밤에 찾아온 불청객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은유이기도 하지만 직격탄처럼 날아드는 한 순간의 직설이기도 하다. 주인이 사라진 대저택의 거실에서 호강을 체험하던 가난한 가족들은 그 누구도 예상하거나 예감하지 못했던 바닥과 맞닥뜨린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마주한 더 깊은 바닥은 절망과 혼돈을 안기는 동시에 선을 넘는 깨우침을 안긴다. 항상 선을 넘을 듯 넘을 듯 넘지 않지만 결국 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깨닫게 만든다. 빈부 차이란 태도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감각적인 영역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지하철 타는 놈들 특유의 냄새’를 혐오하는 박사장(이선균)은 자신이 혐오하는 그 감각이 어느 바닥에서 유래된 것인지 짐작조차 못한다. 정작 혐오의 대상이 되는 기택의 가족만이 안다. 반지하 냄새라는, 좀처럼 벗겨지기 힘든 가난의 정체성. 냄새 앞에서 코를 막는 상류층의 무신경함과 하류층의 모욕감이 서로 선을 넘는다. <기생충>은 바로 그런 양극화된 계층적 분열을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건드린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선 관객들 중에선 아마 그 선을 넘었다는 냄새, 그러니까 지하철 타는 놈들 특유의 냄새에 관해 두고두고 곱씹었을지도 모른다. 상영이 끝난 뒤에 남는 여운이 감상적인 측면을 넘어 실제적인 감각을 건드린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적 체험으로 다가온다. 쏟아지는 비를 맞고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기택과 기우 그리고 기정의 모습에서, 그 와중에 계획이 무엇인지를 묻는 그 암담함 속에서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계층을 되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저택의 호사로움을 탐닉하고 부유한 삶에 자신들을 대입하던 가족들이 급류에 휘말리듯 직면한 위기로부터 가까스로 탈출한 뒤 자신들의 처지로 돌아가듯 긴 계단들을 따라 끝없이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순간에서 전해지는 허탈함은 오직 영화 속 기택의 가족들만의 몫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은 부유한 타인의 삶에 도취돼 있던 가족의 현실감각을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동시에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감으로 관객을 몰아간다. 극의 전반을 지배하던 코미디 감각이 강렬한 서스펜스로 급선회한다. 기택의 가족들이 반지하 방보다 더욱 깊고 음침하게 내려앉은 삶을 목격할 떄 관객들 역시 영화가 비로소 드러낸 괴상한 발톱과 마주해야만 한다. 영화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더 이상 웃을 수 없는 코미디가 이어지고, 심상치 않은 서스펜스의 예감이 목까지 차오르는 듯한 기이한 기분이 느껴진다. 영화의 곳곳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디테일들이 날카로운 복선들로 돌아와 예사롭지 않은 예감들로 이어진다. 

<기생충>은 빈부 격차라는 이 세계의 이분법적인 현실성을 보여주되 누군가의 편에 서지 않는다. 다만 공감할 뿐이다. 혐오와 차별의 뇌관들, 폭력의 연쇄반응, 그러한 동의를 바탕으로 <기생충>은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 속에 전시되고 있지만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납득되고, 더없이 잔혹한 우화로 팽창하지만 현실적 울림이 있는 사연으로 귀결된다. 반지하 방에 자리한 기우의 얼굴에서 시작해 역시 반지하 방에 자리한 기우의 얼굴로 끝나는 <기생충>의 수미상관 구조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나직하게 들려지는 기우의 새로운 계획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긴 겨울 같다. 

결과적으로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안에서 유일하게 절망적인 여운을 남기는 동시에 가장 속 깊은 연민을 품게 만드는 영화 같다. 봉준호 감독의 경력이 <설국열차>와 <옥자>라는 반환점을 지나 비로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기생충> 이후로 봉준호가 나아갈 세계가 너무 궁금하다. 정말 보고 싶다.

* <GQ KOREA> 7월호에 게재한 글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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