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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자격

이 커플의 사랑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뉴스1

과연 이 커플의 사랑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불륜, 이혼소송으로 몇 년째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씨 얘기다. TV와 영화에선 ‘아름다운 불륜’ 이야기가 넘쳐나고 찬사를 받건만, 현실은 달랐다. 2017년 기자회견에서 “진심으로 사랑한다.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정면돌파를 선언했으나 여론은 싸늘했다. 국내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감독의 아내는 (협의)이혼을 거부했고, 감독은 이혼소송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 반 만인 지난주 서울가정법원은 홍 감독의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유책주의’에 의거한 판단이다.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는 1965년 대법원 판결 이후 재판이혼에 유책주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지난해 전체 이혼 중 협의이혼은 78.8%, 재판이혼은 21.2%였다). 경제력 없는 조강지처를 맨몸으로 쫓아내는, 이혼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해서다. 서구 선진국들이 사실상 결혼관계가 파탄 났으면 어느 쪽이든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 ‘파탄주의’를 택하는 것과 대비된다. 과거보다 ‘축출이혼’이 많이 줄었고, 무엇보다 파탄 난 결혼생활을 유지하라고 국가가 강제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고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무조건 결혼을 유지하라기보다 유책배우자의 배상 책임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이고 필요하다는 얘기다. 현재 재판이혼시 위자료는 3000만~5000만원선. 이처럼 낮은 위자료, 재산권 분할 등을 징벌적 손해배상에 버금갈 정도로 높여 안전망을 확보하면서 파탄주의로 전환하는 것이 시대에 맞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책주의를 재확인한 지난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유책주의 7, 파탄주의 6으로 입장이 경미하게 엇갈렸었다.

유책주의라는 법리 뒤에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약자인 여성 보호 외에 ‘가정은 지켜져야 한다’는 강한 가족주의가 숨어 있다. 좋게 말하면 ‘내가 잘못하지 않으면 이혼당하지 않도록 가정지킴이인 국가가 혼인관계를 보호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인을 앞서는 가정이란 없으며, 유책 사유라는 것도 일방적이지 않다. 설혹 유책 배우자라 할지라도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인정돼야 하고 말이다.

가족주의는 단지 이혼 문제뿐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강력한 작동원리다. 국가는 확장된 하나의 큰 가족이며, 기업은 고객과 직원을 가족처럼 모신다(고 약속한다). 대통령은 ‘국부’이며, 식당 종업원은 ‘이모님’이다. 거꾸로 한국의 가족에게는 엄청난 사회적 짐이 부여된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하니 육아·보육·교육·주거·노인돌봄 등을 전부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야 해, 가족이 피곤한 사회다. 『내일의 종언?』을 쓴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만혼·비혼·초저출산 등 최근 가족해체·탈가족화 경향은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화가 아니라, 국가가 사회적 솔루션을 일체 가족에 떠넘긴 탓이다. “서구와 달리 자유와 책임의 기본 단위를 개인 아닌 가족으로 설정하고, 가족의존적 경제사회 체제의 결과 만성적 가족피로 증후군이 나타났으며, 외환위기 이후 비혼과 만혼 증가·저출산·노인자살 등 가족 재생산위기가 구조화됐다”는 설명이다.

가족을 개인에 앞세우는 가족주의 사회이자, 가족이 피곤해 새 가족을 구성하지 않으려는 탈가족 사회. 거기에 이혼에 대한 결정권마저 개인 아닌 국가가 갖는다면, 오늘 우리의 가족은 너무 불행하고 전근대적 아닌가.

참고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기혼여성 1만12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부부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면 이혼하는 게 낫다’는 의견은 72.2%였다. ‘자녀가 있어도 이혼할 수 있다’는 답도 67.1%에 달했다. 지난해 이혼은 10만8700건, 전년보다 2.5%(2700건) 증가했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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