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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20일 15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20일 15시 19분 KST

하연수 앞에서 예의를 논하는 이들의 예의를 논해보자

누가 제일 무례한가?

‘싸가지’란 건 대체 뭘까? 배우 하연수씨의 태도 논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어제 오늘, 종일 포털 실시간 검색어로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하연수 씨가 본인의 SNS계정에서 뭔가 무례한 댓글을 달았다는 게 소위 ‘논란’의 골자였다. 대체 뭘 했길래? 나는 정작 예의 그 댓글을 읽어보고 조금 놀랐다. 너무나 멀쩡한 댓글이었기 때문이다. 저걸 가지고 저 난리들을 친다고?

기사 하단에 달린 댓글들을 보았다. 온갖 사람들이 욕설, 인신공격, 모욕적인 언사들로 하연수 씨의 ‘예의’와 ‘태도’를 비난하고 있었다. 실소가 나왔다. 저런 말뽄새로 지금 ‘예의’를 논한다고? 저런 악플러들이 ‘댓글 태도’에 대해 지적한다고?

 

 

문제라고 지적된 댓글 두 개를 보고 우선 두 가지 정도가 떠올랐다. 첫째, 이 사람 어쩌면 본인이 대중 연예인이라는 정체성 보다 미술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클지 모르겠다. 둘째, 대중들 입맛에 맞는 바보처럼 혹은 애처럼 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구나.

인스타그램을 잠깐만 봤는데도 하연수 씨가 미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르고 보면 그녀는 배우가 아니라 미술가에 더 가깝다고 느껴질 지경. 본인의 작품을 판매한다는 게시물이나 본인 전시회 소식은 배우 하연수로서가 아니라 미술가 하연수로 올린 것이라는 게 충분히 읽힌다. 헌데 거기다 대고 ‘(작품을)본인이 작업한 거냐’는 둥 ‘전시회 가면 작가가 있느냐’는 둥 하는 소리를 하는 게 사실 상식적이진 않다. 누가 미술가에게 그 따위 질문을 그렇게 쉽게 하나.

사실상 미술을 한다는 정보가 계정에 뻔히 다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술가로서의 정체성과 맥락을 싹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한 것이기 때문에, 따지자면 차라리 원 댓글이 더 무례하다. 원 댓글 자체가 하연수 씨가 뭔 소리를 하든, 무슨 정체성을 보이든, 자기들은 하연수 더러 ‘널 연예인으로서만 소비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에 비해 오히려 사람들이 소비하고 싶어하는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미술가로서 대답하는 하연수는 성숙한 것 아닌가? 소위 (대중들이 여성 연예인의 전형적 태도로서 기대하는) 미성숙한 ‘척’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애기인 ‘척’ 연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애초에 무례함이란 뭘까? 예의라는 개념은 타인에게 제 멋대로 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발명된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 태도를 보고 무례하다고 하는 것이다. 소위 ‘대가리를 숙이지 않는 형식’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하연수를 비난하는 대중들은 오로지 소비자-판매자로서의 예의만 논한다. 존재의 상호 존중이라는 예의의 본질이 아니라 형식과 기분만을 문제 삼는다. 이른바, 내가 팬인데 왜 머리를 숙이지 않느냐, 내가 손님인데 왜 더 충분히 친절하게 굴지 않느냐는 것이다. 연예인은 이러이러해야 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식이다.

 

 

우리 사회는 예의와 태도를 갑과을, 소비자와 판매자의 틀 안에서 형식으로서만 논함으로서, 오히려 진짜 ‘예의의 본질’을 질식시켜 왔다. 이를테면, 손님이 왕이라는 관념이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종업원에게 갑질하는 동안 사실상 ‘인간에 대한 예의’는 휘발되는 것이다.

자기 작품 전시회 소식을 알리는데, (작품과 무관하게) ‘연예인 하연수’도 만날 수 있냐고 묻는 사람과 거기에 ‘상식적인 대답’을 건조하게 했을 뿐인 ‘미술가로서의 하연수’. 여기서 ‘연예인으로서의 건방짐만’을 건져올리며 상스러운 비난을 던지는 대중. 그것을 ‘논란’으로 포장해 연예인을 때리며 조회수 장사를 하는 언론.

누가 제일 무례한가?
인간에 대한 예의부터 갖추는 사회가 되기를.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