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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20일 11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20일 13시 25분 KST

'인스'로 '다꾸'하는 마음

2019년 20대의 다꾸는 조금 다르다

취재원 제공
한 20대 다꾸러의 다이어리 일부. 그는 글을 많이 써서 비교적 꾸밈이 적은 편이라고 한다. 시계처럼 돌아가는 문양을 크로노덱스 도장으로 찍어 쓴다.

이런저런 인연이 겹쳐 20대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 했다. 대화 중에 한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제가 ‘다꾸’를 하거든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모른다는 걸 인정하면 나이 들어 보일까 봐 “아, 다꾸 하시는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4명이 있었는데, 나만 빼고 다들 다꾸가 뭔지 아는 눈치였다. 결국 물어봤다. “다꾸 모르세요? 다이어리 꾸미기요. 인스로 다꾸 꾸미잖아요.” ‘인스’라 줄여 말하는 인쇄소 스티커는 개인이 제작하거나 인쇄소에서 대량으로 찍어내 가위로 하나하나 오려 사용하는 스티커를 말한다. 인스에는 꾸밈용 손글씨 문구, 각종 캐릭터, 그 외 다양한 바탕용 도안이 쓰인다. “펜도 장난 아니에요.” 다꾸하는 친구가 말했다. 그의 필통에는 한 자루에 2700원짜리 하이테크 펜의 모든 색상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다꾸 열풍은 새로운 게 아니다. 2007년께 이미 〈다이어리 꾸미기〉라는 단행본이 나왔으니 꽤 오래된 취미다. 그러나 2019년 20대의 다꾸는 좀 다르다는 게 그 친구의 설명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그가 다꾸에 빠진 건 지난해 졸업하고 취업난에 처하면서다.

그는 “다이어리 꾸미기라고 해서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마테(마스킹 테이프), 디테(디자인 테이프), 불렛 다이어리(bullet diary·업무와 이벤트의 중요도에 따라 꾸밀 수 있는 다이어리의 한 형태), 크로노덱스(Chronodex·도장 형태로 찍는 하루의 스케줄) 등 엄청 다양한 부자재와 스타일을 활용하는 복잡한 신세계가 펼쳐져 있더라”라며 “그 세계에서는 내가 조금만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하면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심신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다꾸러’(다꾸하는 사람) 역시 “다꾸를 조금씩 하기는 했지만, 취업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한창 열중하게 됐다”며 “인스를 사서 가위로 하나하나 오리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다는 게 요점이다. 세상 살면서 기분 좋을 일이 별로 없는데 다꾸를 하면 기분이 좋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퇴행적 취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친구는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에게 인스를 사러 갔다가 당황한 일도 있다. 당시 그에게 인스를 팔러 나온 사람이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일화를 말하며 “나이 드신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중고등학교 때나 하던 것이라고 하더라”며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지금 내게 다꾸는 확실하게 만족을 주는 취미”라고 밝혔다. 확실하다는 게 중요하다.

확실하게 기분 좋은 취미는 개인의 기호를 탄다. 또 다른 20대 친구는 떡볶이에 꽂혔다. 광고학을 전공한 친구는 얼마 전 서울 혜화동, 가좌동, 서교동 일대를 아우르는 떡볶이 투어를 다녀왔다. “친구 4명이 모여 쌀떡과 밀가루떡 집 두 개, 부재료가 맛있는 집을 하나를 선정했어요. 그 과정도 재밌었죠. 떡볶이가 맛이 없을 수가 없으니 기분이 좋은 건 당연하죠.”

내가 사는 곳 근처 익선동 카페 골목에는 주말이면 사람들이 수십미터씩 줄을 선다. 개중에는 ‘디저트 도장 깨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는 ‘앙버터’(팥앙금과 버터 레이어가 들어간 빵) 열풍이 불었다. 나 역시 앙버터 식빵, 앙버터 크루아상, 앙버터 소보로, 앙버터 스콘을 다 먹어봤다. 앙버터 다음에는 수플레 팬케이크 열풍이 상륙했다. 지금은 흑당이 최신 유행이다.

떡볶이 투어러 친구는 “앙버터는 이제 한물 지난 느낌이고, 지금은 흑당 버블 티가 대세”라며 “멀리 사는데도 우리 회사 근처인 신사동 흑당 버블 티 가게에 다녀간 친구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어 오늘 아침 익선동에 흑당 버블 티를 먹으러 다녀왔다. 달고 맛있었고, 기분이 좋았다.

다꾸러 친구들에게 디저트도 먹으러 다니느냐고 물었다. 앞서 말한 다꾸러는 “얼마 전에 디저트 수플레 팬케이크를 먹고 왔는데 비싸고 맛있었다”고 말했다. 최신 유행하는 디저트를 먹으면 인스타그램에 자랑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인스타그램은 안 한다. 대신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다이어리에 붙인다. 다이어리가 나만의 인스타그램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남들이 뭘 하든 뭐라고 하든 상관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멋진 말이다.

*이 글은 한겨레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