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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19일 17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19일 17시 05분 KST

내 집이 생기면 부모님 눈치 안보고 가장 먼저 하고 싶던 일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

예쁜 음식을 근사한 그릇에 담는다.

은은한 조명 아래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도란도란.

우리들만의 홈파티.

평소 한꺼번에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아서 매번 친구 한 명씩을 집에 초대하곤 했다. 파티다운 홈파티를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술자리를 몇 번 가지자 내 친구들끼리도 서로 친해졌다. 이를 계기로 종강을 며칠 앞둔 12월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고등학교 동창, 대학 동기, 아르바이트를 같이하던 친구까지. 모인 이들의 접점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친구들이니만큼 성격이 다들 비슷했고 다행스럽게도 잘 어울렸다.

자취를 시작한 지 반년도 안되었던 나는 요리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각종 식재료와 부재료 때문에 도마를 가로로 놓을 자리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혼자 동분서주했더랬다. 좁은 집에서 만드는 것도, 치우는 것도, 설거지하는 것도 번거로운 음식을 기꺼이 준비하게 되는 힘은 친구들의 환호성에서 나왔다.

꼬들꼬들 항정살양념구이와 베이컨콩나물볶음. 그리고 직접 튀긴 치킨. 내가 메뉴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친구들은 그걸 테이블로 옮겼고 그릇을 준비했으며 냉장고에서 술을 꺼냈다. 그릇이 테이블에 놓일 때마다 들려오는 즐거운 소리. 혹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일어섰다가, 앉았다가,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가, 뒤로 갔다가 하며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모습.

Eiichi Onodera via Getty Images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위잉 시끄럽게 돌아가던 환풍기가 꺼지고, 모두들 작은 테이블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연말 느낌을 내려고 주렁주렁 걸어둔 꼬마전구와 손수 만든 네온사인이 함께 켜지니 내가 만든 내 집이지만 정말 예뻤다. 마음이 너무도 잘 맞는 친구들과 밤이 깊도록 편하게 술을 마셨다. 베베도 덩달아 기분이 좋은지 연신 꼬리를 흔들며 바쁘게 돌아다녔다. 친구 중 하나는 음악을 하고 있어서 이날도 커다란 기타를 어깨에 메고 왔는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은 편의점에서 산 팝콘을 한가득 상에 펼쳐두고 초대한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도 했다. 물론 영화 중반이 지나자 한 명은 벽에 기대고, 한 명은 침대에 눕고, 또 다른 한 명은 팔을 괴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즐겁고 편안했다.

가끔은 낮에 모여 차나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도 있었다. 큰 목소리로 빠르게 나누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들. 막 구운 팬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커피까지 더해지면 여느 카페가 부럽지 않았다.

나만의 집에 나만의 부엌과 나만의 식탁을 가지기 전에는 왜 굳이 집으로 손님들을 초대해서 귀찮게 그 많은 그릇과 커트러리를 꺼내는지, 설거지만 해도 삼십 분이 넘게 걸릴 것 같은데 왜 기꺼이 그 많은 음식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부류는 뭐랄까 나랑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여유롭고, 요리도 잘하고, 널찍한 집에 근사한 아일랜드 조리대를 가졌을 것만 같은.

그런데 마음먹고 준비해 보니 친구 초대는 생각만큼 번거롭지 않았다. 내 부엌에서 내가 요리할 수 있는 만큼을,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준비하면 그만이었다. 또한 내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을 수 있는 수의 친구들만 초대하면 되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어떤 메뉴를 구성해야 서로 어울릴까 고민하면서 장을 보는 건, 누군가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며 설레는 마음과 똑같았다. 그렇게 준비한 재료로 정성스레 요리하고, 그 음식을 먹은 친구들이 기뻐해주는 건 그들보다도 내가 행복한 일이었다. 가끔 스테이크에 로즈마리라도 하나 올리면 괜히 쉐프가 된 것처럼 으쓱하기도 했다. 요리하기 벅찬 날에는 보쌈이나 치킨, 회 같은 배달 음식의 힘도 빌렸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는 베베를 데려갈 수 있을까 늘 걱정이었다. 약속 장소에 전화해서 강아지가 같이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가 퇴짜 맞기 일쑤였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베베 걱정이 사라진 게 가장 좋았다. 다행스럽게도 친구들 모두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었고, 어떤 친구는 한 시간이 넘게 떨어진 곳에 살면서도 매번 먼 길을 기꺼이 와주었다. 다른 친구는 대형 마트에 들러 생필품과 저녁 재료를 한가득 사오기도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올 때마다 손에 커다란 와인을 한 병씩 들고 왔다.

다들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해야지. 내 집까지 모인 게 후회되지 않도록. 좋은곳, 좋은 시간, 좋은 음식으로 기억되도록.

* 에세이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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