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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왜곡하는 언론이어서야

'언제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된다.

강의가 끝난 뒤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주주총회 장소를 점거하고 농성을 했잖아요. 의자를 집어 던지고 소화기를 난사하는 등 폭력행위를 해서 실명 위기에 놓인 직원까지 생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뭇 자신이 매우 정의롭다는 자부심이 서려 있는 표정이었다.

정작 의자를 집어 던지고 소화기를 난사한 사람들은 조합원들이 아니라 회사가 동원한 용역 직원이었고, 실명 위기에 빠진 직원이 있다는 것은 회사의 주장을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서 쓴 기사일 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언론에 사용된 사진들은 대부분 회사가 제공한 것들로 최대한 폭력적으로 보이게 찍은 장면들이었다는 설명을 한 뒤, 그 질문자에게 반문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주주총회 장소를 점거한 이유는 혹시 아시나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께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당연히 설명하지 못했다.

‘언론을 취재하는 언론’ <미디어오늘>의 기사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7명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1명은 실명 위기”라고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언론 매체는 22개에 이르렀다. 실제로는 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실명 위기처럼 심각한 상태는 없었으며 모두 치료를 마치고 귀가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실명 위기’라는 거짓 보도를 했던 언론사들 중 단 한곳만 기사를 수정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매체의 독자들도 실명 위기에 빠진 직원이 있었다는 큰 기사만 기억할 뿐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작은 정정 기사까지 봤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언론이 노동문제를 보도할 때 이런 일은 ‘언제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된다.

최근 한 경제신문이 “법 위의 권력 민노총 대해부”라는 기획으로 10여개의 기사를 실었다. 지난번 칼럼에서 썼듯 굳이 ‘민노총’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민주노총에 대한 일종의 비아냥일 수 있다. 그 기획의 첫번째 기사 제목은 “대한민국 ‘제1권력’ ‘무소불위’ 민노총…53개 정부위서 국정에 입김”이었다. “정치·경제·복지 등 전 분야서 기득권 지키려고 ‘실력행사’” 등의 부제가 붙었다. 기사 제목만으로도 마치 민주노총이 사회 모든 분야에 참여해 일일이 간섭함으로써 사회 발전의 저해 요소로 기능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53개의 각종 정부 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나? 행여 530개라고 해도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각종 위원회에는 노사정이 각 3분의 1 비율로 참여하고 노동자 대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절반씩 참여하니 민주노총을 대표하는 구성원은 전체의 6분의 1 비율이다. 저해 요소가 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가장 강력한 의사 표현 수단이 ‘불참’ 정도이지 실력으로 회의 개최를 저지하거나 무산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그보다 훨씬 많은 80여개에 이르고 한국경영자총협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영자 대표가 참여하는 정부 기구 수는 훨씬 더 많다.

경제신문의 이런 행태는 오래전부터 반복돼온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 잡혀 있다. 다른 경제신문이 2002년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의 기획 기사를 연재한 적이 있다. 큰 활자로 전면을 장식한 기사 제목은 “노조 하나에 계파만 9개”였다. 제목만으로도 독자들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 9개로 분열된 상태로 뭘 할 수 있겠나”라고 한심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기사 내용은 현대자동차 노조를 이르는 말이다. 조합원 수가 대략 5만명에 이르고 영호남과 수도권 등 전국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역 조직을 갖고 있는 노동조합에 노조 활동을 잘해 보자고 모인 조직이 9개 정도 있는 것이 과연 지나치게 많은 것일까?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 때가 되면 그 노선이 서너개 정도로 정비된다. 훌륭한 민주주의일 수도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을 기득권자들의 이기적 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형성된 것도 보수 언론의 책임이 크다. 이 문제를 올바로 설명하기에는 대학에서 한학기 정도 걸리는 학습 내용이 필요하다. 어제, 울산 지역 노동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평소 대기업 노조 분들 거리감이 있었는데, 오늘 회의에서 몇분들 발언을 들으니 연륜이 그냥 있는 게 아니구나, 참 멋지시다, 느꼈어요. 세상은 저런 분들 때문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나 봐요.” 내가 볼 때에는 비정규직 노조 활동을 20년 넘게 해온 그 사람이 그렇게 보였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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