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초등학생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보습학원 원장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크게 감형되자 비판 여론이 뜨겁다. 청와대에 해당 판사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오자, 법원은 ‘법률에 따라 자칫 무죄가 될 수 있는 사안인데 정의 실현 차원에서 직권으로 유죄를 선고한 사안’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법원 안팎에서는 단순히 감형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아동 대상 성범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초동수사 부실,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과 양형기준, 성인 기준의 폭행·협박을 피해 아동에게 따져묻는 법원의 태도가 혼재돼 빚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징역 8년→징역 3년
지난해 4월 보습학원을 운영하던 이아무개(35)씨는 채팅앱을 통해 10살짜리 여자아이를 만났다.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소주 2잔을 마시게 했고, 술에 취해 잠들려는 피해자의 옷을 벗긴 뒤 양손을 잡아 누른 채 성폭행했다. 검찰은 이씨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한 ‘13살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기소했다.
지난 13일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한규현)는 징역 8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이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과 폭행·협박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13살 미만 미성년자 강간죄가 인정되려면 신체 폭행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협박이 동반돼야 한다. 1심은 이씨가 피해자의 몸을 누른 행위가 폭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감경·가중 사유가 없다면 징역 8~12년을 양형기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이씨의 행위를 폭행으로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경찰 조사 때 피해자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이 유일한 증거였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2시간 동안 진술을 피하다가 조사관이 ‘종용’하자 진술을 시작한 점, 경찰이 ‘그냥 손을 누르기만 한 것이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인 점 등을 종합해 “몸을 누른 행위를 피해자의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형법의 ‘미성년의제강간죄’를 적용했다. 이 죄는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13살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다면 무조건 처벌이 가능하지만, 대법원 양형기준(징역 2년6개월~5년)은 낮은 편이다.
아동은 없고 여성만 남았다
이번 논란은 13살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서 폭행·협박의 유무에 따라 형량에 큰 차이가 나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여성단체와 아동청소년 성폭행 사건을 많이 다뤄본 법조인들은 ‘아동은 사라지고 여성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폭행·협박이라는 강간죄 성립 요건을 13살 미만 미성년자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나, 성인 여성도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상 폭행·협박’을 10살 아이에게 묻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