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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는 '촛불집회'를 엮어 간첩 사건을 기획했다

기무사가 1980년대 간첩 사건을 조작할 때 단골로 찾던 '조총련'을 앞세웠다.

“2017년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19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같은 꿈을 꾼 것일까.”

지난해 8월 제1225호 ‘계엄은 실화다’에서 던졌던 질문이다.

“전두환에 비해 보잘것없다.”

당시 조 전 사령관의 행적을 되짚은 뒤 나온 답이었다. 드러난 계엄 문건만으로는 계엄을 선포할 만한 여건도 그것을 유지할 만한 동력도 찾을 수 없었다. 신군부 세력에 비교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이번 기회에 계엄 자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계엄 문건 작성 지시 혐의로 기소 중지된 조현천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법정에 세우지 못한 채 현실이 될 뻔한 ‘계엄령 미수 사건’도 미완의 수사로 봉합됐다.

10개월 만에 제1267호 ‘촛불집회 엮을 간첩 사건 준비했다’를 쓰며 조 전 사령관을 다시 떠올렸다.

“정말 당신은 전두환과 같은 꿈을 꿨단 말입니까.”

몇 달 전 기무사가 불법 사찰로 간첩 사건을 준비했다는 제보를 받고 나서 다시 물었다. 조 전 사령관이 지휘한 기무사는 함세웅 신부라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을 정확하게 겨냥해 간첩 사건을 기획했다. 기무사가 1980년대 간첩 사건을 조작할 때 단골로 찾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를 앞세웠다.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해 진보 진영의 대오에 균열을 내고 보수 진영을 재결집하도록 만드는 시나리오였다. 간첩 사건 기획은 계엄령을 선포한 뒤 조 전 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를 맡아 공안정국을 만들어갈 카드로 충분해 보였다. 조 전 사령관은 1980년 쿠데타와 내란음모 사건을 육사에서 배웠다. 그의 사조직 ‘알자회’와 함께다.

1980년 계엄과 간첩은 정국을 마비시키는 쌍끌이 프로그램이었다. 박정희가 사라지자 전두환은 계엄령을 기획한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조총련이 등장하는 내란음모 사건을 만들어 최대의 정적 김대중을 잡았다. 김영삼의 발이 묶였다.

2017년, 조현천이 검토(기획)한 계엄령이 선포된다. 40년 전 전두환의 합수본부장 자리에 앉는다. 조총련이 연계된 간첩 사건 기획을 꺼내든다. 실현되지 않은 조현천의 꿈은 어디까지였을까.

ⓒKIM MIN-HEE via Getty Images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이하 기무사)가 2016 ~2017년 촛불집회 당시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벌이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연계된 ‘간첩’ 사건을 기획한 뒤 이를 발표하려 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당시 기무사는 ‘조총련’ ‘간첩’ 등을 앞세우고 이와 함께 유력한 종교인, 정치인 등을 리스트에 등장시켜 촛불 민심의 흐름을 반전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행동 현장 실무자까지 감시

기무사가 주목한 단체는 함세웅 신부가 상임대표였던 ‘민주주의국민행동’(국민행동)이었다. 이 단체는 ‘박근혜 탄핵’을 공언하면서 2017년 대선에 민주정권을 수립하자는 목표를 내걸고 2015년 결성됐다. 국민행동 쪽의 말을 종합하면 결성 초기부터 정보기관의 첩보활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함 신부에게는 정보기관원이 직접 찾아와 동향을 살피고 갈 정도였다. 신부와의 면담이라고 할 수 없는 명백한 사찰이었다.

국민행동 관계자는 “2015년 단체가 출범한 뒤 정보활동을 벌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며 “(촛불집회 무렵) 함 신부만이 아니라 현장 실무자까지 감시 대상이 늘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기무사의 불법 사찰이 더욱 노골화한 것은 이 관계자의 짐작대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2016년 9월쯤이다. 기무사는 같은 해 8~9월 국외 공작으로 조총련과 국민행동이 관련됐다는 사실을 추론할 만한 자료를 입수했고, 간첩 사건 기획을 위한 사찰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기무사는 초기 사찰의 불법성을 희석(물타기)할 만한 결과물을 얻은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기무사는 우선 청와대에 사찰 결과를 보고하고, 민간 대공 수사의 합법성을 위해 국가정보원에 자료를 보내 공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와 별개로 물밑에서는 불법적인 간첩 사건 기획에 가속도를 붙였다. 불법 사찰은 기무사 내 일부 구성원들이 반발할 정도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가피한 기무활동이라는 말 한마디로 조직 내 반대는 쉽게 제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국방부 인사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 의원에게) 당시 분위기를 전하며 “그때 기무사 내부에서는 ‘계엄이다 뭐다 너절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공안활동을 하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누구도 못 건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작성된 것이 간첩 사건 기획 결과물, ‘리스트’다. 불법에 의한 것이든 진실이든 아니든 리스트의 힘은 세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21>이 몇 달 전 받은 1차 제보는 명단의 존재, 그 인원, 일부 명단 등이었다. 조직도가 그려졌다는 것과 일부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이후 리스트 인물 가운데 <한겨레21>이 군 안팎의 복수 취재원에게서 직접 확인한 것은 함세웅 신부와 현직 정치인, 국민행동 쪽 관계자까지 3명이다. 함 신부는 재야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정치권을 포함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진영의 대표성과 상징성을 두루 갖고 있어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정치인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촛불집회 등 현안에 다른 정치인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명단에 올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인물의 공통점이라면 2016~2017년 촛불집회 이전부터 꽤 오랜 기간 정보기관이 주목한 대상이라는 점이다.

탄핵심판 앞두고 전면에 내세울 우려

국민행동 상임대표인 함세웅 신부는 현재 안중근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함 신부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민주주의국민행동은 북과 전혀 관련이 없다.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기구”라며 “리스트는 물론이거니와 간첩 사건에 대한 얘기도 금시초문이다. (기무사가 간첩 사건을 기획했다면 이는) 촛불혁명을 흠집 내기 위한 모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스트에 언급된 나머지 인사는 국민행동 쪽 관계자로 기무사가 조총련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의심했던 인물이다. 기무사가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과 방북 경험이 있는 국민행동 관계자들을 불법 사찰하는 과정에서 범위가 좁혀져 이름이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21>은 첫 제보에 등장한 나머지 리스트의 인물들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낙인이 될 우려가 있어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명단 확인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그 진위와 무관하게 난색을 표했다. 과거 사례에 비춰봐도 간첩 사건이 공안 정국을 만드는 힘은 당사자를 옭아매는 리스트에서 나온다. 때로는 관련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공포를 유발하고 그들을 위축시킨다. 조총련 관련 사건은 더욱 그렇다. 현실에서 남북 교류 등의 차원에서 조총련과 만남이 이례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법 규정을 원칙적으로 적용하면 사전 승인이나 사후 신고하지 않을 때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 등)이 된다. 조총련은 국가보안법상 이른바 ‘이적단체’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만 보면 입증 책임은 수사기관에 있지만 현실에서는 결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자신이 만난 사람이 조총련이 아니라거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문제될 일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리스트에서 언급된 것으로 알려진 한 정치권 인사도 <한겨레21>과 만난 자리에서 같은 이유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간첩 사건 기획을 한창 준비 중이던 2017년 2월, 기무사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앞두고 정국의 전면에 등장할 채비를 마쳤다. 군 통수권자가 복귀해 계엄령 카드를 던지면 불법 수사로 수집한 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 간첩 사건 기획과 리스트로 단박에 정국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계엄령 문건 수사에서도 드러났듯 2017년 기무사의 계획대로 계엄령이 발동됐다면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지고 본부장은 기무사령관(조현천)이 맡게 됐을 것이다. 계엄하에서 국정원, 검찰, 경찰 등 모든 수사기관은 기무사가 정점에 있는 합동수사본부 아래에 놓인다. 그리고 그때까지 불법성 시비 때문에 비밀리에 진행됐던 간첩 사건 기획은 합법이냐 불법이냐 따질 필요도 없이 합동수사본부(기무사)가 판을 주도했을 것이다.

실제 계엄하에서 군 정보기관이 만들어낸 간첩 사건 기획은 쉽게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80년 신군부 쿠데타의 수장 전두환은 보안사령관으로 계엄령을 주도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다. 군부는 5월17일 비상계엄령 발동 직후 사흘 만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발표했다. 전두환은 공안정국을 주도하며 결국 쿠데타를 완성했다.

ⓒ한겨레

지난해 7월, 기무사 개혁 거부하며 다시 등장

하지만 2017년의 기무사는 불법을 감수하며 강행한 계획을 결국 이루지 못했다. 당시 집권 세력의 예상과 달리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를 위해 검토했던 계엄령은 수포로 돌아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불법적인 간첩 사건 기획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계엄령 문건 티에프(TF) 조직이 헌재의 탄핵 결정과 함께 사실상 해산된 것과 달리 간첩 사건 기획을 위한 기무사 조직은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뒤에도 유지됐다. 이는 공안 정국으로의 국면 전환용이던 간첩 사건 기획을 이후 어떤 상황에서든 써먹을 수 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간첩’이라는 단어가 기무사에서 흘러나온 것은 지난해 7월이다. 당시 기무사 내부에서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기무사를 개혁이 아니라 아예 해체하려 했으며, 이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계엄 검토 문건 등 치명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흘린다고 반발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런 ‘반동’의 흐름 속에서 적폐 청산 공세를 막고 조직의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간첩 사건 기획을 꺼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무사 개혁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앞서 리스트에 언급됐다고 한 정치인이 기무사의 불법적인 간첩 사건 기획에 대해 들은 것도 이때다. 하지만 당시 기무사 쪽 누구도 불법적인 간첩 사건 기획을 공개하거나 언론에 구체적인 정보를 건네지 않았다. 보수 여론조차 기무사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민군 합동수사단의 칼끝이 이 사안까지 겨냥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불법이냐 기획(조작)이냐 등과 무관하게 간첩 사건 기획의 결과물에 대한 기무사 내부의 미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해를 걸러 지난 5월 조총련과 (단체의) 연계 혐의가 있다는 문건과 관련 리스트의 존재가 조금씩 기무사 바깥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요원 일부가 조직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는 모험을 결행하려는 데는 현 정부를 향한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과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의 이념 공세와 무관치 않다. 이미 기무사를 해편하고 안보지원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이 불법 기획에 관여한 핵심 인물들은 바뀌지 않고 자리를 보전한 탓도 있다.

ⓒ한겨레

기획 자료, 국정원으로 보냈을 수도

<한겨레21>은 불법적인 간첩 사건 기획과 관련해 경위 파악을 위해 안보지원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들어보려 했다. 하지만 군 정보기관으로서 답변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군 관계자는 “기무사가 해편되고 안보지원사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불법 사찰과 공작 등 불행한 역사와도 절연했다. 지금 옛 기무사의 의혹에 대해 안보지원사가 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와 별도로 <한겨레21>이 국방부 사정을 잘 아는 고위 인사를 통해 안보지원사 내부에 재차 문의한 결과, 전·현직 핵심 간부들로부터 “(간첩 사건 기획에 대해) 지금은 말할 수 없다”거나 “(간첩 사건 기획 자체는) 틀리지 않다”는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과거 공작과 관련해서는 전면 부인으로 일관하는 관행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수사 당국은 말을 아꼈다. 다만 <한겨레21>이 확인한 결과, 세월호 가족 사찰, 계엄령 검토 사건 등 기무사 수사에 참가했던 민간, 군의 수사기관을 포함해 현재 공안을 담당하는 수사기관 어디에서도 ‘간첩’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2016년부터 3년 동안의 간첩 사건 기획이 수사 단계로 진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기무사의 간첩 사건 기획이 수사가 아닌 다른 불순한 의도로 진행됐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군 수사 당국자는 “현재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등과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이고 수사도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수사 내용이나 수사 중 입수한 관련 자료에 대해 말해줄 수 없다. 다만 그런 (간첩) 사건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기무사의 사찰 행위에 대해서는 “기무사가 민간단체와 관련해 조사할 권한이 없다. 함 신부를 조사했다면 명백한 불법이다”라고만 밝혔다.

기무사는 2016년 간첩 사건 기획 관련 자료를 수사의 또 다른 주체인 국정원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한겨레21>은 여러 경로를 통해 국정원에 촛불집회와 관련해 간첩 사건 기획 관련자를 수사하고 있느냐고 물었으나,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불법적인 간첩 사건 기획과 리스트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전직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21>과 만나 “조현천 전 사령관이 재직한 시절이었다는 이유로 조 전 사령관의 행방이 드러날 때까지 계엄령 검토 사건과 함께 묻힐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정치 개입이 일상이었던 군 정보기관으로서는 보수 진영 쪽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카드일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기무사의 행위가 그 자체로 불법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그 사안 자체가 총선, 대선 등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음모 정치가 흠집낼 수 있을까”

<한겨레21>은 탄핵 정국에서 촛불집회를 이끌었던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핵심 관계자를 만났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모든 촛불집회에 관여한 이 관계자는 “촛불에 참여한 천만의 시민이나 집회를 주최한 퇴진행동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면 그때가 어떤 상황이었다는 것을 여전히 기억할 것”이라며 “한국 사회의 모든 개혁 과제가 함께 녹아들어 만들었던 촛불혁명에 퇴행적이고 불법적인 기무사의 정치 음모가 끼어들어 흠집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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