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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예산으로 자취방 물건을 살 때, 고려한 한 가지 조건은?

자잘한 물건들을 버리면서 깨달았다.

  • 슛뚜
  • 입력 2019.06.13 11:57

필요한 물품을 사려면 예산부터 생각해야 했고, 디자인도 따지고 싶었고, 실용성도 중요했다. 이사 초반에 한껏 들떠서 이것저것 재지 않고 샀던 물건은 대부분 값이 싸고, 예쁘지 않고, 실용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다음엔 비싸지 않으면서 실용성 있는 것들을 골랐다.

그런데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제각각 색과 모양이 다른 옷걸이, 짙은 회색 테이블에 올릴 때마다 이질감을 주는 쇠 수저, 알록달록한 수세미, 강렬한 주황색 플라스틱 도마 같은 것들이.

망가진 것도 아니고 버리기엔 아까워서 그냥 둘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나는 집에 있는 내내 그것들이 거슬릴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라도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답게 굴어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예쁜 물건을 골라 오래오래 쓰기로.

때마침 나는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여행하며 내가 가장 즐거웠던 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유럽의 도시를 직접 보게 된 것이다. 각 가정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앞마당을 개성 있게 꾸민 주택가, 아름다운 펜던트 조명이 잔뜩 걸려 있던 공항, 건물 외벽에 덕지덕지 커다란 네온 간판을 걸지 않고도 손님을 끌어들이는 작은 상점들.

특히 숙박 공유 사이트를 이용하며 현지인의 집을 며칠씩 빌려 생활할 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집이 집주인의 성향을 반영해 예쁘고 독창적으로 꾸며져 있는 것에 놀랐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현지에서 유명한 생활용품 가게에 들렀다. 골목에 있는 작은 편집 매장,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친 가구 매장이나 그릇 가게 등등.

캐리어는 점차 다양한 물건으로 채워졌다. 세상에, 생애 첫 유럽 여행에서 냄비와 주전자를 사게 될 줄이야. 유럽에서 한 달을 보내며 나는 새삼 의식주 중에서 주(住)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깨달았다. 일상에서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본래 성격대로라면 일주일이 넘도록 캐리어를 정리하지 않았을 나지만, 옷 사이사이에 넣어 소중하게 운반해온 기념품들을 하루빨리 눈에 잘 띄게 두고 싶어서 한국에 돌아온 다음 날 바로 짐을 정리했다. 그런데 주전자에 붙은 스티커를 제거하려고 바닥을 본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주전자는 일본 브랜드 제품이었다.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일본에서 만든 물건을, 아니 일본 제품 직구 사이트를 이용하면 집에서 편히 살 수 있는 걸 이역만리 영국의 편집 매장에서 사왔다는 게 얼마나 우습던지.

그 후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세탁소 옷걸이를 집에서 싹 치웠다. 대신 나무로 된 옷걸이 세트를 사서 행거에 나란히 걸었다. 거기엔 무슨 옷을 걸어도 예뻐 보일 것 같았다. 쇠 수저는 만약을 대비해 한 벌만 남기고 찬장 깊은 곳으로 넣었다. 빈자리는 이전 여행에서 사온 무광 블랙의 포크, 나이프, 스푼들이 채웠다. 수세미는 흰색 스펀지로 바꿨고, 나무 도마를 샀다.

누군가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이유로 멀쩡한 물건을 버린다며 혀를 찰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자취생이 지갑을 털어 하나에 만 원이 훌쩍 넘는 포크를 사는 걸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차례 자잘한 물건들을 버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예쁜 것들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지.’

이후 무언가를 살 때 고려 사항은 오로지 디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산 물건들은 절대 질리지 않았고, 쓸 때마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 에세이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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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자취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