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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들이 역대 최대 규모 집회를 연 이유

중국과 홍콩 정부는 범죄인 인도 조약을 개정하려고 준비 중이다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홍콩은 중국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하면 홍콩의 미래는 없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의 리더들을 전혀 믿지 못한다. 그들은 천안문 사건을 입에 올리지도 못한다. 그들은 베이징의 입맛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홍콩 시민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9일 열린 이번 집회의 참가자 수는 집회측 추산 103만명으로, 중국 반환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2014년 우산혁명 당시에는 약 50여만명이 모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만큼 많은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인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라고 10일 보도했다.

ⓒTyrone Siu / Reuters

SCMP는 이번 시위가 이전과 달리 개인의 참여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전에는 단체의 주도가 시민들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 이번에는 단체보다는 개인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수가 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길거리에 나온 것은 홍콩이 중국의 일부로 전락할 것이란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분석했다.

SCMP는 또 해외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홍콩 시민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홍콩 당국이 중국과 범죄인 인도 협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은 그동안 경제사범 등에 한해서만 중국에 범인을 인도했다. 이 범위를 경제사범 외로 확대하는 것이 개정 내용 골자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정치범이 범인 인도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는 홍콩의 민주주의에 결정적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보고 길거리 시위에 나선 것이다.

ⓒReuters

우산혁명과 마찬가지로 50만명 가량이 모였던 2003년 보안법 제정 반대 시위는 이번 시위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지난 2003년 홍콩 정부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입법을 추진했다. 당시 홍콩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역은 물론 외국 정치단체의 홍콩 내 정치행위 등을 모두 금지하는 내용의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것이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억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반대시위에 나섰고 홍콩 정부는 결국 법안을 철회했다.

SCMP는 이번 시위와 2003년 보안법 제정 반대 시위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그때와 같은 감성이 퍼졌고 수십만 명의 홍콩시민이 거리로 나와 다시 한 번 베이징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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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시아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