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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처벌하지만 강간범 아빠의 친권은 보호해주는 주가 있다

도망칠 수 없는 절망이다

  • 박세회
  • 입력 2019.06.10 14:31
  • 수정 2019.06.10 17:55
ⓒRyanKing999 via Getty Images

낙태를 범죄로 취급해 낙태 수술을 시행한 의료인을 처벌하기로 한 앨라배마주에서는 강간범도 부모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 앨라배마의 낙태 금지법이 강간이나 근친상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섬뜩하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9일 앨라배마의 가족복지 사무소를 찾은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여성은 15살 때 자신의 ‘의붓삼촌’(step-uncle)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 여성의 의붓삼촌은 얼마 전 마약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한 후 출소했는데, 앨라배마 주법에 따라 자신이 강간으로 낳은 아이의 친권을 주장했다고 한다. (참고로 의붓삼촌은 양부모의 형제, 친부모의 의붓형제, 사촌 형제의 양부 중 한 경우를 뜻하나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이유는? 앨라배마에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여성을 임신시킨 남성의 양육권을 말소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법의 구멍을 이용해 강간 피해자를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에 이런 법 조항이 없는 주는 앨라배마와 미네소타 둘뿐이라고 밝혔다.

앨라배마의 낙태법을 다시 생각해보자. 이번에 통과되어 곧 효력이 발휘될 앨라배마의 낙태 금지법은 강간과 근친상간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앨라배마의 여성은 강간을 당해도 아이를 낙태할 방법이 없고, 아이를 낳으면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과 아이의 공동양육자가 된다. 임신을 당했다는 이유로 평생을 강간범과 마주쳐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법안과 관련해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 있다. 미국의 진보 매체 마더존스에 따르면 앨라배마에 사는 여성 제시카 스톨링은 13살 무렵부터 같은 집에서 사는 삼촌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로 인해 3명의 아이를 낳았다.

둘은 20살 때 잠시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불과 몇 개월만에 이혼했다. 현재 스톨링은 30세지만, 아직도 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법원이 아이 아버지의 친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스톨링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미성년인 자신을 강간한 남성과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 

스톨링은 태아의 생명권을 더 중하게 보는 낙태 금지론자다. 그러나 그녀는 강간범의 친권을 말소해야한다는 데는 목소리를 높인다. 스톨링은 지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강간범과 평생을 마주쳐야 한다면 강간으로 임신당한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부추길 수가 없다”고 밝혔다.

마더존스에 따르면 지난달 앨라배마 주의회는 강간이 임신에 이른 케이스에 있어서 강간범의 친권을 말소하는 법안을 다룬 바 있다. 그러나 지난주에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은 ”자신의 자식을 강간한 부모의 친권을 박탈한다”고 수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앨라배마 주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강간범의 친권을 빼앗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이 법안이 ”친권을 빼앗기 위해 악의적으로 다른 부모 한쪽을 모함하는 케이스”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 학부모단체의 이사장 네드 홀스타인은 워싱턴포스트에 ”만약 부모 한쪽이 무고한 다른 한쪽을 모함해 친권을 빼앗는다면, 아이는 악의적인 날조를 일삼는 부모의 손에 남겨지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과 ‘남성‘을 적시하지 않아 헷갈리는 이 문장을 알기 쉽게 해석하면 ‘아이 엄마가 무고한 아빠를 강간범으로 모함해 친권을 빼앗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매해 7750명에서 1만 2500명 정도의 아이가 강간으로 인해 임신되는 것으로 본다. 마더존스는 이 수치가 낮은 이유가 ‘보고되지 않은 성범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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