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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는 왜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의 '단서'를 숨겼나

워싱턴포스트의 단독 보도다

  • 박세회
  • 입력 2019.06.07 14:36
  • 수정 2019.06.14 10:23
ⓒCallista Images via Getty Images

워싱턴포스트(이하 ‘WP’)는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 중 하나인 화이자(Pfizer)가 지난 2015년 자사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의 부작용(side effect)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단서를 발견하고도 경영적 판단에 따라 개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경영진은 이와 같은 사실을 대외에 전혀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약 개발에 회사의 사활을 거는 제약 산업의 동력과 공익이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지난 4일 WP의 보도를 보면 화이자는 지난 2015년 의약품의 의료보험 청구 기록을 살펴보던 중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엔브렐이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을 64% 감소시킨다는 상관관계를 찾아냈다. 

이는 엔브렐과 관련한 12만7000명의 의료보험 기록을 통계적으로 살핀 결과였다. 당시 통계 전문가들은 이를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환자군과 아닌 환자군으로 나누고 이중 엔브렐 처방을 받은 사람이 몇 명인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 중에는 302명이 엔브렐 치료를 받은 반면, 알츠하이머 진단군 중에는 110명이 엔브렐 처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살펴본 데이터의 크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해 다른 데이터베이스의 보험 청구 기록을 살펴봤으나 역시 비슷한 비율이 나타났다. 또한 엔브렐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애브비 사의 ‘휴미라’와 비교했을 때 역시 같은 비율이 나왔다.

WP가 입수한 당시 화이자의 파워포인트 문서에 따르면 이 상관관계의 유의미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3000~40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가설 검증 임상시험”이 필요했다. 당시 화이자가 추산한 임상시험 비용은 약 8천만 달러(943억원)다.

화이자가 이 중요한 단서를 사장시킨 건 경영적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라는 게 WP 보도의 요지다. 신약이 개발되고 이로 인해 회사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생애 주기‘를 보면 화이자의 입장에서 이 약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특허를 출원한 신약의 ‘독점 기간’은 20년으로 2015년 알츠하이머 치료에 대한 단서를 잡았을 당시에는 이미 이 약의 독점 특허 기간이 끝나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독점 특허 기간이 끝나면, 복제 의약품이 시장에 출시된다. 3년 밖에 남지 않은 독점 특허 기간 동안 약 1000억원의 돈을 들여 새로운 적응증(알츠하이머병)을 추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화이자 측은 WP에 엔브렐의 임상을 진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순전히 ”과학적인 이유에서였다”고 밝혔다. 화이자는 ”엔브렐의 분자가 너무 커서 ‘혈뇌장벽’(뇌와 척수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장벽)을 통과할 수 없어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알츠하이머 연구자들은 말초부종이 뇌 안에 있는 부종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존스 홉킨스의 한 알츠하이머 연구진은 WP에 ”말초부종이나 전신성 염증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일 수 있다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WP는 ”제약회사는 그동안 종종 부정적인 부작용에 대해 완전히 공개하지 않아 비판을 받아왔다”라며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매해 50만명의 새로운 환자를 괴롭히는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도 있는 긍적적인 부작용을 공개해야 할 의무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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