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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06일 14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06일 14시 02분 KST

헤어진 애인의 SNS를 자꾸 들어가보게 될 때 대처법

"머리로 정리했는데 마음이나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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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는 살던 지역에서 다른 도시로 와 3년째 사는 20대 후반 여자입니다. 타지지만, 오랜 시간을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오더군요. 그 사람은 이곳에 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저를 만났어요. 전 3개월 정도의 짧은 두 번의 연애 경험이 전부고, 기억이 좋지 않아요. 이곳에서 연애할 생각을 안 하게 된 이유죠. 하지만 누군가 다가오니까 상처받기 전에 끊어내야지 하면서도 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1년을 만났어요. 근데 그 사람에겐 큰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이곳으로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더라고요.

그가 자신이 한 잘못은 없는데, 친구와 사업을 하다 법정싸움을 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잘못한 게 없어 보였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 ‘힘든 일 캐묻지 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그 사람은 고향에 가 재판받고 왔어요. 그는 인간관계도 다 정리했고, 우울증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처음엔 안 그랬는데 한두 달 지나니 데이트 비용과 관련해서 눈치를 주더군요. 나중엔 너무 화가 나서 돈 관련해선 말을 안 하게 됐어요. 좀스러워 보일까 봐서요. 또 한 번은 크게 싸웠습니다. 제가 자기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거예요. 다음에 같은 행동을 하면 바로 헤어지는 거라고 말하더군요. 사랑을 지키고 싶어서 그에게 다 맞췄어요.

그가 마지막 재판을 하러 갔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그의 가족에게 연락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죠. 구치소에 있다는 겁니다. 놀라고 그가 안쓰러워 울기만 했어요. 난생처음 구치소 면회란 것을 했어요.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더군요. 제가 걱정할까 봐 말 못했다고 했어요.

그와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고민이 됐어요. 기다려줘야 하나, 나에게 사실을 숨긴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지 않을까 등을 말이죠. 그렇게 10달이 지났어요. 그는 자신을 기다려준다면 평생 보상하며 살겠다고 했어요. 그와 계속 만나면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받아줘야지’라는 생각이 컸어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연애를 하면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이죠. 사소한 돈 문제, 강압적인 말과 행동, 자신의 기준에 나를 맞추게 했던 모습들까지 다 떠올랐어요.

그가 출소한 뒤 연락을 하자 문자로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알았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답장이 왔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어요. 몇 달 뒤 그에게 문자가 왔어요. 다시 만나자는 건 아니고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어요. 보고 싶지 않다고 했죠. ‘문자로 헤어지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예민하네. 답장하지 마라’라는 답장이 왔어요. 진짜 너무 화가 났어요. 불쑥 먼저 연락해놓고 자기가 뭔데 끝까지 명령하는지! 열 받아서 바로 전화를 해 싸웠습니다. 그 후 반년 동안 연락 끊고 살았어요.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에스엔에스(SNS)로 친구신청이 온 겁니다. 어이가 없고 화가 났어요.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로 친구신청이 다 간듯했어요. 10명도 안 되는 그의 친구 목록을 구경하게 됐어요. 그 사람은 새 연애를 시작한 거 같더군요. 내가 아니면 자긴 영원히 다신 연애 안 할 거라고 했던 그 사람에게 화가 났죠. 면회까지 한 제가 한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지금도 그 사람 에스엔에스를 염탐하는 제가 너무 싫어요. 나쁜 기억만 남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화가 납니다. 나는 괴로운데 그는 행복하게 잘 사는 거 같아서요. 그러면서도 염탐을 멈출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의 행복에 화가 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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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때때로 우리가 선택하고 마음을 주는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정말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상처를 줘요. 상냥하고 다정한 얼굴로 나만을 원한다 말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달변가에 매너 좋던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자 입에 담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난봉꾼이 되는 걸 지켜보게 되는 식으로요.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 중에, 가장 위험한 선택이 바로 사람에 대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밝은 모습을 먼저 보여주지, 그 안에 감춰진 어둠은 먼저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잘한 선택이라고 믿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이 퇴색하는 경우도 많고 말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이 1년간의 연애를 둘러싼 당신의 선택들은 어땠는지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 같군요.

당신은 이 연애를 시작할 때, ‘누군가 다가오니까 상처받기 전에 끊어내야지’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했어요. 사실은 이 마음 상태부터가 문제의 발단이었을 거예요. 상처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사람은, 일단 상처 주지 않을 사람인지를 파악해 고르거든요.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사람인지 따져보기보다,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 확실한 사람을 고르게 되죠.

그 사람이 법정싸움을 거쳐 구치소까지 가게 되었을 때, 데이트 비용에 대해 눈치를 줄 때, 우울증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오히려 당신의 마음은 안도하는 쪽으로 기울었을지 모릅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하는 선택은 대부분,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되기 쉽거든요. 이 사람은 어차피 이런 단점이 있으니, 내가 이 사람 곁을 지켰을 때 적어도 배신은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 말이에요. ‘사랑은 지키고 싶어서 그에게 다 맞춰주었다’라는 당신의 말이, 이 추측을 충분히 증명해 주죠.

물론 사람은 법적 분쟁을 하다 구치소에 갈 수도 있고, 그것을 차일피일 숨기고 나중에야 ‘너를 걱정시킬까 봐 두려워서’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좋지 않은 부분들을 발견했을 때 결국 그 모든 것을 용납하고 받아주었던 건 다름 아닌 당신이죠. 만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명료한 생각을 무시하고 결국 받아주기로 선택한 것도 당신이고요.

그런 1년간의 세월을 지나, ‘내가 연애를 하면서 행복하지 않았구나’라는 자각이 든 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걸 우리는 흔히 ‘내면의 소리’라고 부르죠. 감정에 휩싸이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나도 존재하지만(보통 우리는 이것을 자신이라고 생각하죠),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관장하고 지켜보는 주시자로서의 내가 존재합니다. 다양한 심리학적 치료법 중에는 이 ‘주시자로서의 현명한 나’를 일깨우고 개발하는 치료법도 있습니다. 이제 조금 짐작이 될까요? 그 사람과 진작 헤어지지 못하고 다 받아주고, 맞춰준 것도 당신이지만, ‘이건 정말 아니야, 그만두자’라고 단호함과 현명함을 발휘하기로 한 것도 당신이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힘든 시간을 경험하게 한 것도 당신이지만, 그 사람과 헤어질 결단을 한 것도 당신이죠.

그렇게 헤어진 뒤 일어난 사건에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몇 달 만에 의미도 없는 연락을 하고, 돌연 화를 내고 명령조로 말하는 것에 당신도 짜증은 날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제대로 차단을 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그냥 짜증이 나는 해프닝일 뿐이죠.

만나는 동안 당신을 여러모로 지치게 했던 사람은, 헤어져도 당신을 지치게 할 뿐이에요. 다만 차단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 그의 친구신청에 화라는 감정이 떠오르는 것, 그 사람의 행복에 화가 나고 자꾸만 에스엔에스를 몰래 들어가 보게 되는 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은 생각해 봐야겠죠.

당신의 머리는 정리되었는데,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착각해요. 그 사람을 만나기 전부터 갖고 있던 마음의 문제들, 내면의 이슈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방황하는 내가 자꾸만 억울한 마음에 에스엔에스를 염탐하는 것이고, 현명함을 추구하는 당신의 일부가 이 부분에 대해 ‘이런 내가 너무 싫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행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건, 사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당연한 마음 아닌가요? 그 사람의 에스엔에스를 훔쳐보고 화가 나는 건, 그 사람에 대해 아직 모두 정리되지 않은 분노의 마음도 있겠지만 사실은 훨씬 행복해지지는 못한 나에 대한 분노일 수 있습니다. ‘나는 괴로운데 너는 왜 행복하지?’가 아니고요, ‘너는 행복한데 나는 왜 행복하지 않지’라는 분노인 거예요. 당신이 지금 너무 행복하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든지 신경 쓸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의 행복에 조금 더 집중해 보세요. 당신의 인생을 좀 더 좋은 것들로 채우는 실제적인 노력을 하세요. 누군가 만나 연애하는 것이 꼭 행복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계시지 않은가요?

그 사람의 에스엔에스가 보고 싶어지면, 하루 중에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에 보세요. 하루에도 여러 번 확인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기보단, 아예 시간을 정해두고 그럴 기회를 자신에게 주는 거죠. 매일 퇴근할 때마다 그의 에스엔에스를 구경하세요. 며칠쯤 하다 보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거에요. 나의 소중한 퇴근길에 시간을 내어 이걸 구경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지를 말이에요. 오늘 퇴근길부터 시작해보시죠.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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