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만점에 35점.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8년 대한민국 직장갑질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한국의 직장 갑질 수준이다. 간호사 태움, 개목걸이 갑질, 노래방 성폭력, 닭사료 갑질 등 갑질은 다양하고도 끔찍하게 행사됐다. 최근 공개된 2019년 직장갑질 사례에선 조폭을 방불케하는 폭언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공공기관의 팀장이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앞둔 직원에게 ”실수 한 번에 손가락 하나씩 자른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직장갑질은 대부분 일반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다른 직종의 갑질은 어떨까.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문화를 보도한 KBS뉴스에 따르면, 호텔 업계에서도 황당한 갑질문화가 이어져온 것으로 확인됐다.
매뉴얼에 조금 어긋나게 되면 깜지라는 걸 써요… (어떤) 선배는 팔자걸음을 걸었다고 깜지를 썼어요. 단품 요리·코스 요리 그리고 계절 요리, 이렇게 저희 매장에 메뉴판이 한 5~6개 있었는데 그걸 다 쓰게 시켜요. 그걸 10번 써와라…. - 서울 시내 한 호텔 식음료 파트에서 일하던 A 씨
‘깜지 쓰기’는 암기해야 할 사항을 종이가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빽빽하게 적어넣는 암기법이지만, 일부 학교나 군대에서는 가혹행위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A씨는 더 충격적인 갑질을 증언하기도 했다. 행주를 입에 물려 그릇을 닦았다는 것이다.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이유였다.
선배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저희도 (떠들어도) 될 줄 알고 (기)하는데. 그러면 시끄럽다고, 이제 그 기물 닦을 린넨(행주)을 가져오셔서 입에 물려서 앉혀서 닦게 시키시고 - A씨
신발끈 끝을 묶어 허벅지를 때리는 등의 장난을 빙자한 폭력행위도 확인됐다. A씨는 허벅지에 피멍이 든 동료의 사진을 공개했다. A씨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호텔 바닥이 좋아서 그런 일(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하는 일)이 있으면 다 퍼지거든요.” 그래서 갑질을 당하고도 피해자가 호텔을 관두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A씨가 제보한 호텔업계의 갑질문화가 특수한 사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2017년 직업건강가이드라인_호텔종사자′에는 호텔업의 주요한 위험요인이 ‘고객을 비롯한 동료 및 상급자로부터의 폭력이나 괴롭힘’이라고 적혀 있다. 아래와 같은 증언도 담겨 있다.
주방은 직원들간의 스트레스가 많아요. 조리직은 군대식의 문화가 있어서 음주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니 폭력도 있을 수 있고, 일도 힘들지만 버텨 낼려면 감정도 자제하야 되는거죠.
동료나 상급자의 폭력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해결방법은 무척 한가롭다.
호텔업계의 갑질에 관한 실태조사를 해놓고도 있으나마나한 해결책을 내놓은지 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누군가는 신발끈으로 허벅지를 맞아 피멍이 들었고, 누군가는 입으로 행주를 물고 그릇을 닦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