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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04일 15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04일 15시 05분 KST

15분 거리 본가를 두고 무작정 독립한 나의 속사정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

huffpost

독립은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내게 내리쳤다. 몇 년간 키우던 고양이를 한마디 말도 없이 다른 집으로 보내버린 가족들과 크게 싸웠다. 고성이 오갔고 몸싸움까지 했다. 아니 싸움이라기엔 내가 일방적으로 당했다. 급기야 경찰이 집으로 출동했다.

그날 바로 베베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오래전부터 삐걱거리던 사이가 그 일을 계기로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이다.

나는 원래 혼자 살기를 원했거나, 자취에 로망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예상보다 어린 나이에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심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장 내일이 막막했던 그때 날 도와준 건 구세주와 같은 친구였다. 2주쯤 친구 집에 머물며 내가 살 집을 알아보았다. 보증금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위해 들어두었던 적금을 깨서 해결했다.

예기치 않게 독립하기 전 나는 가족들과 함께 방 세개짜리 아파트에 살았다. 그중 내 공간은 현관 앞에 있는 가장 작은 방이었다. 붙박이장과 책상을 제외하면, 세 평짜리 방에서 나올 짐은 거의 없었다. 6만 원을 주고 용달 트럭 하나를 불러 짐을 실었다. 짐이 무척 간소해서 트럭 짐칸이 썰렁할 정도였다. 그렇게 이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이사를 마쳤다.

친구들은 기꺼이 나의 새집을 찾아 청소와 짐 정리를 도왔다. 오후가 되니 열린 현관문으로 커다란 택배 박스가 연달아 도착했다. 이삿날에 맞추어 주문한 책상과 침대 등 당장 필요한 가구들이었다. 오후가 되자 집 안은 택배 박스와 미처 풀지 못한 짐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새삼 한국의 빠른 배송 서비스에 감탄했다.

늦도록 왁자지껄 떠들며 다 같이 짜장면을 시켜 먹고서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밤. 그제야 한숨 돌리며 앞으로 내가 살게 될 집을 훑었다. 내 물건으로 가득찼지만 아직 내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 집. 현관에 서면 내부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직사각형 구조의 작은 오피스텔은 한여름이었음에도 왠지 서늘한 느낌이었다.

여기가 내가 앞으로 살 집이라니. 실감이 나질 않아 이유 모를 서러움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침대에서 베베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초여름에도 꾸역꾸역 창문을 열고 자던 나였다. 다음 날 아침 목이 칼칼하고 코가 막혀도 끝내 창을 닫지 않던 나. 밤은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폭신하고 도톰한 솜이불 아래에서 꼼지락거리는 몸과, 서늘한 밤공기가 스치는 얼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그 간극이 그냥 좋았다. 바람, 달빛, 흩날리는 커튼, 천장에 비치는 공기의 색깔. 여름밤에는 볼 것도 느낄 것도 많아서 비오는 날을 빼고는 늘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잤다.

긴 겨울 내내 여름밤의 즐거움을 그리워했다. 어느새 계절은 한여름이 되었고, 그 시기에 나는 이사를 했다. 그러나 베란다가 없는 새집에서는 창문을 열고 잘 수 없었다. 지겹게 내리는 장맛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계약 전 꼼꼼하게 따져보았다 해도 이 집에 머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이곳에서 직접 하룻밤을 보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문제였다. 길가의 소음이 꽤 고층인 내 방까지 올라온다는 것. 대로변이 아니더라도 매연이나 먼지가 내부로 많이 유입된다는 것. 얇은 유리창은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공기 모두 실내로 잘 전달한다는 것….

나는 창문을 열고 잘 수 없었다. 빠앙 하던 도로의 클랙슨 소리가 창문을 닫음과 동시에 잠잠해졌다. 이제 시원한 밤바람이 내 속눈썹 사이를 훑고 지나가던 기쁨은 누릴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슬펐다.

하지만 포기한 것만큼 얻을 것 또한 많다고 여기기로 했다. 이제 나는 아무도 나에게 무어라 할 수 없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얻었다. 덕분에 나만의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근사한가. 익숙한 걸 고집하는 내가, 일주일도 안 되어 새집에 정을 붙였다. 4층 동쪽 집이라는 애칭도 붙였다.

이사를 오던 날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너에게 이 집은 피난처구나.’

나는 피난처가 되어준 이 집에서 온전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 에세이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