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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01일 17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01일 17시 47분 KST

정치인이 한없이 약해지는 그 단어는…공천!

금태섭의 국회의원이 사는 법

huffpost

선거에 나가는 것을 업계(?) 용어로는 ‘벽보를 붙인다’라고도 한다. 많은 정치지망생이 공천(정당에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다. 10년이 넘게 정치권 주변에 있으면서 벽보 한번 못 붙여봤다는 푸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미 선거에 당선되어 의원이 된 사람들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선이 되는 일. 지금처럼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기가 되면 공천의 향방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대적인 현역 교체’ ‘물갈이’ 같은 말만 들으면 한없이 약해진다.

 

 

일단 공천을 받아서 선거에 출마하면 설사 낙선하더라도 주변으로부터 위로는 받을 수 있다. “불리한 지역이었다”거나 “선거 때의 정세가 어려웠다”는 변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본선에 진출하는 데 실패하면 그런 변명도 어렵고 변변히 위로도 받지 못한다. 가족들이나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개를 들기도 어렵다. 낙천은 일반 유권자가 아니라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당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더욱 뼈아프다. 공천에 떨어졌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막상 선거 때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자칫 불만에 가득 찬 못난 루저로 보일까봐 일부러 관심이 없는 척하게 된다. 자존심에 받는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공천을 받으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천이 이뤄지는 과정은

공천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가. 정당에 따라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대체로 세가지 정도의 요소가 작용한다. ①당 지도부의 방침(여당인 경우에는 청와대의 뜻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②지역 당원들의 의사 ③후보 개인의 능력이 그것이다.

정당의 공천에서는 당 지도부의 방침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한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처럼 일방적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당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공천 기준을 정하고 공천심사위원회의 위원을 임명함으로써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정한 수의 지역구에 대해서는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들을 배제하고 지도부에서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인사를 영입해서 공천하는 이른바 ‘전략공천’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당의 당헌당규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 비율은 20% 정도다.

현역 의원 중에 의정활동 성과가 최하위에 속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제도도 있다. 예전에는 아예 공천 경쟁에서 제외했는데 이번에는 어디에서 20%를 감점하는 것으로 조금 완화했다. 그래도 치열한 경선에서는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 특히 상대방이 정치신인이나 청년 등인 경우에는 10~25% 가산점을 받기 때문에 여기서 승부가 결정될 수도 있다.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는 당 지도부가 후보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당장 “대표부터 물러나라”는 요구가 하늘을 찌른다. 20대 총선 당시 과반을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새누리당이 과반은커녕 더불어민주당에도 뒤진 2등을 하자 선거 바로 다음날 김무성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줄사퇴를 해야 했다. 스스로의 자리를 걸고 선거를 치러야 하는 당대표에게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책임에 따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참신하고 실력 있는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키는 ‘혁신 공천’이 반드시 필요한데 지도부에게 재량이 없으면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원도 정당의 공천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자율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억울하게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주장해도 소송을 통해서 구제받기 어렵다. 선거 시기가 되면 국회의사당이나 당사에는 공천 탈락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지지자들을 이끌고 와서 실력행사를 벌이기도 하는데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공천에 관한 당 지도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자칫 의원들이 소신을 지키지 못하고 눈치를 보게 되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 당론으로 정해진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면 동료 의원들로부터 “공천 걱정이 안 되나 보네”라는 농담조의 걱정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있었던 소위 ‘공천학살’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전혀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정당의 기반 조직이 튼튼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런 위험성이 더욱 크다. 그러나 능력이나 실적이 아닌 충성심과 계파를 중시한 공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영입하지 못하고 순응형 정치인으로만 후보군을 채우게 된다. 결국 선거도 패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한가지 덧붙일 얘기는 청와대의 영향력 행사다. 과거 집권여당의 공천에는 대통령의 뜻이 크게 작용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무수석비서관 등을 동원해서 공천에 직접 관여한 것을 불법으로 선언하고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이런 관행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당원인 이상 후보자의 결정에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공천은 어디까지나 정당 내부의 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의 공천과 관련해서 지금도 언론에서 ‘청와대의 뜻’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점을 간과한 것이다.

공천에 있어서 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결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 지역구별로 치러지는 경선이다. 여기에서는 지역 당원들의 의사가 승패의 결정적 변수다. 공천을 신청하는 사람이 여럿이면 원칙적으로 경선을 치른다. 당비를 꾸준히 납부해온 권리당원(매달 1천~2천원의 당비를 6개월 이상 납부하면 권리당원이 된다)들의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서 가장 경쟁력 있고 적합한 인사를 후보로 뽑는다. 현역 의원이든 정치신인이든 당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는 시기가 경선 때다. 지지자들에게 권리당원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기존 당원들에게도 어필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경선에 불복하고 무소속 출마를 감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유권자들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경선 불복이 불가능하다. 선거법 개정으로 경선을 일단 치르고 나면 무소속 출마를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원들이 직접 후보를 뽑는 경선은 가장 바람직하고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에도 결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이 허약하고 평소에 활발한 움직임이 없는 지역위원회가 상당수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경선에서 다수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현역 의원이 차지하게 되는 지역위원장의 권한이 너무 커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신인이 공정한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것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인물에 비해 지역 연고가 강한 인사가 유리한 것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경선을 축소할 수는 없다.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시스템을 개선해서 당원과 유권자가 후보 선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

 

 

달라지는 비례대표 공천

최근 들어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비례대표의 공천이다. 버젓이 공천헌금이 오고 가던 시대에는 그야말로 당 지도부의 자의적인 결정에 따라서 명단이 정해졌다. 유권자들이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 비례대표 앞 번호를 차지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정치학자들을 비롯해서 전문가 다수가 비례대표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최근에는 비례대표 후보를 선정하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후보 선출 권한이 있는 민주당 중앙위원회는 대략 비례대표 후보 순서를 정해서 내려보낸 당 지도부의 지침을 거부하고 직접 순위를 결정하겠다고 나섰다. 비례대표 의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정견을 발표했고 즉석 투표를 통해서 순위가 결정되었다. 지금도 기억에 나는 장면은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현권 의원의 경우다. 원래 후순위로 예정되어 있던 그는 대학 졸업 뒤 농촌으로 내려가서 수십년 동안 농업과 농민운동에 힘을 쏟았던 경험을 토로하면서 “농사꾼 중에서도 국민의 대표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했다. 인상 깊은 연설을 들은 많은 수의 중앙위원들이 지지를 했고 김현권 후보는 당당히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 최근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렇듯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공천 과정이 확립되어야 한다.

공천에 목을 매야 하는 국회의원이, 자신도 후보자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지방선거 때다. 물론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권한인 것은 아니지만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지역구 의원들의 의견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존중받는다. 지방선거의 성적은 총선 결과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후보 선정 과정에 관여해보면 공천을 받기 위해서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출마희망자가 넘쳤던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우리 지역위원회가 가장 크게 고려했던 항목은 당 기여도였다. 특히 ‘탄핵 과정에서 추운 겨울날 빠지지 않고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분들을 우대하겠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노력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힘들 때 민주당을 위해서 노력했던 분들이 공천을 받았고 결국 본선거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국회의원 후보의 공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정치는 스펙이 좋고 우수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진 성실한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선거가 실시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정당의 경선은 아직도 투명하지 못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내년 총선에서는 우리 민주당이나 야당이나 가장 적합하고 훌륭한 후보들을 유권자들 앞에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 금태섭 : 국회의원(서울 강서갑).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 시절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겨레>에 연재하다가 ‘윗선’의 반대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천직으로 여겼던 검사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말은 하고 산다”가 인생의 모토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