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9년 06월 01일 13시 39분 KST

퀴어축제 20년으로 되짚어본 '사랑'의 역사

“크게 외쳐라”(2000), “한 걸음만 나와봐”(2001)

Inkyung Yoon/HuffPostKorea

성소수자인 직장인 ㄱ(26)씨는 2015년부터 서울퀴어문화축제(이하 퀴어축제)에 참가해왔다. 처음엔 퀴어퍼레이드의 행진만 했는데 2~3년 전부터는 행사의 주축이 됐다. 굿즈(기념품)를 만들어 축제에 온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지난해에는 모터바이크를 타고 행진하는 ‘레인보우 라이더스’에도 참여했다.

ㄱ씨는 “저희끼리는 퀴어축제를 ‘명절’이라 부른다. 그야말로 1년에 한번 치르는 ‘대명절’”이라며 “소수자로 살면서 1년 동안 일상에서 여러모로 버티기 힘든 순간이 많은데, ‘명절’ 때는 안전하고 다수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성소수자들은 “‘퀴어뽕’ 맞고 1년을 버틴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활동가 지인(50)씨도 2014년부터 꾸준히 퀴어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축제에 나가면서부터 성소수자인 아들(22)을 이해하게 됐다. 지인씨는 “퀴어축제에 한번 나가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 애가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미워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5년간 꾸준히 축제를 지켜본 지인씨는 “해를 거듭하며 축제에 나오는 인파가 늘어나고 분위기도 평화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며 “성소수자 당사자들만의 축제가 아니다. 시민들, 외국인 관광객, 자녀를 데려오는 부모들도 많다”고 했다.

 2015년부터 매년 초여름, 서울 중구 시청 앞 서울광장은 무지갯빛 축제의 장이 된다. 친구들과 나온 학생들, 엄마와 딸, 할머니와 손주, 외국인 관광객 부부, 일상에 지친 직장인까지 수만명 규모의 시민이 탁 트인 광장의 초록 잔디에 모여 흥겨운 음악 속에 행사를 즐긴다. 평소에 입지 못한 화려한 무지개색 의상을 입기도 하고 머리에 과감한 장식의 모자를 쓰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얼굴에 오색빛깔 물감을 바르기도 한다.

서울 관악구 신아무개(28)씨는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앨라이’(지지자)로서 광장에 나간다. 신씨는 퀴어축제에서 외치는 구호들이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랑하라, 저항하라’(2015). ‘우리 존재 파이팅’(2016), ‘지금 우리가 바꾼다’(2017), ‘평등을 향한 도전’(2019) 같은 말들이 자신에게도 확 와닿는 느낌이다. 신씨는 “해방감이 터져나오는 축제라서 그런지 나도 그 해방감을 같이 경험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을 통칭하는 표현)의 인권 향상을 목표로 2000년 시작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올해로 20회가 됐다. 지난 5월21일부터 본격 시작된 올해 축제는 세번의 연속 강연회, 광장에 분홍빛 대형 불빛을 밝히는 점등식 ‘서울핑크닷’(5월31일), 서울퀴어퍼레이드(6월1일), 영화제(6월5~9일)로 꾸려졌다.

축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퀴어퍼레이드가 열리는 1일에는 서울광장에 준비된 부스 80여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오후 4시부터 행진이 진행된다. 역대 최대 규모인 11대의 퍼레이드 차량과 함께 을지로입구역, 종각역, 광화문역을 돌아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퍼레이드 이후에도 오는 5~9일 한국퀴어영화제가 열려 74개 작품이 서울 대한극장에서 상영된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2017~2018년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 나와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사진 한겨레,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그들만의 명절’에서 ‘모두의 축제’로

퀴어축제는 19년 전인 2000년 8월26일 종로구 대학로에서 70여명이 “크게 외쳐라 ‘나는 동성애자다’”라는 슬로건에 맞춰 행진하며 처음 시작됐다. 그사이 지난해에는 6만여명이 참가하는 대형 행사가 됐다.

직장인 박아무개(38)씨는 “몇년 전 축제에서 7살짜리 자녀를 데리고 나온 엄마를 만났다. 그가 아이에게 이렇게 다양하고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는데, 많이 공감했다. 올해엔 나도 생일을 맞은 8살 딸과 함께 나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젊은층뿐 아니라 나이가 많은 이들도, 종교가 있는 이들도 축제에 함께한다. 기독교인 이아무개(61)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나이가 비슷한 50~60대 또래들과 함께 퀴어축제에 가곤 한다. 이씨는 “성소수자 차별이 없는 교회에 다닌다. 성소수자를 억압하지 말라고 응원하러 갔는데, 이젠 응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축제가 번창했다”고 웃었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사회에서 ‘없는 존재’처럼 지내는 성소수자를 불러 모으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이런 분위기는 축제 슬로건에서도 드러난다. 1회에서 4회까지는 “크게 외쳐라”(2000), “한 걸음만 나와봐”(2001), “멈추지 마, 지금부터야”(2002), “움직여!”(2003) 등 존재를 드러내자고 제안하는 문구가 중심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퀴어 절정”(2005), “위풍당당 퀴어행복”(2006), “This is Queer!”(이게 퀴어야, 2007)처럼 세상 밖으로 나온 당사자들에게 당당하게 축제를 만끽하자는 내용들로 나아갔다.

20년간 퀴어축제의 흐름을 보면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가 보인다. 법무부가 성소수자를 법 적용 대상에서 빼버린 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한 2007년과 이듬해엔 ‘작렬! 퀴어 스캔들’이란 구호를 내세웠다. ‘문제적 사건’을 뜻하는 영단어 스캔들을 넣어 “퀴어가 정말 문제인지 되물어보자”는 화두를 역으로 던진 것이다.

2010년부터는 더이상 ‘아우팅’(본인 의지가 아닌 타자에 의해 성소수자임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행진을 할 때 참가자들이 촬영을 거부하며 머리에 두르던 ‘빨간 띠’ 제도를 없앴다. 그동안 ‘아우팅’은 성소수자들에게 공포의 단어였기에 상당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2012년엔 ‘퀴어연가〔가족:연을 맺다’라고 슬로건을 짓고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했다. 올해 20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이다. 해마다 어려운 여건에서 도전하며 개최해온 축제가 지금의 성과를 뛰어넘어 더 도약해야 한다는 의미다.

퀴어퍼레이드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진 대학로, 홍대 앞, 신촌, 이태원, 종로, 청계천 등지에서 열리다 2015년부터 서울광장으로 장소를 옮겼다. 2015년 홍대 앞, 신촌 등 그동안 개최해온 장소에서 마포구청, 서대문구청 등이 더이상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대학로엔 동성애 반대단체들이 축제가 열리지 못하도록 미리 집회신고를 해놓았다. 마땅한 축제 장소를 찾지 못해 발을 구르던 조직위원회는 별 기대 없이 서울광장이 빈 날짜에 사용 신청서를 냈다. 조례상 불수리 사유가 없자 어렵지 않게 승인이 났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한채윤 서울퀴어문화축제 기획단장은 “시청 앞에서 성소수자가 다 함께 모인다는 것은 시민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국에서 받아들여졌다는 뜻이었다. 축제가 상징성이 있는 서울의 가장 중심부 공간으로 나오면서 참가자들 스스로도 더 당당해졌다”고 말했다.

천의영 경기대 교수(건축학)도 “도시의 열린 광장은 다양한 생각과 이질적 문화를 수용하게 하는 공간적 장치 ‘샐러드 볼’(다양한 집단이 섞이는 공간)이 된다. 서울광장에 나와 축제를 즐기면 성소수자가 ‘완전한 타자’에서 ‘인지 가능한 타자’가 되면서 시민들이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감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2000년 10명 규모였던 퀴어축제 조직위원회도 2015년 40여명을 넘어서 올해는 48명이 축제를 꾸리고 있다. 퀴어축제는 지역적으로도 서울을 넘어 2009년 대구, 2017년 부산과 제주, 2018년 광주·인천·전주, 올해 경남 등 전국 8개 도시로 퍼져 나갔다.

행사 규모가 커지면서 퀴어축제의 참가 부스 선정도 경쟁이 치열해졌다. 올해 140개 단체가 퀴어축제에 부스를 마련하고 싶다고 신청을 해왔지만 공간이 한정돼 74곳만 허용됐다. 선정되지 못한 단체 중 민주노총이 포함된 것을 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성소수자와 노동자가 왜 연대하지 않느냐”는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축제 주최 쪽은 “해당 단체가 신청서를 허술하게 쓴 탓”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올해 대리모 사업을 하는 한 기업의 후원을 받다가 중단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기업 후원을 받고 있다”며 일부 시민들로부터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겨레
*퀴어(queer)란? 성소수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성소수자에는 동성애자(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간성) 등이 포함된다.

신세대 성소수자가 사는 법

성소수자가 시민들 앞에 당당히 행진하기 시작한 지 20년이 지나며 이 시대를 사는 성소수자의 모습도 상당히 달라졌다.

‘게이커플 순탄하지 않았던 연애 스토리’, ‘게이커플 애인이랑 벚꽃 축제 갔다가 왔습니다’, ‘게이커플의 첫 제사’…. 유튜버 김한얼(28)씨는 ‘어링’(Eoling)이란 닉네임으로 2017년부터 유튜브에 동성커플의 일상을 주제로 방송을 하고 있다. 자칭 ‘성소수자 힐링 방송’이라 말하는 김씨는 파트너와 함께 출연해 얼굴을 공개하고 커플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모님께 처음 말하고 눈물 흘린 날의 풍경을 덤덤히 이야기하기도 하고, 최근 할아버지 제사에서 친척들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소개한 이야기도 유쾌하게 풀어낸다. 벚꽃 축제 데이트 모습이나, 집에서 둘이 집안일을 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 보여준다.

김씨는 “처음엔 성소수자들끼리 소통한다는 생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일반 사람들도 영상을 많이 시청해 구독자 수가 4만명이 넘었다”며 “이성애자 부부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걸 화면에 담고 싶어 주제를 최대한 일상 소재로 잡는다”고 말했다. 방송이 알려지면서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많아졌다. 김씨는 “어떤 분이 제 방송을 보고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응원해줬다”며 “한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윤리 선생님이 성소수자를 이해하자는 차원에서 수업시간에 제 영상을 틀었다고 전해줬다”고 말했다.

유튜브에는 김씨처럼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영상을 올리는 이들이 꽤 많다. 게이커플의 브이로그, 레즈커플의 데이트 등 연애 이야기뿐만 아니라 ‘게이가 군대에서 커밍아웃하면 생기는 일’, ‘동성커플이 커밍아웃했을 때 주변 반응’,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커밍아웃’ 등 성소수자의 다양한 이야기가 영상 콘텐츠로 나오고 있다.

강태경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 이사는 “10~2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소수자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엔 성소수자의 삶을 없는 셈 치거나 조롱거리로 치부하는 사회적 무시와 억압이 있었지만, 지금은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온 것”이라며 “유희적 내용이든 계몽적 내용이든 이런 콘텐츠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도구일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갈 수 없는 정치 의제로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주요 의제로 떠오른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5월17일 ‘세종 맘과의 간담회’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퀴어축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도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황 대표는 “퀴어축제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랐다. 현장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결과를 사진으로 보며 느낀 게…. (중략) 정말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런 축제들이 벌써 십수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지자를 결집하려는 의도로 동성애 이슈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권단체들은 “성소수자는 존재 그 자체이며 제3자가 찬성 또는 반대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황 대표를 비판했다.

지난 16일 민주당 일부 당원들은 ‘민주당 퀴어퍼레이드(퀴퍼) 참여단’이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계정을 열고 참여할 당원을 모집했다. 참여단의 김민석 민주당 서울대지부장은 “당내 중도 보수부터 진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보니 이 활동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20대 청년 당원들 중엔 활동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며 “당 안에 성소수자도 있고 ‘앨라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이번 활동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30여명의 민주당 당원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한국당은 “차라리 ‘퀴어당’으로 커밍아웃하라”고 공격했지만 참여단은 즉각 성명을 내 “한국당은 ‘반민주혐오선동당’으로 당명을 바꿔라.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반박했다.

그간 성소수자 또는 동성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금기시돼왔다. 정당 중에서는 정의당, 녹색당 등만 소수자위원회를 갖추고 퀴어축제에 공식 참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았지만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퀴어축제에 참가했다가 동성애 반대세력으로부터 막말과 욕설을 들었다는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주당은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고 소수자 보호를 중시하는 정당이다. 우리 당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이나 정당에 성소수자, 퀴어축제 등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는 앞으로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애를 지지한다’고 입장을 밝힌 뒤 정치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말하고 지지 여부를 판단받는 분위기”라며 “앞으로는 한국 사회에서도 정치인들이 모호한 입장을 취했을 때 입는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겨레

시민권 인정 아직 먼 길

성소수자도 보편적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세계적인 흐름인데도 아직 한국의 법과 제도는 성소수자 시민권 인정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발간된 ‘한국 성소수자 인권 현황’(SOGI법정책연구회)을 보면,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관련 제도의 유무를 지표로 나타낸 한국의 ‘무지개지수’가 11.7%로 나타났다.

‘완전한 평등’ 100%와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 0% 사이에서 심각한 인권침해와 차별 쪽에 훨씬 기운 수치다. 영국, 프랑스, 핀란드 등이 70%대인 것에 견줘보면 갈 길이 멀다. 특히 이 지표는 2014년 이후 개별 항목에서 어떠한 개선도 이뤄지지 않아 한국의 성소수자 관련 제도 개선이 5년째 제자리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군대 내에서 동성 간 성관계는 합의된 상태라도 군형법 제92조의 6에 따라 범죄가 된다. 20대 국회에서 이 조항의 폐지 법안을 발의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동성 간 성행위가 이성 간 성행위와 달리 형벌로서 처벌해야 할 정도로 군 기강 및 군 전투력 보존에 위해가 있다는 것은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이 조항은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수자가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적 장치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동성 부부의 경우 혼인하고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길도 막혀 있다.

2013년 공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 김승환씨 부부는 같은 해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를 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불복해 김씨 부부가 이듬해 서울서부지법에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혼인에 대한 개념은 기본적으로 남녀의 결합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혼인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대만에서는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지난 24일 법률이 시행된 뒤 하루 만에 526쌍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시민사회는 성별과 무관하게 두명의 성인이 가족을 이뤘다고 관할 기관에 신고하면 서로 배우자에 준하는 법적 지위가 생기는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자고 제안한다. 이를테면, 성소수자 커플 중 한쪽이 큰 수술을 앞두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할 때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동반자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이 보호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계약(PACS)을 도입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동성커플을 보호하고 있고, 독일은 2001년부터 생활동반자법으로 동성의 동거인을 인정한다.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시민이라면 혼인에 있어서 누구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인 ‘혼인 평등’이란 단어가 최근 국제사회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혼인과 가족 구성에 있어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만든 ‘한눈에 보는 사회 2019’를 보면,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간성) 등 성소수자 인구는 세계 성인 인구의 2.7%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