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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31일 15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31일 16시 22분 KST

'기생충'의 이상한 장면, 그 수석은 왜 그 자리에 있었나(스포일러 주의)

이건 '기생충' 해석이 아니다.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아직 영화를 감상하지 않은 분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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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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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예고편은 많은 비밀을 감춘 듯했지만, 사실 많은 걸 보여주었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알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예고편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은 폭우가 내리는 거리를 달리는 3명의 사람들이었다. 예고편은 짧았지만, 이 장면들의 비중은 꽤 컸다. 그럼에도 예고편을 볼 때는 폭우의 역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비는 그냥 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생충’에서 이 폭우는 영화 전체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장면을 만들었다.

*이제부터 진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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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장(이선균)의 저택에서 한 바탕 소동을 겪은 그들은 집에 가서 씻고 잘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에 그들의 반지하 보금자리는 물에 잠기고 만다. 카메라를 물에 반쯤 담가놓고 찍은 듯한 이 장면은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앵글이다. (바다나 강이 아니라, 반지하 집이라니.) 그 와중에도 아버지 기택(송강호)과 아들 기우(최우식)는 물건을 챙기려고 하고, 기정(박소담)은 화장실 천장에 숨겨놓은 비상금과 담배를 찾아낸다. 변기는 시꺼멓고 끈적일 거 같은 액체를 내뿜는다. 기정은 그 위에 앉아 담배 타임을갖는다. 망연자실한 흡연이다. 그때 기우는 물속에서 뭔가가 떠오르는 걸 본다. 친구 민혁이 가져다준 수석이다. 민혁의 할아버지는 그 수석이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 줄 거라고 했다. 기우는 가족과 함께 대피소에 몸을 뉘일 때도 그 수석을 품에 안고 있다. 기택이 기우에게 수석을 왜 들고 나왔냐고 묻자, 기우는 수석이 나에게 붙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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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의 친구 민혁이 갖다준 문제의 수석

무거운 돌은 어떻게 물 위로 떠올랐을까?

물에 잠긴 반지하의 시퀀스가 감정적으로 울림을 준다면, 수석이 기우에게 붙는 장면은 이상하다. 일단, 수석은 돌인데 작은 돌도 아니고, 그 정도 크기의 돌이 어떻게 물에 뜬단 말인가.(이 수석이 가짜는 아니다. 이후의 사건들을 보면 그렇다.) 그때 수석을 품에 안은 기우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이어지는 기우의 행동을 봐도 이상하다. 가족의 기묘한 사기극을 설계했던 전략가 기우는 갑자기 핀트가 나가버린다. 폭우 다음 날 박사장의 집으로 간 기우는 수석을 들고 지하벙커로 향한다. 벙커에는 전날 밤에 가둬둔 문광(이정은)과 그녀의 남편 근세(박명훈)가 있다. 아마도 기우는 수석을 이용해 그들을 죽이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기우의 행동은 벙커 속의 근세가 벙커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지난 몇 년 동안 벙커 속에 갇혀 살았던 그는 정말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한 날의 아름다운 저택에서는 비극이 발생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날의 비극은 기우가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수석이 초래한 비극이다. 수석이 물에서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래서 기우가 계속 냉정을 유지했다면, 벙커의 문을 열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날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석이 기우에게 붙는 이 장면을 이상하지 않게 볼 수도 있다. ”집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아름답고 평온한 순간을 만끽했던 기우는 물에 잠긴 집을 보고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물에서 떠오른(것처럼 보인) 수석 때문에 기우는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붙는 가난의 현실을 마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기생충‘에서 수석이 물에 떠오르는 장면은 이상하다. ‘대만 카스테라‘를 언급할 정도로 현실적인 디테일로 가득한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판타지 같은 연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수석이 영화적인 상징을 위해 떠올랐다기보다는 봉준호 감독이 가진 설계자로서의 의지에 의해 떠올랐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이 상상할 때 수석이 떠올라 기우에게 붙어서 기우가 그 수석을 들고 벙커의 문을 열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장면이 다소 무리수처럼 보여도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 대부분이 모두 ‘문’을 여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닫힌 문이 열리면서 시작되는 봉준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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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의 한 장면,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전작들을 고루 떠올리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직접적인 영화는 봉준호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다.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간은 보일러가 설치된 지하실이다. 이곳은 경비원 변씨(변희봉)가 운동을 하고, 보신탕도 끓여먹는 곳이다. 주인공 윤주(이성재)가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개를 가둬놓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보일러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전설의 보일러 수리공 ‘보일러 김씨‘의 괴담이 서린 곳이다. 무엇보다 한 노숙자 최모씨(김뢰하)가 몰래 숨어 살고 있는 곳이다. 이 노숙자는 변씨의 음식을 훔쳐먹으며 살다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옥상에서 개를 구워먹으려고 하고, 그러다가 그동안 동네 개를 모조리 잡아먹었다는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힌다. 노숙자 최모씨의 일상과 ‘기생충‘의 저택에 기생하는 문광의 남편 ‘근세‘의 삶은 거의 다르지 않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근세는 결국 JTBC 기자들에 의해 ‘노숙자’로 설명되어 버린다. 이들은 모두 지하에 기생하며 살다가 문을 열고 나와 비극을 맞이하는 인물들이다.

″그 검은 상자를 저와 함께 열어보시겠어요? 어머니?” ‘기생충‘에서 기정이 연교에게 하는 이 대사는 봉준호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말과 같다. 이건 은유가 아니다. 봉준호의 데뷔작과 최신작을 양쪽에 놓고 선을 잇다보면 그동안 봉준호가 연출해 온 영화들의 대부분이 ‘상자의 문‘을 여는 영화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닫힌 문 안에는 방치(혹은 격리, 혹은 망각)되어 온 것들이 있다. 봉준호가 영화에서 보여준 문제의식들에 따르면, 그들이 방치되었던 이유는 모두 사회의 무관심이거나 배제다. ‘살인의 추억‘은 압제의 시대에 문을 열고 나온 연쇄살인범과 피해자들의 시체에 관한 이야기다. ‘괴물‘의 괴물은 미군이 하수구를 통해 지하에 방류한 포름알데히드를 먹고 괴물이 됐다. 그렇게 물속과 자신만의 지하 아지트에서 살아오던 괴물이 어느 날 물 밖으로 나온다. 스스로 문을 연 것이다. ‘설국열차‘에서는 가장 맨 뒤에 방치되어 있던 자들이 맨 앞을 향해 계속 문을 연다. ‘기생충‘의 근세는 사업실패로 생겨난 빚 때문에 벙커 갇힌 인물이다. 기택의 가족은 말할 것도 없다. 역시 수차례의 사업실패를 겪은 그들은 반지하 집으로 들어간다. ‘기생충’은 그처럼 검은 상자에 갇혀있다가 문을 열고 나온 가족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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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문이 연쇄적으로 열리며 초래된 비극

문이 열리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이 점에서 ‘기생충‘이 강하게 떠올리는 봉준호의 전작은 ‘마더‘(2009)다. ‘기생충‘에서 지하벙커와 이어진 벽과 벽 사이의 계단실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이 장면을 보여주는 앵글과 흡사한 장면이 ‘마더’에도 있다. 영화에서 도준(원빈)은 앞에 걷던 여학생을 희롱한다. 희롱을 견디던 소녀는 벽과 벽 사이의 어두운 골목으로 숨어버린다. 소녀는 도준을 향해 돌을 던진다. 그렇게 첫 번째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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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검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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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더‘는 방치되어 왔고, 감춰왔고, 망각해왔던 것들이 연이어 문을 열고 쏟아져 나오면서 벌어지는 비극의 이야기다.  소녀는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동네의 많은 남성이 소녀의 몸을 쌀과 맞바꾸었고, 그래서 그녀는 쌀떡 소녀라 불렸다. 소녀는 자신을 향한 모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어둠의 문을 열고 돌을 던졌다. 거기서만 끝났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녀는 도준을 ‘바보같은 새끼’라 부르며 한번 더 문을 열어버린다. 그때 열린 문을 통해 또 다른 돌이 소녀에게 날아온다. 이 사건은 다시 도준이 기억의 지하에 방치해놓은 문을 열어버린다. 나에게 약을 먹여 죽이려고 했던 엄마에 대한 기억. 도준의 말은 다시 엄마가 방치해놓았던 것을 열어버린다. 그래서 엄마는 더 미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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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적으로 열리는 문이 비극을 초래하는 건,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기택의 가족은 박사장네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 벙커의 문이 열린 것만 본 게 아니다. 그들은 박사장네 가족이 닫고 있던 문이 열리는 것도 목격한다. 박사장과 연교의 은밀한 시간에서 드러나는 건, 이들이 실제 기택에게 갖고 있던 ‘냄새‘에 관한 생각들이다. 냄새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기택이 닫고 있던 문을 열어버린다. (이때 기택은 ‘마더’의 소녀와 같은 입장일 것이다.) 그날 이후 자신에게서 풍겨 나는 냄새에 민감해진 기택은 비극의 그날 또 다른 비극의 장본인이 된다.

열린 문은 어떻게든 다시 닫힌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지금까지 그려왔던 도식을 영화 속 공간을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낸 영화다. 반지하와 대저택, 대저택 속의 지하벙커 등을 설정한 후 연필을 꾹꾹 눌러 그렸다. 열린 문이 다시 닫히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봉준호의 영화에서 열린 문은 또 다른 방치와 격리에 의해 닫힌다. ‘마더‘에서 도준은 자기보다 더 방치되어 살아온 ‘엄마 없는 종팔이‘가 누명을 쓰면서 교도소를 나온다. 종팔이의 모습을 본 엄마는 미친 듯이 춤을 추며 기억의 문을 봉인하려 한다. ‘플란다스의 개‘의 노숙자 역시 ‘연쇄살견‘의 장본인으로 오인받고, ‘살인의 추억‘에서 사건의 진실은 어두컴컴한 터널에 갇혀버린다. ‘괴물’에서 괴물은 죽었지만, 강두는 총을 가까이 두고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을 두려워한다. 괴물만 죽었을 뿐, 어떤 것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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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서 ‘수석‘와 ‘기우‘가 열어버린 문도 또 다른 방치와 격리에 의해 닫힌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기택은 근세가 열고 나온 문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닫아버린다. 아버지를 문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기우는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그 집을 사겠다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반지하를 나와 다시 지하로 들어간 기택의 모습은 그래서 더 슬프다. 그는 언제까지 그곳에 있을까? 그는 안전하게 벙커를 나와 가족과 재회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장면은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이 닫아온 다른 문들보다 더 불안해 보인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모두 다시 닫힌 문의 밖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언제 열릴지 모르는 문을 근심하며 끝났다. 하지만 ‘기생충‘은 다시 닫힌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기택은 벙커의 문을 혼자 열고 닫을 수 있다. 먼 훗날 언젠가 미세먼지 하나 없는 화창한 날에 벙커의 문이 다시 열리면 또 다른 비극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돌도 물 위로 떠오르는 이 영화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기생충’의 문은 닫혀도 닫히지 않았다. 기우에게 달라붙은 수석처럼 이들에게는 비극이 더 집요하게 달라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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