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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과 여성성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쪽을 택했다.

ⓒhuffpost

최근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종영했다. 이 드라마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갈등은 스타크 가문과 대너리스 여왕 사이의 내부적 갈등이다. 스타크 가문이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을 압제에서 구하려는 소위 ‘선량’한 귀족 계층이라면, 대너리스는 기존 지배계급과는 다른 유형의 강력한 지도자로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행동하는 일종의 진보적 보나파르트주의자다. 스타크 가문이 압제에 대한 저항을 그저 상대적으로 자비로운 지배질서로 회귀하는 선에서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대너리스는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찾는 방향으로까지 저항을 밀고 나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왕좌의 게임>은 결국 급진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쪽을 택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여성주의적 모티프를 동원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서 백작 부인 오르트루트는 정치의 보편적 차원을 이해하고 권력에 대한 야심을 품는 남성들과 달리 자신의 가족을 둘러싼 협소한 이해관계 때문에 권력을 쥐고자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모티프에 따르면 여성성은 가족의 좁은 영역 안에 머물 때만 그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힘이 될 수 있으며 공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순간 외설적인 광기로 전락한다. <왕좌의 게임>의 한 장면에서 대너리스는 존에게 자신을 여왕으로서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존이 답하지 않자, 그 순간 대너리스는 세상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기로 결심하는 듯 보인다. 성적으로 불만족스러워하는 여성이 광기에 사로잡힌다는 모욕적이고 천박한 모티프가 아닐 수 없다.

대너리스가 미친 여왕이 된다는 설정은 남성중심적인 판타지다. 대너리스가 갑작스럽게 광기에 빠지는 과정에는 어떤 개연성과 설득력도 없다. 분노에 찬 대너리스가 불을 뿜는 용을 타고 도시 전체를 태우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정치적 힘을 지닌 여성에게 느끼는 공포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모두 이 같은 좌표에 따라 운명을 맞이한다. 강력한 힘을 지닌 세르세이 여왕은 선한 인물로 그려지는 대너리스에게 패배한다. 하지만 그 대너리스도 힘을 얻는 순간 악한 존재로 타락한다. 아리아는 혼자 힘으로 밤의 왕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결국 서쪽으로 떠나며 무대에서 사라진다.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갖추었고 새로운 권력 관계에도 잘 맞는 산사만이 마지막까지 남는 유일한 여성이다.

드라마는 이처럼 여성을 주변화하는 방식으로 ‘혁명은 성공할 수 없으며, 또 다른 독재를 가져올 뿐’이라는 보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여왕님께서 자신들을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왕님께서 용으로 성과 도시를 불태우신다면 여왕님도 다른 폭군들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대너리스에게 이렇게 경고하던 존은 결국 남성이 저주받은 여성을 구원해야 한다는 남성 우월주의적인 공식에 따라 대너리스를 살해한다. 정의롭지 않은 세계를 끝장내고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해 노력했던 유일한 사회적 행위자 대너리스는 그렇게 죽음을 맞는다.

<왕좌의 게임>의 논리를 따른다면 대너리스가 죽은 세상은 이제 정의가 이루어진 세상이다. 하지만 이 정의는 대체 어떤 정의란 말인가.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브랜이 새로운 왕으로 선출된다. 그는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 지도자가 가장 좋은 지도자라는 세간에 떠도는 말에 딱 들어맞는 왕이다. 왕을 뽑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좀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왕을 뽑자고 제안하자 모두 이를 비웃는데 이 장면은 이 선출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대너리스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치는 이들은 대개 유색인종인 반면, 새로운 지도자들은 모두 백인이다. 모든 이들이 계급과 인종에 관계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싸웠던 급진적인 여왕 대너리스는 제거되었다. 모든 것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번역 김박수연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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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좌의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