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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26일 13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26일 13시 45분 KST

'경찰젠더연구회' 주명희 경정이 '여경 무용론'에 대해 전한 말(인터뷰)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 영상이 퍼진 뒤 '여경 무용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한겨레

남녀 경찰관이 술 취한 남성을 체포하는 과정을 담은 ‘대림동 경찰관 폭행’ 영상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뒤 “여경의 대응이 문제가 없었다”는 경찰 쪽 해명에도 ‘여경 무용론’이 빠르게 확산했다. 지난 21일 경찰 내 여성경찰 모임인 ‘경찰젠더연구회’(이하 연구회)는 “대한민국에 만연한 공권력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려야 할 사건이 여성경찰에 대한 혐오 확산으로 오용돼선 안 된다”며 ‘여경 혐오를 멈춰달라’는 성명을 냈다. 2018년 경찰젠더연구회가 만들어진 뒤 공식 성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성명은 연구회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여경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여성혐오가 잘못된 것이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남성 중심의 문화가 강한 경찰 조직 내에서 여성 경찰들의 현실과 고민을 들어보기 위해 <한겨레>가 연구회 회원인 주명희 경정(41)을 인터뷰했다.

1993년 10월, 대한민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여성 형사반장이 탄생했다. 그해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 소속 김숙진(당시 24살) 경위였다. 그는 경찰대 첫 여성 졸업생(9기) 3명 가운데 하나였다. 앞서 같은 해 4월에는 최은정(당시 22살) 경위가 국내 최초 여성 파출소장으로 서울 반포본동 파출소에 부임해 화제가 됐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주명희(41) 경정은 대한민국 최초 여성 형사반장과 파출소장이 나왔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흥분했다. 추리소설 읽기를 좋아했던 1977년생 주명희는 ‘멋진 여경이 되고 싶다’는 꿈을 좇아 3년 뒤 신입생 120명 중 5명만 여성으로 선발하는 경찰대에 합격했다.

여성이 ‘극소수’인 경찰대 생활은 쉽지 않았다. 주 경정은 졸업 그 순간까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맞서 싸워야 했다. “뭘 해도 주목받는 거예요. 공부 안 하면 ‘여학생이 공부 안 했다’고 혼나고, 성적 잘 받으면 ‘쟤 여자라서 잘 받았어’라고 하고. 무도(합기도) 시간엔 ‘여자들은 저 정도만 해도 돼’라고 말하더니, 축제 때 시범공연을 하면 여성이 1명밖에 없으니 무조건 해야 하는 거예요. 4년 내내 계속 끊임없이 그런 걸 요구받았어요. 졸업 즈음에 전교생 480명 가운데 여성이 48명까지 늘었는데, 비로소 달라지더라고요.” 변화를 목격한 주 경정은 이 때문에 ‘여경의 숫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 경정이 임관할 당시인 2000년 여경의 비율은 1% 남짓이었다. 여경의 비율이 10%로 늘어난 건 불과 5년 전인 2014년이다.

‘여경 무용론’으로 표출된 여성경찰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생긴 데에는 경찰 조직 내의 문제도 있다고 주 경정은 지적한다. “2년 전에 후배가 형사계를 지원했는데 그때 형사계에서 ‘여자를 뽑아도 될까’ 엄청 고민을 했다는 거예요. 지금은 112지령실에 여경이 많은데, 초창기엔 ‘여성은 감성적이고 당황을 잘 하기 때문에 위급한 신고를 받기 어렵다’라고 배치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어요. 근데 막상 업무를 맡기니까 너무 잘했던 거죠.” 경찰 조직 내에서 여성은 근거 없는 편견에 맞서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고, 검증이 완료돼야 또 다른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주장하면서, 때로는 차이점을 내세운다’는 비판에 대해 주 경정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 경정은 “경찰 조직에서 여경은 남경과 동일한 역할을 요구받을 때도 있지만 여경이기 때문에 남경과 다른 역할을 부여받기도 한다”며 “차이를 강조하는 만큼 남경과의 평등이 약화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차이를 아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를 늘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우려와 달리 ‘여성혐오를 멈춰달라’는 연구회의 성명이 나온 뒤, 주 경정은 성별을 불문하고 조직 내부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았다. 주 경정은 “현장 상황을 다들 잘 알기 때문에 이번 사건엔 ‘여경이 대처를 잘했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성명에 대해서도 응원을 더 많이 받았다”며 “50대 남성 팀장님은 ‘조직 내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주명희 파이팅!’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줬다.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주 경정과의 일문일답이다.

-‘경찰젠더연구회’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인가.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 인권보호분과에서 ‘여성경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간담회를 열었다. 미투 운동 전이었는데, 당시 경찰 내부에서 여경에 대한 성희롱 문제가 이슈가 됐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모여 현재 15명이 활동한다. 30, 40대 여경이 주축이다.”

-여성경찰들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낸 건 이례적이다. 왜 이번 성명을 냈나.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 당시 출동했던 여경을 지지하고 싶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주취자의 공권력 침해인데, 논란은 여경 비하로 번졌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경 혐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기 존재를 부정당한 여경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여성혐오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성명 발표 뒤 악성 댓글에 많이 시달렸을 것 같다.

“악성 댓글은 안 보면 그만이다. 다만, ‘경찰젠더연구회’ 이름으로 입장을 냈을 때 가장 겁이 났던 건 여경 선후배들로부터 ‘당신들이 여경의 입장을 대변할 자격이 있느냐’라는 비판이 나오는 거였다. 우리가 전체 여경을 대표하는 모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경 개인마다 각자 생각과 입장이 다르다. 분명한 건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직 내 ‘유리천장’이나 여경 혐오가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번 논란에 대한 남성 경찰들의 반응은?

“사실 여경 비하 정서는 조직 내부에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여경이 대처를 잘했다’는 반응이 더 많아 나도 놀랐다. 현장 상황을 아는 경찰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경찰젠더연구회’ 성명에 대해서도 응원을 많이 받았다. 기사를 보고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50대 남성 팀장님이 ‘조직 내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주명희 파이팅!’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줘 되게 고마웠다. (웃음)”

-경찰 채용 시 남녀 체력검정 기준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2021년부터 경찰대와 간부후보생을 통합선발 하기 위해서는 남녀 체력기준을 동일하게 맞춰야 한다는 게 연구회의 잠정적 결론이다. 원칙은 경찰 직무 수행에 적합한 체력을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는 거다. 미국이나 영국도 남녀 경찰을 똑같은 체력기준으로 뽑지만 여경 비율은 24~25%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여경 혐오 정서가 심각해진 이유가 있을까.

“백래시 시기의 반발? 여경이 정말 소수일 때는 여성들이 자기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그냥 존재를 인정해주고, 상도 더 많이 주고 그랬던 거다. 여자라서 승진에서 아예 배제되는 일도 있었지만, 반대로 너무 소수라서 승진에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여경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거다. 그럴 때 백래시가 들어온다고 하지 않나. 지금이 그 상황인 것 같다.”

-그 반격은 경찰 외부에서 오는 건가, 내부에서 오는 건가.

“조직 외부와 내부 둘 다 아닐까.”

한겨레

-젠더 이슈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경찰을 꿈꿨지만, 경찰대의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힘들었다. 그땐 ‘여성주의 언어’를 알지 못해 뭐가 힘든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학년 아래 후배들부터 여성을 12명씩 뽑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3층짜리 강의동 건물에 달랑 한 개 있던 여자화장실이 층마다 생겼고, 총학생회에 ‘깍두기’로 들어갔던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4년간의 변화를 보면서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여경들이 남경들과 똑같은 대우를 주장하면서도, 때론 여성이라는 차이점을 내세운다는 이른바 ‘내로남불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실제 경찰 조직에서 여경들은 남경과 동일한 역할을 요구받을 때도 있지만, 여경이기 때문에 남경과 다른 역할을 부여받기도 한다. 이게 여성경찰들이 항상 고민하고 갈등하는 지점이다. 난동을 부리는 피의자를 제압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경은 남경과 똑같이 완력 사용을 요구받는다. 이건 남녀의 ‘평등’에 방점을 찍은 거다. 반면, 최근 성범죄 피해자 조사 등을 위해 여경을 여성청소년과 업무에 배치하는 건 남성과의 ‘차이’를 강조한 업무 배분이다. 이런 점에서 여경들은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과 관련해 여성성을 내세워야 할지, 남경과의 동등함을 주장할 것인지 딜레마적인 상황을 계속 맞닥뜨리게 된다.”

-어느 한쪽 입장을 정할 수는 없는 건가.

“그건 하나로 정해질 수가 없는 거다. 여경의 비율이나 역할은 분명 남경과의 ‘차이’를 근거로 확대돼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성성, 다시 말해 남경과의 차이점을 근거로 여경 비율과 역할을 늘리자는 논리가 위험한 부분도 있다. 차이를 강조하는 만큼 남경과의 평등이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차이점을 아예 부인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면에서 항상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를 고민하게 된다.”

한겨레

-경찰 내 ‘유리천장’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여경이 형사를 지원하면 여전히 ‘어, 쟤가 잘할 수 있을까?’라고 의구심을 갖는 분위기가 있다. 청문감사 분야도 여경이 30%가량을 차지해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인데 대부분 핵심적인 감찰 업무가 아닌 민원실에서 근무한다. 통계 수치로는 여경이 여러 분야에 고르게 분포한 것 같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소위 잘 나간다는 보직에는 여경이 드물다.”

-성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경찰은 무엇을 해야 하나.

“외연상 승진이나 성차별 신고 같은 제도는 많이 갖춰진 것 같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가 더 성평등하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전체가 성평등을 지향할 때, 여성경찰들도 조금씩 조직 내에서 평등해질 수 있는 거 아닐까.”

-‘경찰젠더연구회’가 앞으로 할 일은.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조직에서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드는데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젠더 문제들. 그런 고민을 서로 나누며 각자의 위치에서 잘못된 것을 하나씩 바꿔나가자는 게 우리 모임의 목적이다. 이번과 같은 논란이 일어났을 때 주변 동료가 사건의 본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 출동 경찰의 성별을 탓하는 말들을 한다면 ‘그것은 여성혐오이고 잘못된 생각이다’라고 지적하는 것, 여성혐오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