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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황금종려상 수상은 많은 위대한 한국 감독이 있어서 가능했다"

칸 영화제 수상 후 가진 기자회견

  • 강병진
  • 입력 2019.05.26 10:51
  • 수정 2019.05.26 10:52
ⓒJohn Phillips via Getty Images

‘기생충‘(봉준호 감독)이 25일(현지시간)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 역대 최초의 황금종려상이다. 이창동 감독의 ‘시’ 이후 9년만에 처음으로 칸영화제 본상 수상이다. 

봉준호 감독은 25일 오후 10시(현지시각, 한국시각 26일 오전 5시)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 프레스룸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폐막식이 막 끝난 후였다. 이어 오후 10시 45분(현지시각, 한국시각 26일 오전 5시 45분)에는 칸영화제 수상자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두 자리에서 봉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소감을 밝히고 국내외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종합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John Phillips via Getty Images

◇ 봉준호 감독, 송강호의 한국 취재진 대상 간담회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소감을 부탁드린다.

▶봉준호 감독(이하 봉)=이런 현상은 축구나 월드컵 쪽에서 벌어지는 현상인데 쑥스럽다. 너무 기쁘다. 이 기쁨의 순간을 지난 17년간 함께한 송강호 선배님과 함께하고 있어서 더 기쁘다. 취재라기보다 응원해주신 기분이다. 같이 상을 받는 기분이다. 

▶송강호(이하 송)=저도 같은 마음이다. 저희가 잘해서 받는다기보다는 한국영화인들이 지금까지 한국영화를 응원하고 격려해주셔서 오늘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시 한 번 한국 영화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기분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나올 것 같나. 

▶봉=솔직히 정신이 수습과 정리가 안 된다. 가서 조용히 술 한잔 해야 정리가 될 것 같다. 초현실적으로 머리가 멍한 상태다. 판타지 영화 비슷한 느낌이다. 평소 사실적인 영화를 찍어왔는데 지금 만들면 판타지 영화가 될 것 같다. 

-점점 황금종려상이 다가올 땐 어떤 기분이었나. 수상을 예측했나. 

▶봉=전혀. 차례로 발표를 하니까 허들을 넘는 느낌이었다. 계속 뒤로 갈수록 마음은 흥분되는데 현실감은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만 남은 건가 했을 때는 강호 선배와 서로를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었다. 

▶송=사실 현재 위대한 감독, 위대한 작품들이 즐비했는데 안 불리면 안 불릴수록 기분이 점점 좋아지는 거다, 솔직히. 너무 긴장하고 바들바들 떨면서 기다렸던 것 같다. 

-폐막식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어땠나. 

▶봉=그 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국에 돌아가서 돌팔매를 맞지 않겠구나 안도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리고 그때는 송강호 선배님이 묘사해주실 것이다. (송강호를 바라보며) 묘사해 달라. 

▶송=낮 12시 41분에 연락이 왔다. 12시부터 1시 사이에 연락을 준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40분이 피를 말리더라. 힘들었다. 

ⓒVALERY HACHE via Getty Images
ⓒVALERY HACHE via Getty Images

-수상 직후 누구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나. 

▶봉=강호 선배님이 여기 함께 계셔서 기쁘지만 먼저 서울에 간, 같이 고생한 배우들이 있다. 배우들이 여러명 아닌가. 그 배우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송=저도 마찬가지다. 고생했던 스태프, 후배 배우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고맙고 감사하다. 

-혹시 무대에서 못다한 수상소감이 있을까. 

▶봉=내가 말을 하면 통역 분이 하시지 않나. 저는 통역 분이 하시는 동안 시간 여유가 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빠짐없이, 남김없이 다 했다. 

◇ 봉준호 감독의 칸영화제 수상자 공식 기자회견 

-정말 놀라운 영화였다. 한국적인(domestic) 영화라고 언급했지만 모두가 당신의 영화를 좋아했다. 왜 그런 말을 했나.

▶ 엄살을 좀 떨었다. 그 말을 한 장소가 한국 기자회견 장소였는데, 일단 칸영화제에서 해외에서 먼저 소개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끼리 킥킥거리며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에 관한 이야기이고 가족의 이야기이기에 전 세계 보편적으로 이해될 것이란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다. 

-황금종려상을 탄 최초의 한국 감독이다. 한국 감독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John Phillips via Getty Images

▶마침 또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다. 칸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준 것 같다. 

-포스터에 검은색으로 눈을 가린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모르겠다. 디자이너가 만든 것이다. 그는 좀 다크한 사람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의 포스터 디자이너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한국 영화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이기도 하지만, 장르 영화의 쾌거라는 생각도 든다. 장르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굉장히 고마운 질문이다. ‘기생충‘이란 영화도 내가 해오던 작업을 계속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가 장르의 법칙을 이상하게 부수기도 하고, 장르를 이상하게 뒤섞거나 여러가지 유희를 하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장르영화 감독인데, 이렇게 황금종려를 받게 된 것이 내 스스로도 실감나지 않는다. 심사위원장이 전원 만장일치였다고 얘기해서 더욱 놀랍다. 장르영화 만드는 사람이자 팬으로서 굉장히 기쁘다. 

-봉준호 감독의 진화라는 평이 있다. 봉준호 유니버스에서 ‘기생충’은 어떤 위치, 의미를 갖는가. 

▶유니버스라고 하면 마블 영화 하시는 분들이 잘 아는 것인데, 저는 잘.(웃음) 이것은 일단 저의 일곱 번째 영화인 것 같고, 여덟 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외신의 평가 중 봉준호가 곧 장르라는 평이 있었는데, 가장 감격스럽고 듣고 싶었던 코멘트였다. 

-정말 놀라운 영화였다. 많은 메시지가 있다. 북한 정치 관련 장면이 있는데, 어떤 의도인가. 

▶영화에서 한 여자 캐릭터가 북한 TV뉴스 앵커를 흉내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메시지라기보다 영화적 농담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하는 분들이 그러한 소재를 많이 쓰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유머다.

ⓒVALERY HACHE via Getty Images

-당신은 로컬 영화를 만들었지만 굉장히 세계적이다. 당신이 어떻게 영화에 접근하고 여러가지 장르를 혼합하는지 궁금하다. 

▶시나리오를 쓸 때 나는 장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 막 쓴다. 나는 시나리오를 항상 커피숍에서 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장면이 어떤 장르적 분위기인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영화를 다 찍고 완성하고 나면 나도 고민해본다. 하지만 딱 단 한가지 예외가 있다. ‘괴물’이었다. 나는 원래 다른 몬스터 영화를 싫어했다. 1시간30분 동안 몬스터가 등장하는 걸 기다려야 한다. 나는 30분 만에 괴물을 등장시켰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와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얼마만큼의 영향을 받았나. 

▶이번 영화에서는 큰 연결고리가 없다. 클로드 샤브롤, 알프레드 히치콕과 ‘하녀’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그분들의 영화를 다시 꺼내보며 준비했다. 

-한국영화 100주년에 의미있는 일이 만들어졌고, 중요한 사건이다. 이 수상이 한국영화에 큰 흐름을 만들 것 같다. 어떤 식으로 흘러가길 바라는가. 

▶2006년도에 시네마테크프랑스에서 대규모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을 한 적 있어서 참여했다. 당시 프랑스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황금종려상을 받고 ‘기생충’이란 영화가 많이 관심 받게 됐지만, 내가 어느날 갑자기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김기영 감독님처럼 역사 속에 많은 위대한 한국 감독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영화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는 많은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장예모,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등을 능가하는 한국 영화 마스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올 한해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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