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자녀를 사소한 폭력에도 예민하게 키우는 부모가 좋은 부모다.

ⓒjpkirakun via Getty Images
ⓒhuffpost

가정의 달 5월에 잔혹한 ‘가족드라마’가 넘쳐난다. 재혼한 남편과 함께 중학생 친딸을 살해한 30대 여성. 그저 살인 방조가 아니라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며 적극 가담했다. 딸은 그전에 친부에게도 폭행당했었다. 13세 짧은 인생이 너무도 가엽다. 전 김포시의회 의장은 골프채 등으로 아내를 때려 사망케 했다. 사인이 심장파열이다. 구타 끝에 심장이 터져 죽는 장면은 어떤 잔혹한 스릴러 영화에서도 본 적 없다. 그간 아내가 얼마나 많은 가정폭력에 시달려왔을지 생각만으로도 진저리쳐진다.

의정부 일가족 사망 사건도 있다. 경제적 곤궁을 고민하던 50대 가장이 아내와 18세 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옆방에서 잠자던 13세 아들이 현장을 목격하고 신고했다. 친척들은 “장남인 아버지가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은 남겨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성차별인가? 아니, 대를 잇기 위해 끔찍한 트라우마를 감당하며 살아야 할 소년의 운명은 얼마나 가혹한가. 무엇보다 딸의 손등에서는 방어흔이 발견됐다. 아버지가 흉기로 찌를 때 저항했다는 얘기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살인죄가 적용될 만큼 심각한 범죄”라며 “생명권을 선택할 권한은 부모에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극장가엔 2013년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옮긴 영화 ‘어린 의뢰인’이 개봉 중이다. 친부와 계모에게 학대당하다, 역시 학대로 사망한 동생 살인 혐의까지 뒤집어썼던 소녀의 얘기다. 처음에는 12세 소녀가 8세 동생을 때려죽인 사건으로 알려졌다가 TV 탐사 프로그램의 집요한 취재로 진상이 밝혀졌다. 변호사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폭력을 고발한다면서 폭력을 가학적으로 전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대신 아동학대를 ‘남의 집안 문제’로 치부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처음엔 문제를 외면하려고만 했던 변호사, 사회복지사, 담임교사, 경찰과 이웃 등이다. 영화에서 친부는 “내 새끼 내가 때려죽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외친다. ‘내 가족이니 내 마음대로’, ‘내 자식은 내 소유물’이란 비틀린 ‘가족주의’다.

때마침 훈육 목적이어도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민법 개정이 추진된다. 정부가 민법상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미 학교 체벌은 금지됐고, 가정 내 부모의 학대가 ‘사랑의 매’로 둔갑하는 현실을 막겠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체벌의 교육적 효과와 국가의 과잉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친권자의 징계권을 법에 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다. 일본 역시 관련 법 개정에 들어갔다. 그만큼 우리가 아동 인권의 후진국이었다는 얘기다.

어른이 돼 돌아보면, 어려서 너무 많이 사랑받은 것이 문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훈육 목적의 체벌이라지만 거기에 부모의 감정이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자신하기도 힘들다. 교사가 때리면 안 되는데, 부모는 때려도 되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어떤 폭력도 처음에는 가볍게 한 대 치는 것에서 시작하며, 아동학대의 피해자들이 훗날 가정폭력의 가해자·범죄자로 성장하는 비극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어디서부터 체벌인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사랑의 매’를 위해 아동학대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체벌 아닌 다른 훈육수단을 택하고 그래서 아동학대와 폭력범죄를 미연에 막는 것이 나은가.

한 육아 전문가의 조언이 떠오른다. “우리는 남의 자식에게는 관대하다. 남의 자식 대하듯 자기 자식을 대하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배우 김혜자씨의 책 제목도 생각난다. 그렇다.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자녀를 사소한 폭력에도 예민하게 키우는 부모가 좋은 부모다. 2017년 국내 아동학대 2만2367건 중 1만7177건(76.8%)의 가해자가 부모였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