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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딸들에게 '길 양보하기'를 더 이상 가르치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

"여성들은 완화해주고, 달래주고, 옆으로 비켜주도록 사회화되었다" - 이것은 '공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자료 사진입니다. 
자료 사진입니다.  ⓒChin Leong Teoh / EyeEm via Getty Images

1년쯤 전의 일이다. 나는 두 딸을 데리고 마트를 쇼핑하고 있었다. 다른 고객(남성)이 우리 쪽을 향해 걸어왔고, 나는 딸들을 옆으로 가게 하며 길을 양보했다. “실례합니다”(Excuse me)라고 말하며.

내가 했던 그 말이 오랫동안 맴돌았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실례했단 말인가? 그때 그는 자신의 갈 길이 우리의 동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늘 ‘예의 바르게’ 행동하던 오랜 습관 때문에 자동적으로 길을 비켰다.

이때 뿐만이 아니다. 몇 달 동안 남성들이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올 때, 그들은 당연히 우리가 길을 비킬 거라 생각하고 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다.

내가 혼자 외출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자동적으로 길을 비키지 않으면, 오히려 남성들이 놀라서 움찔하곤 했다.

어느 날, ‘가부장제 치킨 게임’(Patriarchy Chicken)에 대한 칼럼을 하나 읽게 됐다. 영국의 샬럿 라일리 교수가 쓴 글이다. 라일리 교수는 거리와 지하철역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성들과 ‘가부장제 치킨 게임’(Patriarchy Chicken)을 한다고 말했다.

ⓒANGHI via Getty Images

‘치킨 게임’은 서로를 향해 차를 몰며 돌진하는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게임에서 유래한 말이다. 라일리 교수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길에서 부딪히기 전 늘 먼저 공손하게 양보하곤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뒤, 그 습관을 버렸다고 말했다.

라일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남성들은 평생 공간을 차지하도록 사회화되었다. 이런 생각을 입밖에 절대 내지 않은 남성들 역시 자신이 공간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믿도록 길러졌다.  반면 여성들은 공간을 차지하도록 사회화되지 않았다. 여성들은 완화해주고, 달래주고, 옆으로 비켜주도록 사회화되었다.”

여성인 나 역시 그렇다. 상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자주 양보하고 사과하곤 한다.

내가 한손으로 펄쩍펄쩍 뛰는 5세를, 다른 손으로는 2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이제 나는 우리의 공간을 지키기로 했다. 쇼핑, 산책 등 외출에 나설 때 ‘아이들과 나의 목적’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당연히 우리가 길을 비켜줄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렇다.

우리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되, 자동반사적으로 사과하며 내 공간을 포기하는 것. 그걸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예의 바름’과 ‘주위의 모든 사람이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계속 신경 쓰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르다. 가만히 있는 우리가 남들에게 무슨 피해를 주겠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관찰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실례합니다”라고 먼저 말하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 남녀다. 이건 희망적이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비난이 많지만, 나는 밀레니얼 세대가 타인의 공간에 대한 존중을 상당히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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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입니다.  ⓒMichael H via Getty Images

5살, 2살인 아이들은 내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 쓸데없는 노력이라고 주장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살림과 육아 ‘놀이’를 배우고, ‘예쁘게 행동하라’는 말을 듣곤 한다. 가부장제를 조금씩 해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건 그저 누가 먼저 길을 비켜주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뉴욕 타임스 기사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젠더 역할 등의 고정 관념을 3세부터 받아들인다”.

2세와 5세는 페미니스트 본보기를 보여주기에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니다.

첫째 딸은 늘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레고 무비 2’의 ‘제멋대로 여왕’(Queen Watevra Wa’Nabi: Whatever I wanna be, 즉 내가 되고 싶은 것 무엇이나)을 영웅으로 삼는다. 자신의 역할이 ‘남성 또래들에게 길을 비켜주는 것’이라 믿는다면 내 딸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지금은, 슈퍼마켓에서 길을 비켜주려 애쓰거나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한다. 훗날 내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개인적인 삶, 직업 생활에서도 그러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 허프포스트 US의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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