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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 극우 정권이 들어서자, 유일한 성소수자 의원은 목숨을 구하려 망명했다

제안 윌리스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은 끝에 브라질을 떠났다. 이제 그는 브라질 정권의 억압에 대한 '산증인'이다.

  • 허완
  • 입력 2019.05.22 18:30
  • 수정 2019.05.22 18:32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안 윌리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제안 윌리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JUSTIN JIN FOR HUFFPOST

제안 윌리스는 눈을 감고 자신이 떠나온 세상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밤에만 평화를 찾는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브라질 동북부의 바이아주의 꿈을 꿀지도 모른다. 혹은 그가 자신의 도시로 삼은 리우데자네이루의 꿈일 수도 있다. 때로는 어머니나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태어난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은, 그가 육아를 너무나 돕고 싶어하는 조카가 꿈에 나올 수도 있다.

윌리스가 브라질에서 게이임을 밝힌 최초의 연방 국회의원 중 하나가 되어 활동했던 브라질리아와 브라질 의회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아직 LGBTQ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브라질에서 자신처럼 자라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열렬히 활동했다. 그는 인종차별이 무시되곤 하는 브라질에서 혼혈인 사람들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곳 중 하나인 브라질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 그의 혈통의 절반은 흑인이고, 가난했다. 이 두 가지 모두 흔히 브라질에서는 목숨을 잃는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윌리스는 가혹한 현실로 돌아온다. 그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은 브라질이 아니다.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인 브라질에서 극우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몇 주 뒤, 올해 1월 윌리스는 갑자기 브라질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를 드러내고 독재 성향이 있으며 브라질 과거의 군사 독재를 애호하는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는 했으나,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윌리스를 비롯한 LGBTQ 의원들이 국회의원으로 뽑힌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윌리스의 존재는 브라질이 갑자기 극우로 기운데 대한 강력한 저항이 있을 거라는 보장과도 같았다. 그가 브라질을 떠나기로 한 것은 분열된 좌파 운동에 대한 치명타였다. 지금도 소외된 상태인 커뮤니티는 보우소나루와 과격한 우파 지지자들이 자신들과 브라질의 민주주의적 제도에 어떤 타격을 줄지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이들에게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보우소나루는 윌리스와 같은 사람들을 브라질에서 씻어내겠다고 약속했으며, 좌파들에겐 “떠나거나 감옥에 가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며 위협했다.

그러나 윌리스는 세 번째 결과가 있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와 보우소나루는 불화의 전력이 있다. 2016년에 윌리스는 의회에서 보우소나루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오래 전부터 윌리스에게 살해와 폭력 위협을 가해왔다. 보우소나루 당선 이후에는 위협과 독설을 무시하기가 힘들어졌고, 보우소나루 대통령이나 지지자들이 윌리스를 표적으로 삼고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가 매일같이 그를 마비시키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는 의석을 버리고 1월에 브라질을 떠났다. 브라질이 303년 전에 민주주의를 찾은 뒤, 윌리스는 가장 유명한 정치적 망명자가 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대의와 싸움을 위해서는 내가 살아있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윌리스가 지난 달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증오하는 모든 것의 얼굴

지난 십년 간 브라질의 LGBTQ 운동은 사회적, 법적 진전을 이뤄냈다. 대법원은 2011년에 LGBTQ도 대부분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확장했으며 2013년에는 결혼권도 승인했다. 정치, 음악, 문화에서 게이임을 밝힌 브라질인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2017년에는 브라질인의 3분의 1 가까이가 LGBTQ 평등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기록된 지지 수치 중 거의 최고였다.

윌리스는 그러한 진전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언론인이고 대학교수였던 그는 2005년에 리얼리티 TV 쇼 ‘빅 브라더’에서 우승하고 유명세에 오르며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 남성이 되었다. 5년 뒤인 2010년에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브라질에서는 두 번째로 게이임을 공개하고 연방 공직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 2014년에는 재선에도 성공했다.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Pride Parade)에 등장한 거대한 레인보우 깃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2018년 9월30일.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Pride Parade)에 등장한 거대한 레인보우 깃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2018년 9월30일. ⓒMAURO PIMENTEL via Getty Images

 

그러나 윌리스가 당선되기는 했어도, 브라질은 LGBTQ 사망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며, 2018년 선거를 앞두고 게이에 대한 폭력은 늘어났다(전체 살인 사건 역시 증가했다). 2018년에 420명의 LGBTQ가 살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7년 전에 비하면 3배 이상의 숫자다. 증오 범죄의 실제 숫자는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활동가와 연구가들은 말한다.

자기 아들이 게이인 것보다는 죽는 게 나을 것이며, 두 남성이 길에서 키스하는 걸 본다면 둘 다 때릴 것이라고 말한 적 있는 보우소나루는 지난해 10월에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 다음 달에 내가 리우데자네이루에 갔을 때, 보우소나루는 집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윌리스가 브라질을 떠나게 만든 공포는 이미 브라질 LGBTQ 커뮤니티에 깊이 뿌리를 내린 뒤였다.

올해까지 리우 시 위원회에서 일한 공개적 게이인 다비드 미한다는 내게 두렵다고 말했다. 특히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두렵다고 한다.

“지금보다도 더 폭력적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뭐든 해도 처벌받지 않을 거라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주는 대통령이 있다.”

많은 LGBT 브라질인에게 있어 보우소나루 당선 이후에도 일상은 대부분 평소대로 계속되었지만,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이들이 많았다. LGBTQ 프라이드 행사에는 평소보다 보호를 위한 경찰이 더 많이 투입되었다. 미한다와 파트너인 미국 태생의 언론인 글렌 그린월드는 입양 절차를 서둘렀고 새해가 되어 보우소나루가 취임하기 전에 공식적으로 결혼하려고 준비를 시작했다.

윌리스가 1월에 사임한 뒤 미한다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가 리우 시청의 사무실로 출퇴근할 때마다 보디가드들이 동행한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과 함께 싸우려는 욕구도 존재했다. 미한다처럼 그림자 속에 숨기보다 편견이 심한 대통령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으려고 결심한 성소수자 브라질인들도 있었다.

“우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브라질에서 커져가는 LGBTQ 음악 씬의 유명 인사가 된 흑인 트랜스젠더 팝-재즈 가수 리니커가 11월의 상파울루 공연을 앞두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 싸움, 권리에 대한 진정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어떤 대통령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여기 있을 것이다.”

제안 윌리스가 브라질 좌파정당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2018년 4월2일.
제안 윌리스가 브라질 좌파정당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2018년 4월2일. ⓒGetty Editorial

 

LGBTQ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이든 아니든, 윌리스처럼 보우소나루와 직접 싸운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LGBTQ 커뮤니티가 힘을 얻는 과정을 상징하는 얼굴이었다. [보우소나루가] 가장 언짢아했던 것은 국회의원인 자신과 정확히 똑같은 힘과 권리를 가진 공개적인 게이 국회의원이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윌리스가 내게 한 말이다.

윌리스와 보우소나루는 서로에게 깊은 반감을 품어왔으며, 서로 대놓고 싸운 적도 있다. 군인 출신인 보우소나루가 지우마 호세프 당시 대통령 탄핵에 지지표를 던지고 독재 시절 호세프가 당했던 고문을 관리한 군 장성을 지지했을 때 윌리스가 침을 뱉는 사건이 발생했고, 두 의원 모두 공식 견책을 받았다.

윌리스는 보우소나루가 동성애를 혐오하며 편견이 심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브라질 및 국제 미디어를 상대로 보우소나루와 그가 선호하는 정책들을 비난했다. 2018년에는 보우소나루가 급진적인 초보자이며 승산이 거의 없다고 국내외에서 치부할 때부터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다고 일찌감치 목소리를 높여 경고해왔다.

리우에서 나는 여러 번 윌리스에게 연락을 취했다. 보우소나루와 정반대인 사람보다 보우소나루의 승리를 의논하기 좋은 상대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때 이미 윌리스는 대중의 시선에서 거의 사라진 뒤였다. 그의 사회주의적 시각과 섹슈얼리티, 호세프 및 좌파 노동당 지지에 반대하는 보수적 브라질인들은 언제나 그를 위협해왔다. 그러나 2018년 선거 운동 기간 중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왓츠앱 그룹을 비롯한 각종 소셜 네트워크에 프로파간다와 완전히 사실과 다른 주장들을 쏟아냈고, 윌리스는 그들이 주로 공격하는 타겟이 되었다.

온라인에서는 윌리스를 비롯한 친(親)LGBTQ 정치인들이 게이 소아성애를 퍼뜨린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살해 협박이 일반적이었고, 왓츠앱과 이메일에서부터 거리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윌리스가 리우를 걸어다닐 때 공개적으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윌리스는 집이나 사무실에 틀어박혔다. 대중 앞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경호원 없이 다니는 일은 드물어졌다. 자신이 고용한 보디가드들을 믿을 수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언제 어디에 공개적으로 다닐 수 있을지를 점점 더 조심스럽게 고르게 되었다. 가볍게 나가서 저녁을 사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친구나 정치적 관련자들을 만나기에 안전한 레스토랑이나 바를 찾는 기본적인 일조차 힘들게 되었다.

내가 계속 그와 연락을 취하려 할 때는 몰랐지만, 윌리스는 이미 브라질 밖에서의 미래를 고려하고 있었다. 다른 곳이라면 그는 두려움과 위협을 피하고 그의 목소리를 막으려던 세력을 향해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제안 윌리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브라질을 위해 싸우려면 브라질을 떠나야 했다.

 

육체적, 혹은 감정적 살해

브라질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떠오른 건 그가 실제로 브라질을 떠나기 약 1년 전의 일이었다.

2018년 3월14일 밤, 리우의 마리엘리 프랑쿠 시의원이 행사에 참석 후 돌아가는 길에 총격을 받고 숨졌다.

윌리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쿠는 좌파 사회주의자유당(PSOL) 소속이었고 흑인이며, 성소수자였다. 리우에서 가장 큰 파벨라 중 한 곳에서 태어난 프랑쿠는 리우의 부패한 기득권층이 억압해 온 모든 것의 상징으로 떠올랐으며 체제의 구조를 하나씩 해체해 가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프랑쿠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살인을 많이 저지르는 리우의 경찰이었고, 특히 그는 특정 지역을 순찰하며 거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살인을 범하는, 전현직 경찰들이 상당수 포함된 사법 외 무장조직을 겨냥했다.

2018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살해된 시의원 마리엘리 프랑쿠를 추모하는 그래피티.
2018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살해된 시의원 마리엘리 프랑쿠를 추모하는 그래피티. ⓒCARL DE SOUZA via Getty Images

 

프랑쿠 살해 사건은 브라질을 뒤흔들었다. 사건 직후부터 무장조직의 일원과 경찰이 용의자로 꼽혔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쿠의 입을 막으려 했겠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살해당하기 전에는 리우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프랑쿠는 가난한 흑인 LGBTQ 브라질인들이 매일같이 겪는 억압과 폭력의 세계적 상징이 되었다. 프랑쿠 살해 사건으로 전세계에서 저항이 일었다. 프랑쿠가 사라진 뒤 비슷한 배경을 가진 여성들이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웃들끼리 긴밀하게 얽혀있는 사회주의자유당의 리우 지부에서는 프랑쿠의 빈자리를 메꾸지 못할 것만 같았다. 프랑쿠와 친했던 미한다와 미한다의 파트너 모니카는 프랑쿠가 자신과 브라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을 잇기 힘들어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 그녀의 잠재력, 그녀가 이룰 수 있었던 일들, 남은 빈자리.” 미한다의 말이다.

“그들이 그녀의 몸을 죽였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결코 잠잠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윌리스 역시 프랑쿠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몇 달에 걸친 수사 결과 프랑쿠의 살해범들이 리우의 무장집단임이 점점 더 명확해지자, 윌리스가 최근에 받았던 살해 협박이 진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윌리스가 2016년에 보우소나루의 얼굴에 침을 뱉은 뒤 주로 위협을 했던 것은 무장집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우소나루가 승리했다. 공격에 대한 공포가 “나를 내면으로부터 죽이고 있었다”고 한다. “게이 남성을 죽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사람이 나를 육체적으로 죽이지 않았다 해도, 그들은 나를 감정적으로 죽였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를 떠나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윌리스는 브라질 최대 신문사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즉시 사임할 계획을 짰다. 떠나야했다.

윌리스는 폴라 지 상파울루(Folha de São Paulo) 신문에 “나는 내 자신을 돌보고 살아남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우파 반민주주의 지도자들이 탄생하고 있는 가운데, 이 소식은 보우소나루를 경계하고 있는 전세계에 순식간에 퍼졌다. 그러나 최근 취임한 독재자 보우소나루가 윌리스의 출국을 기뻐한 것은 간담을 서늘케 했다.

“멋진 날이다!” 보우소나루의 트윗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이모티콘을 첨부했다.

보우소나루가 툭하면 추어올리는 군사 독재로 인해 좌파 수천 명이 망명을 택했다. 모두 공식 판결 혹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보우소나루가 새로운 망명자를 하나 만든 셈이다.

 

“우리에게 마리엘리는 더 필요없다”

윌리스의 결정에 모두 기뻐하지는 않았다. 군장성 출신이며 보우소나루 행정부에서 의외로 온건파로 떠오른(별로 믿음이 가진 않고 그다지 영향력은 없지만) 아미우톤 모우랑 브라질 부통령은 윌리스와 같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위협이 ‘민주주의에 대한 범죄’라고 발언했다.

모우랑은 4월 워싱턴 D.C. 행사에서 “그는 우리의 법, 정책, 경찰을 믿었어야 했다. 우리는 그를 보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우랑은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인 전부를 대표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성향이 같은 쪽에서도 윌리스와 해외의 협력자들을 비판한 바 있다. 비슷한 위협을 받고도 떠나지 않기로 한 국회의원들이 있다. 보우소나루에게서 탈출할 수 없는 수백만의 LGBTQ, 흑인, 좌파 브라질인들은? 윌리스는 그들을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에겐 순교자는 더 필요없다. 우리에게 마리엘리 프랑쿠는 더 필요없다. 우리한테는 멀쩡히 살아서 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윌리스의 가까운 벗이며 브라운 대학교 브라질 연구 책임자인 제임스 그린의 말이다.

최근 상황이 이 시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윌리스가 브라질을 떠난지 2개월 뒤인 3월에 경찰은 프랑쿠를 살해한 무장집단 소속 2명을 체포했다. 그중 하나는 보우소나루와 관련이 있어 충격을 주었다. 보우소나루의 장남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현재 리우 무장집단과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윌리스에게 모우랑을 믿느냐고 묻자 그는 조소했다.

“믿지 않는다.”

한편 보우소나루는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수사를 동원한 선거 운동 기간 중 했던 말과 거의 다름없는 통치를 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행정부는 체계적이지 못한 마구잡이식 운영을 보이고 있지만, 가장 취약한 브라질인들을 더욱 억압하는데 만큼은 치밀했다.

보우소나루는 LGBTQ원주민들에 대한 보호 장치를 없애버렸고, 경찰이 처벌받지 않고 살해할 수 있는 권한을 확장하려 했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원주민들에 대한 공격이 크게 늘었다. 브라질 경찰은 원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살해를 범하는 경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경찰이 살해한 사람들의 수는 전례없이 증가했다. 가장 흔한 타겟은 가난한 흑인 브라질인들이다. LGBTQ들은 폭력이 심해졌다고 말하고 있으며, 보우소나루가 장관으로 임명한 초보수적이며 편집증적인 인물들은 학교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LGBTQ 평등 등 ‘좌파 이념을 세뇌하고 있다’며 타겟으로 삼고 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Why exile from Brazil today?' 컨퍼런스에 참석한 제안 윌리스. 2019년 2월27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Why exile from Brazil today?' 컨퍼런스에 참석한 제안 윌리스. 2019년 2월27일. ⓒPATRICIA DE MELO MOREIRA via Getty Images

 

이로 인해 윌리스가 브라질 밖에서 맡을 중요한 역할이 생겼다. 그린은 윌리스가 망명으로 인해 보우소나루의 정부가 브라질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행한 ‘억압의 살아있는 대표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윌리스는 브라질을 떠난 뒤 몇 개월 동안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의 민주주의에 어떤 위험이 되는지 유럽을 돌며 강연했다. 연구자들은 브라질 선거가 왓츠앱, 갭(Gab) 등의 소셜 네트워크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은 윌리스 등의 좌파 인물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윌리스는 유럽 대학교에 들어갈 방법을 찾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웹과 현실에서 자신을 위협할 수 있었던데에 소셜 네트워크가 제공한 플랫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페이스북, 왓츠앱, 트위터 등의 기업이 어떻게 전세계 극우 운동에 힘을 주고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는지도 들여다보려 한다.

모국을 떠났지만 브라질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브라질을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브라질을 수족관을 보듯 보는 것 같다. 명확성과 관점이 생겼다. 개입할 수 있는 힘이 더 커졌다. 그리고 나는 브라질이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열정적인 수사가 가끔씩 다시 튀어나온다.

“지금 내게 ‘이건 파시스트 정부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파시스트 정책이 많다.”

그는 대통령궁 앞 시위를 규제하려는 시도를 지적한다. 언론인들에 대한 공격, 매체에 대한 위협을 지적한다. 경찰이 젊은 흑인 남성들을 죽일 여지가 더 많아졌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파시스트 정권이 ‘언제나 타겟으로’ 삼는 LGBTQ에 대한 공격을 말한다. 보우소나루 뿐 아니라 보우소나루가 임명하고 힘을 준 사람들 전부의 문제다.

“이 정부 전체는 파시스트로 가는 길을 향하고 있다.”

윌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내가 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브라질을 떠날 수 없다. 그들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법은 우리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을 대신해서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브라질에 있었다면 나는 내가 죽을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날 제안 윌리스는 브라질 꿈을 꾸다가 미국 로드 아일랜드주의 프로비던스에서 깨어났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깨닫는데는 잠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지난 2개월 동안 그는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에 다녀왔고, 1개월 동안 미국 세 군데를 도는 일정의 첫 지점에 들른 것이었다.

로드 아일랜드에서 뉴욕을 거쳐 워싱턴 D.C.로 갈 예정이다. 그리고 다시 유럽에 가서 브뤼셀의 컨퍼런스에 참석한다. 정신없는 일정이고 불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윌리스는 해치려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을 느낀다. 신뢰를 되찾기가 쉽지 않다.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보우소나루가 유엔에 보낸 대사는 윌리스가 브라질을 떠난 것과 3월에 제네바에서 열린 행사에서 보우소나루에 반대한 것을 비난했다. 그 전달 포르투갈에서는 우익 정당 시위자 2명이 연설하던 윌리스에게 달걀을 던지려 했다.

긴장이 덜할 때조차 윌리스는 자신이 있고 싶은 곳에 있지 못한다. 브라질을 떠나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낯선 언어와 문화, 음식, 얼른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의미한다.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에서 피할 수 있는 곳은 낯선 도시의 호텔 방이다.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브라질에서 이토록 멀리 왔는데도 평화를 찾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그는 시인한다.

“나는 일상생활의 패턴이나 안정을 찾지 못했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나는 지금도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제안 윌리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 2019년 5월9일.
제안 윌리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 2019년 5월9일. ⓒHuffPost US

 

키가 170cm도 되지 않는 윌리스는 의외로 강렬한 음성을 가지고 있고 예리한 재치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의 예전 모습은 간헐적으로만 나타난다. 자신 또는 대화 상대의 이야기가 특정 지점을 건드릴 때, 또는 힘을 실은 수사를 전할 때 강렬한 어조가 가끔 되살아난다.

그러나 내가 예전에 그를 몇 번 인터뷰했을 때, 연설하는 것을 보았을 때와는 달라졌다. 목소리가 더 조용해졌다. 윌리스는 기세가 꺾였다. 자신이 고국에 있지 않고 돌아갈 수도 없다는 걸 떠올릴 때가 가장 심하다.

“내가 브라질의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나는 운다.”

윌리스는 지금 울고 있다.

그는 이런 고통을 억제하고 브라질인과 브라질을 위해 밀어붙여야 하는 싸움에 집중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한다.

“내가 직면해야 한다는 걸 안다.”

최악은 불확실성이다. 이게 몇 달, 몇 년 동안 계속될까? 영원히? 그의 조카는 돌을 맞았다. 조카의 생일을 몇 번 놓치게 될까? 그의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생전에 만날 수 있을까?

그는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언제? 그의 고국 브라질이 그에게 있어 다시 안전한 나라가 되는 날이 올까?

과거의 독재 정권, 새로 생겨난 지금의 권위주의 정권이 얼마나 지속될지, 또는 지속을 시도할지는 정량화해서 측정해 보는 게 가장 쉽다. 그들이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이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어린이들. 그들이 시행하는 반민주적 법, 그들이 권력을 주는 추종자들, 다른 곳에서 부상하게 만드는 세력들.

그들이 모든 이들을 침묵시키고 살해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하는 이들의 영혼은 피폐해지고 마음은 흐릿해진다. 그들은 현재와 미래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공포로 인해 망명하는 사람들, 또는 망명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 매일 마비된 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피해는 또 어떤가?

제안 윌리스는 살아있고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형태의 불안정을 다른 형태의 불안정과’ 바꾼 것뿐이라고 말한다. 살 수 있는 그의 자유에는 측정할 수 없는 대가가 따랐다. 그건 자신의 고국에서 살 자유였다.

 

* 허프포스트US의 When The Far Right Took Over Brazil, Its Only LGBTQ Congressman Fled For His Lif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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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