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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의 '마지막 브렉시트 연설'이었을 것이다

메이 총리는 너무 늦게, 너무나도 변변찮은 제안을 내놨다. 모두가 그의 '새로운' 제안에 등을 돌렸다.

  • 허완
  • 입력 2019.05.22 17:00
ⓒPOOL New / Reuters

″살아있기에 좋은 시절입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그의 정치적 열정을 다해 선언했다.

그러나 어안이 벙벙한 청중들, 6층에 걸쳐 나눠 앉은 회계사들은 아트리움 유리 난간에 코를 박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한 기이한 피조물이 천천히 마지막 숨을 내쉬는 모습을 지켜보는 관광객들처럼. 

그의 브렉시트 계획이 그렇듯, 좀비 같은 의회가 그렇듯, 메이 총리는 몇 개월째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지내고 있다.

자신의 브렉시트 타협안을 부활시키려는 이 최후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최신 제안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도 같은 합의안을 여야 모든 의원들에게 오히려 덜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런던 채링크로스에 있는 다국적 회계컨설팅 기업 PwC 사무실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의도하지 않은 유머와 함께 시작됐다. 사회자가 총리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모든 비즈니스 리더들이 그렇 듯 우리는 확실성과 안정성을 간절히 원합니다...테레사 메이 총리를 소개합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총리의 이날 실제 연설 그 자체는 가장 솔직하고, 개인적이었고, 자신의 총리직에 대한 간결한 논증으로 이뤄졌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타협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시인하면서 보기 드문 자기 인식을 보여줬다.

후회의 기색도 엿보였다.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일찍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제안으로도 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시인하면서다.

EU의 복잡성을 ‘잔류냐 탈퇴냐’의 양자택일 질문으로 단순화시켰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나 이를 바탕으로 탈퇴 선거운동을 펼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 마이클 고브 환경부 장관에 대한 힐난도 있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탈퇴'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마이클 고브(가운데)와 보리스 존슨(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탈퇴' 선거운동에 참여했던 마이클 고브(가운데)와 보리스 존슨(오른쪽)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POOL New / Reuters

 

″투표용지의 (잔류-탈퇴 중 하나라는) 단순한 선택으로부터 브렉시트를 가장 가까운 이웃인 27개 회원국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복잡한 문제로 나아가는 일은 처음부터 엄청한 도전이었습니다.” 메이 총리가 말했다.

고별의 인사를 하듯, 메이 총리는 자신의 재포장된 브렉시트 합의안이 브렉시트를 이행할 ”마지막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의회에서 이를 통과시키려는 네 번째 시도가 실패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자리에 머물지 않겠다는 확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핵심 주장은 이게 의원들을 향한 ‘새로운’ 제안이라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우리가 그 포인트를 놓치기라도 했을까봐 그랬는지, 그는 ‘새로운 브렉시트 합의안‘이라는 표현을 아홉 번, ‘새로운 노동자 권리 (보호)‘라는 표현을 두 번, ‘새로운 독립적인 환경보호사무소’를 한 번 각각 언급했다.

마법과도 같은 ‘새로운‘이라는 접두사를 추가하는 게 통했던 때도 있다. ‘새로운 노동당’을 주창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그랬다. 그러나 블레어에게는 두 번이나 큰 격차로 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여당이 있었고, 가장 위대한 절충가라 하더라도 브렉시트 같은 건 단순히 3각으로 만들어 중재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시인했을 것이다.

블레어와는 달리, 메이는 세계 최악의 정치적 중재자다. 온건파로 분류되는 보수당 의원들마저 오늘 메이 총리의 연설에 격하게 반발했다는 사실은 총리에 대한 보수당 내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즉,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구할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무지 의원들에게 납득시킬 수는 없지만, 보수당 의원들이 원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망쳐버릴 수는 있다는 것이다.

신의 영감을 구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메이 총리는 위쪽에 위치한 관객들을 자주 올려다보면서 노동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에 주력했다.

처음으로 그는 정말 새로운 두 가지 제안을 내놨다. 하나는 임시 관세동맹에 대한 표결이었고, 다른 하나는 ‘확인(confirmatory) 국민투표’였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 마음에 드는지 국민들에게 결정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메이 총리가 노동자 권리 및 환경보호에 있어서 EU의 기준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분명한 약속과 함께 내놓은 이 새로운 호소는 노동당에게 외면 받았다. 큰 이유는, 이런 제안이 너무 늦게 나왔기 때문이다.

ⓒPOOL New / Reuters

 

2017년의 조기총선이 증명했던 것처럼,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게 메이 총리의 강점은 아니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보수당이 너무나도 분열되어 있어서 자기가 지도자로 있는 동안은 결코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하필이면 왜 유럽의회 선거를 이틀 앞둔 이날을 잡았는지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를 둘러보고, 자유민주당들의 건강한 상태를 생각해봅시다. 아니,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메이 총리가 말했다. 총리실의 한 직원조차 이 실수에 얼굴을 찡그렸다. 최근 친(親)EU 잔류 정당을 자임하며 다시 떠오르고 있는 정당이자 전임 총리 캐머런이 써먹고, 학대하고, 2015년 총선에서 다수당을 확보하면서 무너뜨렸던 자유민주당(LibDem)을 실수로 언급한 셈이기 때문이다. 

‘확인 국민투표’라는 제안은 분명 꽤 중요한 것이었다. 이는 2차 국민투표를 원하는 노동당 의원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큰 도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이 총리의 이 변변찮은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총선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도록 제러미 코빈 대표를 설득시킬 수 있느냐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당 의원들이 메이 총리의 제안을 신속하게 외면한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조금은 모호했던 브리핑이 끝난 뒤, 메이 총리의 제안은 탈퇴합의법(Withdrawal Agreement Act)과는 별도로 진행될 절차에 대한 투표 기회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탓이다.

노동당 마거렛 베켓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메이 총리는 이날 자신의 연설에서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브렉시트 합의안이 또다시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총선 ”또는 브렉시트 철회로 이어질 수 있는 국민투표”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다.

메이 총리는 자신이 제출할 새로운 법안이 ”며칠 내로”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몇몇 구상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내각 회의에서 나왔던 걸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인다. 최대한 좋게 얘기하더라도 법률의 형태로 제출될 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POOL New / Reuters

 

내각의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관세동맹 잔류나 2차 국민투표에 대해 의원들의 ‘자유 투표’를 허용하자는 계획을 강하게 반대해왔다.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의 주도로 그들은 영구적 관세동맹이라는 노동당의 제안을 포함시키기를 거부했다.

메이 총리로서 가장 위험한 결과는, 관세동맹과 국민투표에 대한 최소한의 ‘새로운’ 투표를 제안함으로써, 그가 당론에 배치되는 투표를 해왔던 보수당 의원들에게 단숨에 또 하나의 완벽한 명분을 선사했다는 점이다.

브렉시트 찬성파인 당대표 도전자인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나 도미니크 랍 전 브렉시트부 장관은 앞서 3차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투표에서 마지못해 찬성표를 던진 것을 후회하고 있음을 드러낸 바 있다.

이제 그들은 총리 덕분에 마음대로 투표를 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의 몸이 됐고, 메이 총리는 스스로가 만든 정치적 감옥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됐다. 이제는 온건파 보수당 의원들조차 반대표를 던지며 반란에 나설 위험이 있다.

메이 총리의 충성파였다가 강력한 비판자로 변신한 나이젤 에반스 의원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브렉시트당이 대대적인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더 높아졌음을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메이 총리가 2차 국민투표를 원한다고 하는데, (유럽의회 선거가 있는) 23일까지만 기다리면 될 것이다.”

메이 총리가 연설을 마칠 때쯤, 애처로운 인상마저 들었다. ”이 합의안은 우리와 EU의 향후 관계에 대한 최종안이 아닙니다. 그 미래로 가는 돌 하나를 놓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건 그의 마지막 ‘중대 브렉시트 연설’이 될 것 같다.

이날 총리의 ‘채링크로스 타협’ 연설과 짤막한 질의응답이 끝나고, 메이 총리는 가장 짧고도 약한 얌전한 박수를 뒤로 하고 아트리움을 떠났다. 정치적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고, 다음달은 커녕 다음주 후반까지 그가 총리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엄청난 승리가 될 정도로 반응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보수당 평의원들로 구성된 의사결정 기구인 1922위원회 임원들은 내일 회의를 갖는다.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새로운 요구가 나올 것이다. 남녀 정치인들이 어쩌면 메이 총리를 그의 고통에서 구해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의 고통에서도. 

 

* 허프포스트UK의 How Theresa May’s Frankenstein Brexit Deal Twitched And Gasped Its Last Breath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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