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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21일 11시 29분 KST

나훈아 콘서트 '청춘 어게인'에 가봤다

"자식들이 힘들게 표를 구해줘서 오셨죠? 그래서 여러분 이대로 못 보냅니다"

한겨레 서정민
18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나훈아 공연을 찾은 관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3월20일 오전 10시 정각. 미리 연습한 대로 손가락을 전광석화처럼 움직여 ‘광클’했다.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아 전 단계로 돌아오니, 아뿔싸! 찜해둔 좌석이 사라졌다. 잽싸게 다른 좌석을 클릭하고 몇차례 고비를 넘기며 최종 단계까지 갔다. 마침내 ‘피케팅’(피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 전쟁에서 승리했다.

나훈아(72)가 5월17~1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하는 공연 ‘청춘 어게인’의 2만장 넘는 표는 8분 만에 매진됐다. 2017년, 11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이후 그의 공연은 3년째 매진이다.

지난 18일 저녁 체조경기장 앞은 50대 이상 중년·노년 관객으로 왁자지껄했다. 나훈아 사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머리 희끗한 65살 여성은 나훈아 이름을 새긴 야광봉을 들고 소녀 같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티케팅 전쟁에서 표를 쟁취한 딸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엄마, 공연 잘 보시고 끝나면 연락해.” 엄마 혼자 들여보내는 딸의 얼굴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저녁 7시, 쏟아지는 비를 배경으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부르는 나훈아의 흑백영상이 나왔다. 비가 멎고 무지개가 뜨더니 새소리와 함께 진짜 앵무새가 공연장 안을 날았다. 이어 노랑과 검정 줄무늬의 벌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로 나와 춤을 췄다. “아, 당신은 못 믿을 사람~” 무대 높은 곳에서 나훈아가 노래를 시작했다. 1987년 발표한 자작곡 ‘땡벌’로, 훗날 후배 가수 강진이 리메이크하고 조인성이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부르면서 큰 사랑을 받은 노래다. 노랑과 검정의 화려한 두루마기를 입은 나훈아는 한마리의 여왕벌 같았다.

나훈아 공연 ‘청춘 어게인’ 포스터

두루마기를 벗으니 아래위 흰색 의상이 드러났다. ‘물레방아 도는데’ ‘잡초’ ‘무시로’ ‘18세 순이’ 등 히트곡을 잇따라 불렀다. ‘사랑’을 부를 땐 이 노래가 쓰인 나훈아·정윤희 주연 영화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장면이 나왔다. 막판에 둘의 키스신이 나오자 관객들이 소리를 질렀다. 나훈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죄송합니다. 스태프가 실수했습니다. 이거 하지 마라 캤지?” 하고 말했다. 공연 시작 30여분 만에 나온 첫 멘트였다. 하지만 영상 자막으론 ‘이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습니까 ㅠ ㅠ’ 하는 스태프의 하소연이 나왔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공연을 기획·연출한 나훈아의 ‘큰 그림’이었다.

나훈아는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옷으로 갈아입고 장미꽃 마술을 선보이는 등 끊임없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구수한 입담도 자랑했다. “아까 공연장 오는데, 어떤 할매가 ‘오빠야’ 카더만. 그때 제가 할배인 걸 알았습니다.” “저보고 신비주의 카는데, 저는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방송, 기자들이 하도 내 가슴을 아프게 해서 꼴도 보기 싫어 안 만났더니 신비주의라 캅디다.”

예아라 제공
나훈아가 이달 초 발매한 새 앨범 <벗2> 표지.

그는 이미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얼마 전 이미자 선배님이 올해 공연을 끝으로 그만둔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쌔했습니다. 나는 공연에 몇배나 더 힘이 드는데, 언제 그만둬야 하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곤 통기타를 치며 이미자의 대표곡 ‘동백아가씨’를 불러 선배에게 헌정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기 오기까지 사정을 압니다. 자식들이 힘들게 표를 구해줘서 오셨지요? 그래서 여러분 이대로 못 보냅니다. 공연 보고 돌아가면 자식들이 ‘우리 엄마 어디 갔노?’ 하고 못 알아볼 정도로 젊어지도록 청춘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두루마기를 벗으니 찢어져서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청바지에 흰 민소매 티셔츠 차림이 됐다. 그는 노래했다. “청춘을 돌려다오~”

한겨레 서정민
지난 18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나훈아 공연을 찾은 관객들이 신청곡을 고르는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다

‘배신자’ ‘울긴 왜 울어’ ‘고향역’ 등 익숙한 히트곡에 관객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나훈아는 본공연을 마치고도 관객들의 “또 또 또” 외침에 몇번이고 다시 나와 노래하고 또 노래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2시간여 동안 25곡을 열정적으로 소화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맞은편 핸드볼경기장에서도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걸그룹 여자친구 공연도 막 끝난 터였다. 두 공연 관객들이 순식간에 뒤섞였다. 과장 좀 보태자면, 누가 여자친구를 봤고 누가 나훈아를 봤는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모두가 청춘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