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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이 '나의 특별한 형제'를 보기를 바란다

한국은 거리에서 장애인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나라로 악명이 높다

ⓒ명필름 , 조이래빗

최근 모처에서 장애인 관련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다 말고 혼자 흥분한 일이 있었다. “시청자들의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시혜적인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는 논조의 이야기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기부액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쇼의 완성도나 태도 면에서 어느 정도 양해를 하는 일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자연스레 답답해졌다. 결국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별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제가 장애인 가족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 그런지 더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티브이에서 장애인을 다룰 때 지나치게 시혜적인 시선을 유지하면, 별생각 없이 집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장애인들은 기분이 이상하다고요. 자신과 같은 병이나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전국민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는 광경을 확인하는 것 아닙니까. 비장애인들이야 자신들의 기부로 저 불쌍한 이들을 돕는다는 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들을 다룬 티브이 프로그램에서조차 대상화되는 장애인들은 마음이 복잡해진단 말이죠.”

세상의 정의나 정치적 공정함에 대해 어지간히 알 만한 분들을 모셔 두고 내가 이것까지 설명해야 하는가 싶어 기분이 참담했지만, 한편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여러 소수자 인권 문제 중 장애인 인권 문제는 유달리 덜 가시화된 문제 아닌가.

한국은 거리에서 장애인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로 악명이 높다. 좁고 턱이 많은 인도는 전동 휠체어가 다니기 어렵고, 극도로 시력이 좋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반드시 선명하게 잘 보이는 노란색으로 설치해야 하는 점자블록은 ‘미관상의 이유’라는 문제로 흰색으로 설치되거나 심지어는 철거되기도 한다. 일반버스와 섞여서 운행되는 저상버스는 운행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사용이 어렵고, 승객이 붐비는 시간대에 휠체어를 탄 승객이 탑승을 시도하면 노골적인 눈치나 원망의 대상이 된다.

온 사회가 온 힘을 다해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시야 밖에 고립시키려 애를 쓴 사회이니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잘 실감을 못하는 비장애인도 많을 것이다. 일단 장애인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어야 장애인 인권 문제도 보일 것 아닌가.

ⓒMBC

물론 한국의 모든 장애인 관련 콘텐츠가 시혜적인 시선으로 일관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한 차례 이 지면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문화방송 <우리동네 피터팬> 같은 사례도 있다. 장애인을 장애로만 정의하는 대신, 그들 개개인이 지닌 꿈과 목표는 무엇인지 묻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낸 이 프로그램은 언제 봐도 준수하다.

물론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청자의 기부이지만, <우리동네 피터팬>은 그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해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시선으로 묘사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장애를 이유로 꿈을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비장애인 시민들이 동정이 아닌 연대로 함께하자는 것이 <우리동네 피터팬>의 기본적인 문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근무 중이거나 식사 중인 목요일 낮 12시25분에 방영되는 탓에 일부러 작심하고 찾아보지 않는 이상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높은 완성도와 바람직한 태도를 지녔음에도 영 접근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배치되어 비장애인 시청자들과 격리되다시피 한 프로그램의 현실은, 역설적으로 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닮았다.

물론 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연대해야 하는지 묻는 비장애인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판 타인을 위해 돈을 내면서 동정심이나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뿌듯함도 느끼면 안 되는 건지. 그 정도도 느껴서는 안 된다면 나는 무슨 이유로 내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지 묻는 이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꾸준히 사회적 지출을 늘려 왔다. 거주 지역을 이유로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조밀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구축했고, 한자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정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각종 문서를 국한문 혼용에서 서서히 한글 전용으로 바꾸어 왔으며, 누구라도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을 깔았다. 학생들이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민의 세금을 모아 무상급식 정책을 도입했고, 가난을 이유로 기본적인 검진과 일상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민건강보험을 구축했다.

오늘날 수많은 비장애인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회에 진출해 살아갈 수 있는 건, 거주지역이나 교육 수준, 소득 수준 등과 무관하게 기본적인 인권은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재원 마련과 지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을 장애인 시민들에게도 가능케 하자는 것이다. 동정이 아닌, 대등한 연대로 말이다.

ⓒ명필름 , 조이래빗

전신마비 장애인 최승규씨와 발달장애인 박종열씨의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가 탁월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육상효 감독은 언제나 쉽게 마음을 주기 어려운 아웃사이더나 주류 사회 진입에 실패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운 코미디를 선보여 왔는데, <나의 특별한 형제> 또한 이와 같은 감독의 장기가 빛을 발하는 영화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비장애인 창작자가 장애인 캐릭터를 만들 때 택하는 가장 쉬운 방식을 거부한다. 장애인 캐릭터를 마냥 착하고 순수해서 호감 가는 인물로만 그리는 일 말이다. 전신 지체장애인 세하(신하균)와 발달장애인 동구(이광수)를 주인공으로 세운 이 작품에서, 세하는 그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세상 모든 일에 지극히 냉소적으로 반응하고, 시종일관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투는 가능하면 말을 섞는 일을 피하게 만든다. 심지어 어떤 순간엔 생존을 이유로 반사기꾼처럼 구는 인물인데, 영화는 그렇다고 세하가 이처럼 냉소적인 인물이 된 이유를 공들여 변명해주거나 그가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육상효 감독은 그렇다고 관객들이 이들을 장애를 이유로 동정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관객이 동정의 마음을 가지려 할 때쯤이면 영리하게도 이들을 둘러싼 물적 조건들이 보강된다. 세하의 상황이 안 좋아질 무렵이면 그가 신청한 장애인 임대주택이 나오고, 동구에게 세상에 기댈 곳이 형 세하밖에 없다고 생각할 무렵 예상치 못한 이들이 등장해 자신들도 있노라고 외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쉽게 동정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이들 또한 타인의 동정을 그러려니 하고 받을 만큼 순하고 평면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명필름 , 조이래빗

결국 관객은 <나의 특별한 형제>의 주인공들이 착해서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쉽게 동정할 수 있어서 지지하는 것도 아닌, 대등한 연대의 순간 앞에 불려간다. 그저 그들이 처한 상황이 부당한 것이기에, 동정이 아닌 존중과 역지사지의 자세로 그들 편에 서게 되는 정서적 체험 말이다. 덕분에 우리는 강세하와 박동구라는 인물들에 대해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다. 마치 세하의 까칠한 성격에 질려 핸드폰에 그의 이름을 욕설로 저장해 뒀음에도, 여전히 세하가 부당한 상황에 놓이면 기꺼이 함께 친구로서 연대하는 극중 미현(이솜)처럼 말이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지난 5월 1일에 개봉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라는 영화 역사상 가장 거대한 블록버스터 이벤트가 온 극장가를 줄 세우는 데 여념이 없던 시기에 개봉해서, 용케도 열흘 만에 100만 관객을 넘기는 데 성공했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일은 어찌어찌 될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났으면 좋겠다. 동정을 바라거나 호감을 구걸하는 대신, 당당한 태도로 연대를 요구하는 이 영화를 보며, 더 많은 비장애인 관객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연대의 마음을 키워주셨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언젠가 나도 이렇게 길고 장황한 설명을 개인사를 섞어가며 해야 하는 일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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