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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15일 15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15일 15시 39분 KST

핀란드에서 20년 동안 버려진 음식을 먹고 산 채식주의자의 이야기

핀란드 이모저모

헬싱키에 거주하는 제시카 수니는 자신을 ‘프리건(freegan : free+vegan)’이라고 소개했다. 무려 20년 동안 버려진 음식 더미에서 자신이 먹을 채식 음식을 찾으며 살았다.(핀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24kg의 음식을 버린다.) 제시카가 구한 음식은 유통기간이 지난 경우가 많았지만, 여전히 먹을 수 있고, 슈퍼마켓 선반에서 볼 수 있는 음식과 품질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제시카가 버려진 음식을 뒤지는 건 단지 식비 절약을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생태 발자국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며, 윤리적인 소비를 위한 실천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새 옷을 산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했으며, 때로는 쓰레기통에서 깔끔하게 다림질돼서 접혀있는 옷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제시카는 버려진 음식을 뒤질 때 항상 바나나와 빵을 발견했으며, 계절에 따라 다른 음식들을 찾아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가게들이 엄청난 양의 햄과 초콜릿을 버린다고 했다. 요즘은 근처 가게들에서 음식을 버리는 대신 그녀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제시카가 소비하는 음식의 절반 가량이 그것으로 충당돼서 그만큼 그녀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이 줄었다. 

제시카는 버려진 음식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는 최적의 시간은 저녁 때이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면 밤 시간을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쓰레기통 보관 장소를 잠그는 슈퍼마켓이 늘고 있기 때문에 유용한 물건들을 수거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상점들이 남은 음식을 기부하기를 원했다.

제시카는 버려진 음식 때문에 탈이 난 적은 없다면서, 상한 음식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고 했다. 

버려질 음식을 먹기 위한 노력

1. 레스큐 클럽(ResQ Club)과 런치 마켓(Lunchie Market)

식당에서 버려질 운명에 처한 음식을 5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게 해주는 온라인 서비스 회사가 있다. 레스큐 클럽런치 마켓은 2016년에 식당에서 버려질 음식을 구매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서비스를 먼저 출시한 건 레스큐 클럽이지만, 상황이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레스큐 클럽의 창업자는 런치 마켓에서 출시 작업을 하다가 해고된 사람이었다. 해고를 당한 뒤 런치 마켓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레스큐 클럽을 출시한 것이다. 이후 레스큐 클럽의 창업자는 런치 마켓의 사업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2018년 2월 유죄판결을 받았다.

두 회사 모두 유럽의 다른 나라에도 진출하는 등 버려지는 음식과 기술을 접목한 사업 아이디어로 각광을 받고 있다. 레스큐 클럽에 따르면 식당 음식 중 10퍼센트가 버려지고 있다.

2. 라빈톨라 룹(Ravintola Loop)

슈퍼마켓에서 버려질 운명에 처해진 음식을 이용해 점심으로 고급 채식 요리를 내놓는 레스토랑도 있다. 비영리 단체인 웨이스트 투 테이스트(Waste to Taste)에서 운영하는 라빈톨라 룹은 아침에 제휴를 맺은 슈퍼마켓에서 주는 남는 음식을 가져와 그날의 메뉴를 계획한다. 레스토랑은 수집하는 음식의 10%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양한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또한 채용정책에서도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이민자, 청소년, 장기 실업자가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돕는 노력을 하고 있다.

Ravintola Loop 인스타그램

3. 위푸드(WeFood)

비영리 단체인 핀 처치 에이드(Finn Church Aid)가 운영하는 위푸드 슈퍼마켓이 2018년 9월에 문을 열었다. 위푸드는 일반 상점에서라면 버려졌을 과일과 채소를 20~8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포장이 약간 손상되거나 표면에 살짝 문제가 있는 과일과 채소들이다. 자원봉사자가 운영하는 위푸드의 이익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핀 처치 에이드를 지원한다. 덴마크에서 먼저 성공한 위푸드(핀 처치 에이드의 자매기관인 덴처치에이드가 운영했다). 핀란드에서도 가능할까.

WeFood Suomi 페이스북

4. 프루들리(Froodly)

슈퍼마켓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들을 할인하지만, 고객들은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루들리가 모바일 앱을 만들었다. 능동적인 사용자는 지역 상점의 할인 품목의 사진을 모바일 앱에 공유하고 무료 커피나 추가적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일반 사용자는 공유된 할인 정보를 활용하여 저렴한 음식을 구매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출발한 서비스였으나,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글을 마치며

무려 20년 동안 버려지는 음식으로 살아왔다는 여인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했을 때, 생각할 거리로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현실화된 버려진 음식에 대한 고민의 해결책들도 나눌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진행형인 노력도 있지만, 프루들리처럼 뿌리내리지 못한 노력도 있었다. 프루들리의 이야기를 뺄까 하다가, 이러한 서비스가 있었고 한계에 부딪혔다는 이야기로 가치가 있다 생각되어 빼지도 넣지도 못한 채 남겨두었다.

슈퍼마켓 폐점 시간 즈음 장을 보게 되면, 당일만 판매하는 자체 베이커리 식품들을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마구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어줄 음식이 그렇게 속절없이 버려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음식 폐기량을 줄이기 위해, 슈퍼마켓들도 유통기간이 임박한 음식을 할인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많이 눈에 띈다. 다른 한편으로는 판매자 입장에서 고객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보장해야 하는 그들의 입장도 이해한다.

런던에 있을 때 회전초밥집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신선도에 예민한 날생선을 다루는 식당이라 당일 남은 음식은 전량 폐기했다. 종종 남은 음식을 싸가기도 했는데, 가끔 주방장이 원칙에 따라 음식 반출을 허락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만약에 그렇게 싸간 음식을 먹고 탈이 나면 그 책임이 식당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주방장의 원칙 고수 입장도 이해하지만, 야속할 때가 있었다.

사실, 음식은 먹고 탈이 날 수도 있는 문제라, 버려지는 음식 문제에 쉽게 다가서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문제를 무시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치르는 대가가 너무 많다. 누구는 없어서 못 먹고 누구는 버려야 하고... 슬프게도 복지국가인 핀란드에서조차 가난해서 음식이 필요한 사람과 마구 버려지는 음식이 공존한다.

* 북유럽연구소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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