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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배경에는 '2020년 대선'도 있다

트럼프는 '강한 지도자'로 보이고 싶어한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은 그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다.

  • 허완
  • 입력 2019.05.14 18:58
ⓒMark Wilson via Getty Images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역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가치관은 이미 30여년 전에 정립됐다는 게 정설이다.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이던 그는 1987년 당시 신문에 ”수십년 동안,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이용해왔다”는 의견 광고를 냈고, 일본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며 ”나는 무역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30여년 뒤인 2015년,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트럼프는 무역적자와 중국을 언급했다. ”중국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말을 여러분들이 들어본 게 언제입니까? (...) 그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말을 듣지 못했어요.”

지난해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불을 붙였을 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충격은 만만치 않았다. 세계 경제는 출렁였고, 시장은 거대한 불확실성에 사로잡혔다. 경제규모로 세계 1위와 2위를 자랑하는 거대한 두 나라가 실제로 관세와 보복관세를 주고 받으며 충돌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낙관적 전망도 없지는 않았다. 이 ‘전쟁’이 계속되면 양쪽 모두 잃을 게 많기 때문에 결국에는 합의를 이뤄 파국을 피하려 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지극히 합리적인 가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때로 비합리적인 이유들로 인해 벌어지곤 한다. 우연과 오판이 겹치면서 전쟁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은 두 나라 간 무역전쟁의 이면을 각각 조명한 기사를 내보냈다. NYT는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어떻게 2020년 대선 선거운동에 활용하고 있는지 짚었고, WSJ은 협상 막전막후의 사건들을 조명했다.

이것은 어쩌면 이 전쟁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음울한 예고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어느 한 쪽이, 또는 양쪽 모두가 어느 정도 피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Joshua Roberts / Reuters

 

트럼프는 ‘승리’를 간절히 원했다

트럼프는 스스로를 ‘강한 인물‘로 포장해왔다. 그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공화당민주당의 정치적 정적들을 비난할 때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도 바로 ‘유약하다(weak)’이다. 

실제로 그가 강한 인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강해보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도 ‘강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려 애써왔다는 게 NYT의 설명이다.

 NYT는 선거를 앞두고 중국을 때리는 건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오랜 전략이었다며 ”그러나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의 메시지와 똑같이 어느 모로 보더라도 공격적인 조치들을 중국에게 취함으로써 통례를 뒤집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임기 초반만 하더라도 트럼프는 무역합의를 맺어 중국을 사실상 ‘굴복’시킴으로써 자신의 강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러나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자 트럼프의 인내심은 바닥나기 시작했고, 그는 협상 대표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승리’의 징표가 될 무역합의라는 성과를 간절히 원했으므로 협상단의 두 축인 므누신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보고했다고 한 관계자는 NYT에 말했다. 자칫 협상을 깰 수 있는 즉흥적인 트윗이나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은 트럼프의 이같은 조급함을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말했다고 WSJ은 전했다. 오판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앞서 보도한 것처럼, 회담을 앞두고 중국 정부 당국자들은 자신들에게 레버리지가 있다고 봤다.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연준을 비판하고 저금리에 대한 바람을 드러내온 건 그가 향후 미국 경제의 향방을 걱정하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합의를 더 간절히 맺으려 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는 중국의 오판이었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금리 인하를 주장해왔고, 또한 미국 경제의 지속되는 튼튼함을 반복해서 언급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 5월13일)

워싱턴에서 무역협상이 재개되기 사흘 전인 5일, 트럼프가 ‘곧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트윗으로 발표하자 중국 측은 허를 찔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트럼프는 실제로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ASSOCIATED PRESS

 

트럼프의 ‘달라진 계산법’ 

NYT는 트럼프가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2020년 대선에 활용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고 짚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중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중국 이슈에서 정치적 약점을 보일 것이라는 판단이 최근 트럼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미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무역협상 타결을 설득해 온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같은 ‘온건파’를 뿌리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중국과의 기념비적인 무역 합의 가능성은 트럼프를 조바심나게 했다. 그러나 애널리스트 및 여러 전직 측근들에 따르면, 이제 그의 정치적 계산법은 뒤집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최근 발언들은 이제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자신의 강함(toughness)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합의를 깨는 것이 어쩌면 합의문에 서명하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믿고 있음을 시사한다. (뉴욕타임스 5월10일)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철수하고 재협상을 시도하는 이유는 그들이 (민주당) 조 바이든이나 매우 유약한 다른 민주당 정치인들과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미국을 (1년에 5000억달러씩) 뜯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진심어린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거다!” 트럼프가 지난 5일 올린 트윗이다.

이번주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 비치 유세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이 ‘해외 지도자들은 내가 2020년에 트럼프를 꺾기를 바란다고 말해줬다’고 지지자들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그럴 거다. 그래야 미국을 계속 빼먹을 수 있을 테니까.”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말했다. (뉴욕타임스 5월10일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합의에 이를 것처럼 보였던 논의가 막판에 삐걱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중국이 합의하기로 했던 조치들을 뒤집거나 번복하자 이에 크게 분노했다고 WSJ은 전했다. 중국은 지적재산권이나 해외 기업 기술 이전 강요, 자국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라는 미국 측의 핵심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미국 측에 통보했다. 협상 전문을 공개하는 대신 요약문만 발표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해 오랫동안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라이트하이저 등은 중국이 ‘골대를 옮기고 있다’고 봤고, 이는 트럼프의 분노로 이어졌다는 게 WSJ의 전언이다. 트럼프는 트윗으로 중국이 ‘협상을 다시 하려고 한다‘거나 ‘합의안이 거의 다 됐는데 당신들이 물러섰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미국 측도 중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기존에 부과했던 관세를 당장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중국은 이번 협상이 자국에 ‘굴복‘이나 ‘양보’로 비춰지는 걸 경계해 온 입장에서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기는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약해 보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WSJ이 한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가 중국보다 훨씬 튼튼하므로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매우 강력한 위치에 있다. 우리 경제는 매우 강해왔는데, 그들(중국)의 경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2016년 대선 이후 엄청나게 올랐다. 숫자를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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