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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이 되는 법

정우성 섭외하려다 남자 신인 100명 프로필을 뒤진 사연

  • 김민식
  • 입력 2019.05.14 14:32
  • 수정 2019.05.14 15:15

나의 연출 데뷔작은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인데, 신인 피디 시절 나는 당대 최고의 톱스타를 캐스팅하는 게 목표였다. 정우성을 섭외하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부장이 그랬다. “정우성이 시트콤에 나와서 망가지는 코믹 연기를 할까?” “제가 신인 피디다운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민식아, 정우성 집 앞에 가봐. 너처럼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피디들이 열 명 정도 무릎 꿇고 앉아 있을 거야. 넌 가면 줄 맨 끝에 가서 순서를 기다려야 해.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정우성도 10년 전에는 신인이었어. 그때는 정우성이 프로필 들고 방송사 피디들마다 쫓아다녔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 피디로서 네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스타를 쫓아다닐 게 아니라, 10년 후 제2의 정우성이 될 신인을 찾아서 키우는 것이야.”

그 말을 듣고 100여명의 남자 신인 프로필을 뒤지고 20명을 불러 오디션을 봐서 최종적으로 뽑은 이가 조인성이었다. <문화방송> 청춘 시트콤은 <남자 셋 여자 셋>부터 <논스톱> 시리즈까지 다 스타의 산실이다. 청춘 시트콤이 신인을 키우기에 유리한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매일 방송한다. 일일 시트콤이라 매일 티브이에 나오고 심지어 주말에는 재미있는 방송분만 모아서 스페셜 재방까지 했다. 아무리 낯선 신인이라도 매일 나오니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가 쉬웠다. 둘째, 연속극이나 미니 시리즈에 출연하면, 연기 잘하는 기성 배우들 틈에서 신인은 미흡해 보인다. 청춘 시트콤에는 신인들만 나오니 비교당하고 기죽을 일이 없다. 군기 잡는 선배도 없고 까칠한 중견 배우도 없으니 기 펴고 마음껏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었다. 셋째, 신인 배우는 누구나 자신감이 부족하다. 촬영하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청춘 시트콤은 장르의 특성상 동원 방청객들의 웃음소리를 넣는데, 이러한 리액션이 방송을 모니터하는 배우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연기하면서 나는 어색했는데, 사람들은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2012년에 나는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파업에 앞장섰다가 징계를 3종 세트로 받았다. 대기발령, 교육발령, 6개월 정직. 7년을 메인 연출을 맡기지 않아 유배지를 떠돌며 드라마 피디로서의 경력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하다 작가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로 했다. 블로그가 곧 청춘 시트콤 같은 작가의 신인 발굴 창구라는 생각에 시작했고, 신인을 키우는 3가지 전략을 나 자신에게 적용해봤다.

첫째, 블로그를 하며 매일 아침마다 독자를 만났다. 영어 공부든, 운동이든, 글쓰기든, 무엇을 잘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매일 연습하는 것.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며 부족한 필력을 갈고닦았다. 둘째,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면 기가 죽는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 따위가 감히 책을 낼 수 있을까? 이럴 땐 시선을 블로그로 돌렸다. 다양한 블로그가 뚜렷한 개성과 다양한 이야기로 인기를 끄는 걸 보고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셋째, 동원 방청객의 과도한 리액션도 신인 연기자에게는 긍정적 피드백이 되는 것을 보고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서 좋은 리액션을 남발했다. 재미난 글을 보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 응원했다. 몇년을 그렇게 했더니 내가 올린 글에도 댓글을 달아주더라.

일을 하다가 힘들 때 3가지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첫째,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매일 해본다. 둘째, 너무 높은 곳을 보는 대신 내 주위를 살피며 용기를 다진다. 셋째, 주변 사람들과 서로 응원을 주고받으며 힘이 되어준다.

이번 생에 잘생김은 과감히 포기했다. 죽었다 깨어도 조인성이 될 수는 없다. 스타 배우가 될 수는 없지만 작가는 꿈꿀 수 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내 글이 실린 신문을 받아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필자 사진이 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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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우성 #시트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