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9년 05월 13일 17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13일 17시 11분 KST

1인 월세 생활자의 대리충족, 온라인 집들이

예쁜 사진을 보는 것으로 대리 충족을 하고 만다.

인테리어 정보를 제공하는 집 꾸미기 관련 애플리케이션들에는 대개 ‘온라인 집들이’ 코너가 따로 있다. 밤마다 누워 다른 사람들의 ‘예쁜 집’ 사진을 구경한다.

잠자리에 누워 아이패드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한번씩 눌러보고, 매일 가는 커뮤니티에 새 글이 올라온 게 없나 확인한다. 밤마다 하는 이 투어에서 꼭 하는 것이 ‘남의 집 구경’이다. 누워서 어떻게 남의 집 구경을 하느냐 하면, 일종의 ‘온라인 집들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테리어 정보를 제공하는 집 꾸미기 관련 애플리케이션들에는 대개 ‘온라인 집들이’ 코너가 따로 있다. 셀프 인테리어로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고친 나의 예쁜 집을 자랑하고 싶어서 직접 자기 집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30~40평 이상의 아파트의 ‘비포&애프터’ 사진을 인테리어 시공업체 쪽에서 올리는 경우도 있다.

누워서 남의 집 구경하기

집이라는, 나의 취향과 취미가 드러나는 내밀한 공간을 돈도 안 받고 선뜻 공개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공들여 이렇게 예쁘게 고쳤다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인테리어 애플리케이션에 올린 셀프 인테리어 사진으로 다른 집 시공을 제안받아 아예 이쪽으로 직업을 바꾸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애플리케이션 사진 속 가구, 소품, 커튼과 러그 등에는 모두 태그가 붙어 있어 손가락을 갖다 대면 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까지 연결된다. 좀 옛날 사람 같은 말이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온라인 집들이는 보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다. 주거 형태나 평수, 예산이나 가족 형태, 세부 공사와 컬러, 스타일 등을 기준으로 선택해서 볼 수 있다. 나는 주로 ‘스타일’로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빈티지&레트로, 한국&아시아 스타일의 집을 구경한다.

사진을 인기순으로 정렬하면 최근 인테리어 유행도 가늠해볼 수 있는데 모던, 미니멀&심플 스타일의 인테리어가 다수를 차지하다가 최근에는 부쩍 레트로와 아시아 스타일의 집들이 사진이 늘어나는 추세다. 플랜테리어(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도 유행이라 원룸은 원룸대로 작은 식물들로, 아파트는 아파트대로 크고 다양한 식물들로 보기 좋게 꾸민 집들도 눈에 자주 띈다.

아마 내가 진짜 이사를 계획하고 있거나 ‘나도 집을 이렇게 꾸며봐야지’라며 인테리어 정보를 얻기 위해 남의 집 사진을 보는 거라면 집들이 카테고리를 주거 형태나 예산, 평수에 맞춰 정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온라인 집들이는 그야말로 ‘구경하기’의 일환이다. ‘나는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것 같지만, 예쁜 집 보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이야’ 하며 낯선 사람이 정성껏 꾸민 세트장 같은 예쁜 집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집 꾸미기 관련 애플리케이션에 있는 ‘집들이’ 코너.

진짜 집들이는 스트레스

물론 나에게도 온라인 집들이가 아니라 진짜 남의 집을 구경할 기회들이 있다. 월세 계약이 끝나 이사갈 때인데, 이때의 집 구경은 주로 나의 예산에 맞춰 진짜 내가 살 집을 보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구경’이 아니라 스트레스다. 게다가 대부분 내 예산에 맞는 집들은 낡거나 좁거나 어두워서 예쁘지도 않다. 혹은 결혼한 친구의 진짜 집들이에 초대받아 가는 경우도 있다.

드디어 내집 마련에 성공한(신발장 빼고 전부 은행 거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친구 부부의 집에 초대받아 간다거나 할 때다. 사회에서 정상 가족이라 일컬어지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하며 열심히 사는 친구의 버젓한 아파트를 구경하는 일은 괜히 내가 집을 산 것처럼 가슴 뻐근한 일이다. 게다가 나는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는 편이라, 내가 그 집 대문을 나설 때면 아이들은 “이모 가지 말고 같이 살자”며 엘리베이터까지 쫓아와 울기도 한다. “이모도 너희 집에 살고 싶어. ○○이 이모 집 갈래? 찍찍 쥐 나오는데…”라고 어린애를 달래면서 얼른 아파트를 빠져나온다.(물론 진짜 쥐 나오는 집에 살진 않습니다.)

화이트·그레이 톤으로 집을 꾸미고, 펜던트 조명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빛이 부엌을 물들이고, 난생처음 주어진 큰돈(결혼자금)을 계획 있게 분산해 멀쩡한 가전제품과 실용적이면서도 그럴싸한 소파와 디자인 식탁으로 집을 꾸민 친구에게는 계속 칭찬을 한다. 부끄럽다는 듯 “비싼 거 아니야. 한꺼번에 사니까 싸게 해줬어”라고 왠지 변명을 하는 친구에게는 “정말 잘 샀다. 10년 20년 쓰면 되지 뭐”라고 부러움의 눈빛과 칭찬을 계속 난사해줘야만 한다. 거기에는 물론 진심도 있고, 내 취향과는 다를지라도 상대가 얼마나 공들여서 발품을 팔아서 이 공간을 꾸몄는지에 대한 공감도 포함되어 있다. 서울에 드디어 자기만의 굳건한 성을 꾸리고 정상 가족을 꾸려서 어버이날에 부모에게 손자와의 영상통화를 시켜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친구는 이미 효녀다.

모던한 친구 집을 나와 ‘레트로를 흉내 냈으나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내 집에 돌아오면 갑자기 현실자각 타임이 온다. 너저분하게 물건은 많고, 저렴한 소품으로 낡은 벽지와 장판을 가리고, 꾸미려고 노력은 했지만 통일이 안 된 나의 집. 중고거래 상가에서 반값에 구매해서 모터 소리가 집을 부술 것 같은 세탁기와, 냉동실이 빈약해 얼음이 얼지 않는 냉장고, 비가 올 때 전원을 켜면 두꺼비집이 나가버리는 에어컨과 함께 혼자 사는 나. 지방에서 함께 상경해 대학을 나왔고, 똑같이 1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했는데 왜 그 친구는 집을 샀고 나는 여전히 지은 지 30년 된 좁은 빌라의 월세 생활자일까, 까지 생각이 번지면 우울해지니 남과의 비교는 하지 않으려 한다.

‘진짜 삶’은 알기 힘들어

1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워진 친구들과 나는 다른 삶을 살며 다른 집에 산다. 우리가 해왔던 다른 선택들이 지금 우리의 삶을 다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제 걱정도 불안도 없겠다”며 나는 결혼한 친구를 부러워하고, 그들은 “자유롭게 여행도 하고 좋겠다”며 나에게서 애써 부러운 점을 찾아내준다. 하지만 바꿔서는 하루도 서로의 삶을 살아낼 수 없을 것이다. 허튼 데 돈 쓰지 않고 저축을 하면서, 귀찮은 모든 과정을 돌파해 결혼식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출산하고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상대의 삶을 나는 상상해본다. 퇴근 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이를 씻고 먹인 후 집을 원래의 상태로 돌리기 위해 청소까지 해야 하는 워킹맘의 고단함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남의 행복을 폄훼하고 ‘그 애도 사실 힘든 게 있을 거’라고 타인의 불행을 가늠해보자는 게 아니다. 그 집에 들어가 잠깐 머무는 것만으로는 거기 사는 사람의 삶을 다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거다.

온라인 집들이에서 진짜 집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멀리도 왔다. 사실 내가 온라인 집들이로 남의 집 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거기에 진짜 삶이 잘 안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많은 짐은 다 어디다 치웠을까. 살다 보면 생기는 너저분한 생활감이 안 보이는 정사각형 사진 속 사진들에는 오직 예쁘고 부러운 것들만 보인다. 그리고 방 두 개 이상의 아파트 시공 사진은 왜 대부분 신혼집인지도 생각해볼 만하다. 앞으로도 핵가족 형태의 정상 가정에 진입할 가능성이 적은 1인 월세 생활자는 오늘도 그냥 타인의 예쁜 집 사진을 보는 것으로 대리 충족을 하고 만다.

글 · 늘그니

*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PRESENTED BY 네스프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