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chul Kim for HuffPost
보이스
2019년 06월 17일 17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6월 22일 11시 28분 KST

한국 게이 합창단이 '커밍아웃을 하면서 무대에 선다는 것'을 말하다

16년차 합창단이자, 인권운동계에서는 10년차 아이돌 지보이스다

   

Manchul Kim for HuffPost

Photo by Manchul Kim

[서울=허프포스트 한국] 점심시간을 약간 넘긴 일요일 낮, 리허설이 시작되기까지 두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 몇몇 단원들이 연습실을 오간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성소수자 합창단, 지보이스(G-Voice)의 일요일 풍경이다.  

지보이스의 연습실은 한국 게이인권단체인친구사이 사무실에 있다. 지보이스는 2003년 친구사이 후원회원들의 소모임으로 시작했다. 친구사이는 1993년 설립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게이 인권운동단체다.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 동성결혼식을 올린 영화감독이자 인권운동가 김조광수도 친구사이의 대표를 지낸 적이 있다.

친구사이 사무실 옆 작은 홀이 일요일에는 지보이스의 연습실이 된다. 지난 4월, 아시아 성소수자 합창 연대‘Proud Voices’ 도쿄 공연을 일주일 앞둔 마지막 리허설날 지보이스 단원 다섯명이 허프포스트와 만났다. 창단멤버이면서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전재우, 2019년 합창단장을 맡은 박의석, 6년차 단원 만루와 오웬, 3년차 단원 야끼만두다.

 

전재우 (창단멤버, 음악감독)

박의석 (단장, 베이스 싱어)

야끼만두 (홍보 담당, 바리톤 싱어)

오웬 (베이스 싱어)

만루 (베이스 싱어)

 

창단멤버 전재우씨는 “이렇게 오래하게 될 줄 몰랐다”며 초기를 회상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합창단을 하기로 정했어요. 노래는 누구나 다 좋아하는 거고, 가장 쉽게 사람들에게 감동도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단장 박의석씨는 대학교 신입생이던 10년 전 처음 지보이스의 공연을 봤다.

“그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흔히 ‘이쪽 친구들’이라고 하는 성소수자 친구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보이스 공연을 보고 나서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나도 저 일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의석씨와 달리 활동 3년차인 야끼만두는 이전에도 ‘이쪽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교에서 성소수자 모임을 했었는데, 졸업 후에도 뭔가 하고 싶어서 게이 모임 두 곳에 나가봤어요. 그런데 둘 중에 지보이스에 남았어요.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는데다, 사회적으로 공헌이 되는 활동을 할 수 있어서요. 지보이스는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계속 알리는 활동을 하는 거거든요.”

“사실 우리가 노래를 선택했다기보다는 노래가 우릴 선택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특히 합창이라는 건 나 혼자 노래를 잘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를 맞추고 화음을 만들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잖아요.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도, 연습을 하는 과정도 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재우씨의 말이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사랑 또 사랑이었네”

 

지보이스의 공연 셋리스트 대부분은 자작곡들이다.

재우씨는 “처음에는 기성곡들을 부르다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르면 정말 좋겠다 싶어서 곡 쓰기를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술자리에서 대화하다가 메모한 말들, 소셜미디어에 올린 일기 같은 쪽글, 아니면 각자가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둔 말들이 노랫말이 되고 무대에 올랐다.

“다른 아마추어 합창단들하고 가장 다른 점이 이 부분 같아요. 물론 프로 작곡가들처럼 완성도가 뛰어난 곡을 만든다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직접 만든 노래라서 굉장히 진심을 담아서 부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고백’이라는 노래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내용인 것 같아서 저는 그 노래 가사가 참 좋아요.”

의석씨는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를 가장 가사가 좋은 노래로 꼽았다.

“제가 처음 들어온 해에 공연에서 부른 노래인데, 힘든 시기에 그 노래 부르면서 힘이 많이 났어요.”

 

어떻게 말할까요? 아침에 말할까요. 저녁에 말할까요. 편지로 말할까요.

밥 먹다 말할까요. 큰소리로 말할까요. 눈물로 말할까요. 속으로만 말할까요.

….

사랑을 가슴에 묻고 사는 건 너무 쓸쓸해. 차라리 눈코입처럼 보이면 좋겠네.

여기서 말해도 돼. 웃으며 말해도 돼. 솔직히 말해도 돼. 눈치 볼 필요 없어.

-‘고백’ 가사 중에서

 

세상을 향해서 눈 흘겨본다면 단 한 번만 불러 세워서 비웃는다면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사랑, 또 사랑이었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가사 중에서

 

일요일 오후 4시의 의미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유명인이 손에 꼽힐 정도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한국에서, 지보이스와 같은 ‘가시적’인 커뮤니티가 구성원들의 삶에서 갖는 의미는 더 크다.

“대학교에서 연극반을 해서 무대에 서는 건 무섭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보이스는 커밍아웃을 하면서 무대에 서는 거잖아요. 그게 좀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의석씨의 말이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모인다. 예정된 공연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다. 활동한 6년 동안 가장 높은 출석률을 기록했다고 자랑하는 단원 오웬은 지보이스가 자신의 삶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저는 지보이스로 처음 게이 커뮤니티에 나왔어요. 저희들 말로 ‘데뷔’라고 하는데요. 만약에 지보이스에 나오지 않았으면 지금의 오웬은 없을 거예요. 지보이스에 나오면서 ‘아, 나도 행복해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한테 일요일 오후는 한 주에 한 번씩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같은 시간? 그래서 끊을 수 없이 계속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또다른 6년차 단원 만루 역시 ”휴가 같은 시간”이라며 “일주일 동안 일하다가 가장 친한 친구들과 만나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석씨는 ”우리만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점에서 매주 교회에 나가는 것과도 비슷한 경험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커밍아웃을 한다는 것

 

“저는 26살에 했어요. 사실 계획에 없었어요. 평생 얘기 안 하려고 했거든요. 일기장에 ‘지보이스’라는 단어를 어머니가 보셨는데, 그때는 그냥 ‘얘가 요새 빠져있는 게 이건가보다’ 정도로만 생각하신 거 같아요. 그러다 몇 달 지나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는데 “한국 유일의 게이 코러스”라는 소개가 나온 거죠.

그날 낮에 카카오톡으로 “너 요즘 하고 있는 합창단이 뭐라 그랬지?”하고 계속 물어보시는 거예요. ”수도권 대학생 연합 미러볼 합창단”이라고 그냥 떠오르는 단어들을 막 조합해서 아무거나 둘러댔어요.

퇴근 때 부모님이 절 만나러 직장으로 오셨어요. 그렇게 다정하신 분들이 아닌데 두 분이 같이 직장까지 오신 게 너무 이상한 거예요. 셋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울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예감은 했죠. 저녁이 돼서 아버지 입에서 ‘게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는 ‘올게 왔구나’ 싶었어요. 그 단어를 듣자마자 바로 울었던 기억이 나요.

보통 그렇게 부모님이 먼저 아시게 되면 병원 치료를 권유하시거나, 그렇진 않아도 부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맙게도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어요. “너한테 가장 먼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라고. 게이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말할 이야기가 더 많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잘 할 수 있었던 거 같고요. 사실 지금도 계속 커밍아웃을 해나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도 이제 고작 5년 정도 된 거라, 제가 계속 뭔가 보여드리고 함께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루의 이야기

 

“한국에서 커밍아웃한다는 건 개인마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클 거예요. 제 경우에는 지금은 친구나, 주변 사람들한테 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래도 아직 가족한테는 커밍아웃을 못하겠어요. 유독 가족에게는 벽이 쳐져 있는 느낌? 아직은 뭔가 두렵고, 아직은 가족이 알면 안 될 거 같고, 부모님이 상처받을 것도 걱정이 되고 해서 그건 좀 꺼려하고 있어요. 많이들 그럴 거 같은데... 그래서 만루처럼 부모님한테 커밍아웃한 친구가 있으면 대단해보이죠.” -오웬의 이야기

 

인권운동계의 십년차 아이돌

 

게이인권운동단체에서 시작한 지보이스가 다른 인권단체의 집회에 참가해 지지 공연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보이스의 공연 경력이 쌓이고, 한국의 집회 분위기도 무거운 쪽에서 밝은 분위기로 바뀌어가면서 이들의 활동 무대도 넓어졌다. ‘인권운동계의 아이돌’이라는 다소 본격적인 별명도 생겼다.

“2011년,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지보이스를 아시는 분이 와서 연말 문화제에 와서 노래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어요. 눈 맞으면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인권운동가 박래군 선생님이 ‘인권운동계의 아이돌 지보이스를 소개합니다’라고 처음 말하셨어요. 그 말 듣고 화들짝 놀랐는데 다행히 많이 환영해주시더라고요. 집회에서 처음 공연한 건 아니었는데, 그 이후로 ‘우리가 그런 곳에서 공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자신감을 갖고 더 많이 공연을 다니게 된 것 같아요. ‘인권운동계의 아이돌’ 저는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해요. 재우씨가 웃으며 말했다.

10년 동안 활동해온 의석씨는 지보이스 합창단 활동을 하며 “더 큰 커뮤니티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연대한다’는 걸 도와주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공연을 계속 다니다보니까 결국 이건 내가 남을 돕는 게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것 같아요. 우리가 저쪽에 힘을 실어주고, 저쪽은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런 것들이 오가면서 더 큰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한 예로 가장 최근에 저희가 컬래버레이션 공연을 했던장애여성공감과는 오랫동안 이것저것 같이 하면서 개인적인 친분까지 생긴 경우예요. 차별금지법 같은 제도적인 의제를 가지고 함께 해야할 실질적인 필요성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안은 2007년 처음 제시되었지만 아직까지 입법 절차를 밟지 못 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는 장애여성공감을 포함해 노동자단체, 여성단체, 이주민단체 등 소수자 인권 관련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보이스의 연습실이 있는 친구사이 사무실에도 ‘낙태죄 위헌’ 등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여성 이슈 구호를 담은 플래카드가 곳곳에 눈에 띈다.

“성소수자이면서 노동자일 수 있고, 성소수자이면서 장애인일 수 있고, 성소수자이면서 여성일 수 있는 거잖아요.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랑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는 맞닿아있고,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반대 집단들이 공동의 적이다보니 뭉치는 그런 부분도 좀 있고요.” 재우씨가 이어 말했다.

 

‘Hand in hand’

 

일요일 오후 4시, 단원들이 모여 노래를 시작했다. 일주일 후로 다가온(4월 14일) 일본 도쿄 공연을 위해서다. 2015년 대만 타이페이에서 1회가 열렸던‘Hand In Hand’은 아시아 지역 성소수자 합창단들이 모이는 합창 페스티벌이다. 2회는 2017년 서울에서 열렸고, 이번 도쿄 공연이 세 번째다. 3회에는 한국, 일본, 중국,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을 비롯해 미국과 호주, 유럽 지역의 팀까지 게스트로 참여했다.

“아시아 지역이 성소수자 혐오가 강하기도 하고, 또 사회가 더 급격하게 변하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서로 각 지역의 상황을 공유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권운동, 또는 문화운동을 즐겁게 해나갈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거죠.” 의석씨의 말이다.

지보이스는 지난 3월, 창단 16년만에 처음으로 디지털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음원 수익금은 친구사이 후원금으로 쓴다. ‘고백’, ‘엄마 아빠가 변했어요’, ‘벽장 문을 열어’ 등 9곡이 실렸다는 새 앨범에 대해 오웬은 이렇게 소개했다.

“저희 노래 들어보시면 게이가 아니어도 공감된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으실 거예요. 같은 사람이잖아요.”

 

*허프포스트코리아가 허프 국제 에디션들과 함께 진행한 프라이드의 달 프로젝트 ‘프라이드를 외치다 Proud Out Loud’의 마지막이자 아홉 번째, 한국편 인터뷰입니다. 다른 인터뷰들은 여기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