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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는 광주를 생각한다

역사는 단순히 기념비를 세우는 식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삼월은 절기상으로는 봄이지만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봄을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사월이면 좀 더 봄에 가까워지긴 하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서늘하다. 오월이 되면 비로소 봄을 실감할 수 있다. 추위는 아주 물러가고 더위는 아직 오지 않은, 적어도 기후만으로는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을 것 같은 달이 오월이다. 그런 오월이 돌아올 때마다 광주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어딘지 침통하기까지 하다. 계절의 완연함은 광주의 참상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봄의 절정인 오월을 나는 것이 광주의 비극을 생각하는 것이 되어버린 역사의 기막힌 조화를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는 역사적 사료나 예술적 재현물로 접하는 광주보다 개인적으로 겪은 광주의 면면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광주에 대한 역사적 사실 자체에도 무심했던 시절, 자신이 광주시민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는 친구를 내심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자부심을 비칠 때만큼은 전혀 다른 관습과 문화를 가진 이방인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시간이 지나고 광주가 시댁이 되면서 광주에 대한 실감은 좀 더 가까워졌다.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관통한 이들의 고통에는 결코 비할 수 없겠지만, 밖에서 총 쏘는 소리를 들었다든가, 몇날며칠을 온 가족이 다락방에서 지내야 했다는 등의 기억을 남편이 들려줄 때면 간담이 서늘하곤 했다. 한동안은 남편을 통해서나마 나와 광주 사이의 접점을 갖게 된 것에 안도감이나 우월감 비슷한 것을 갖기도 했다.

이 또한 직접 방문한 광주의 모습에 비하면 추상적일 따름이다. 인구수가 140만명이 넘는 도시답게 활기가 넘치는 와중에도 묘하게 쇠락의 기운이 공존하는 광주의 풍광이야말로 가장 구체적인 역사의 상처로 다가온다. 도청 소재지 부근이 오월에 대한 기념비적인 공간으로 자리하고는 있지만 사람들이 일상을 나누는 곳들은 대체로 소박하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자본은 서울 중심으로 흘러가고, 최근에는 초국적 자본에 시내 상권을 내주기도 하는 모습이다. 도심의 짓눌린 경제 생태는 국가기구가 자신의 정통성을 거짓으로 확립하기 위해 광주를 철저히 내부 식민지로 삼아왔음을 그 무엇보다 생생하게 증언한다.

김상봉 교수는 <철학의 헌정>에서 5·18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사유한다. 그에 따르면 단순히 기념비를 세우는 식으로 역사는 기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기억은 “물질성 속에 사로잡힌 기억”, 즉 역사를 박제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실현한 인격적 주체와의 만남”이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광주라는 도시는 그 자체로 5·18을 기억하는 인격적 주체로 다가온다. 이념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희생당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광주시민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도, 광주에 대한 왜곡된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도 공존하는 도시.

오월에는 광주를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으로 충분하다 할 수 있는가. 오월에 광주를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한 때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시민을 무참히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 자신을 ‘셀프’로 용서하고 천수를 누리는 사람들과, 끔찍한 피해를 입고도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여전히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역사의 증거인가. 그러고 보면 5·18의 참상이 더욱 비극적이 되는 것이 계절의 완연함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 한겨레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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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민주화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