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19년 05월 12일 16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5월 12일 17시 07분 KST

홍영표는 선거제 개편안으로는 민주당 과반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선거제 개편을 해야 하는 이유

한겨레
“무슨 말을 해도 야당에서 잘 안 믿어주던데 저는 18대 국회 들어와서부터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선거법 등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홍영표 의원이 원내대표 임기를 마치기 하루 전인 지난 7일 오후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홍영표(62·인천 부평을) 의원은 원칙을 중시하는 강성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으로 가는 길에서는 그의 융통성이 빛났다. 청와대 누리집에서 그에 대한 연임 청원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그의 역할이 컸다. 임기 종료 하루 전인 지난 7일 오후 국회 민주당 원내대표실에서 그를 만나봤다.

한 지역구에서 최다 득표자 한 명을 의원으로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 위주의 선거법은 1당과 2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1, 2당은 득표율보다 항상 더 많은 의석을 가져간다. 이에 비해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제는 거대정당의 의석이 그만큼 줄어든다. 자유한국당이 결사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말 연동형 비례제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자기희생이 필요한 거대정당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다.

 

-지금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법대로 하면 민주당도 손해인데.

“지금 안대로 총선을 치르면 단독 과반수는 아예 불가능하다. 총 300석 중에서 잘하면 135석 정도를 얻을 거라고 본다. 어느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열심히 노력해서 총선에서 과반수 승리를 하려고 생각하지, 애초부터 과반수 되기가 어려운 제도를 선택하겠나.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결심하신 것이고, 우리 당은 20년 동안의 주장을 실천에 옮긴 거다.”

 

-대통령의 지지도 중요하겠지만, 원내대표가 소극적이면 안 될 텐데 본인의 소신도 작용했나?

“그렇다. 지금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사표가 너무 많이 발생하고, 국민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국회가 대변하지 못한다. 이런 선거구제로는 지금 보듯이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양당) 체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는 구조적으로 대화와 타협보다는 갈등과 대립의 정치로 이어지기 쉽다. 저는 18대 국회에 들어와서부터 이런 생각을 해왔다.”

지난 2017년 연말 ‘민심그대로 정치개혁연대’(민심연대)라는 국회의원 공부 모임이 발족했다.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추진하자는 모임으로, 자유한국당도 포함한 5개 정당 20여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이번에 선거법 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의원들이 다 들어 있다. 홍영표는 ‘민심연대’의 발기인이자 공동간사 4명(민주당 홍영표, 국민의당 김성식, 바른정당 김세연, 정의당 심상정)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여당 원내대표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심상정)이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셈이다. 통상 재선 의원이 맡는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위 간사에 초선 의원인 이철희, 김종민을 각각 임명한 것도 그였다. 둘 다 선거법 등 정치개혁에 대한 확고한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한겨레
선거법 패스트트랙 성공의 두 주역인 홍영표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심상정 국회 정개특위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래 전부터 호흡을 맞춰왔다. 사진은 지난 1월31일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나 선거법 협상 시한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는 여야 3당 원내대표와 정개특위위원장.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정개특위위원장,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김경호 선임기자

 

-돌이켜보면 고비도 많았는데.

“그렇다. 첫째 고비는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대상 문제였다. 사실 선거법 개정은 집권 여당으로서는 엄청나게 양보한 것이기에 우리 내부에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뿐 아니라 국정원법, 국회선진화법, 심지어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까지 다 묶어서 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바른미래당에서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둘 외에는 못 하겠다고 했다. 우리 당에서는 선거법을 그렇게 양보하는데 그런 것도 포함 못 시키느냐는 불만이 나왔다. 특히 국정원법이 걸림돌이었다. 우리 정부 들어 국내 사찰이나 정치 개입 등을 못 하도록 관련 부서 자체를 없애는 등의 국정원 개혁을 많이 했지만, 제도적 완성은 법을 고쳐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국정원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 꼭 넣어서 처리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저도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때가 기로였다. 공수처법이나 수사권 조정 등의 개혁 과제를 내년 총선에서 이긴 뒤에 하겠다고 협상을 깰 수도 있었지만, 결단을 내렸다.”

 

-공수처의 기소권 분리 때도 내부 논란이 있었지 않나.

“공수처에 수사권만 주고 기소권을 주지 않으면 예전에 있었던 경찰의 사직동팀과 뭐가 다르냐며 기소권을 다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저는 일부 기소권을 제한하는 정도는 수용할 수 있다고 봤다. 공수처 수사 대상이 전체 7천명 정도인데 5천명에 대해서는 기소권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우리가 받았기에 바른미래당 의총에서 패스트트랙 합의안에 대해서 12 대 11로 한 표 차이로 겨우 통과됐다. 그런 결과가 나온 뒤에 김관영 바른미래당 대표도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그때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바른미래당에서 찬반이 뒤집혔을 것이고, 그러면 패스트트랙은 무산됐을 것이다.”

 

-세간에 원칙주의자이고 강성이라는 평이 많았는데 이번에 보면 융통성을 많이 발휘한 것 같다.

“이번에도 우리 당에서 굉장히 논란 있었지만, 저는 선거법 등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올리는 것은 역사적으로 또 정치사적 의미가 대단히 크다고 봤다. 한국 정치의 개혁 과제를 한걸음 진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이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대처했다.”

홍영표는 지난달 22일 여야 4당 원내대표 간에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 합의한 뒤 연 민주당 의총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원안에 집착하다가 기회를 날려버린 국가보안법 개정 실패의 전례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 오롯이 우리 당의 원안을 관철하지 못해 송구하지만, 많은 사람이 무엇보다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줬다.”

 

-여당 원내대표와 정개특위 위원장 등 주요 추진 인물들이 다 바뀌면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나.

“이제부터 본격 협상이 시작된다. 패스트트랙에 대해서는 국민 열 명 중 여섯 명이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이것을 무시할 수 없다. 사표를 방지하고 비례성을 강화하는 원칙과 큰 골격을 지키면서 여야가 합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지금 올라가 있는 안은 지역구 의석이 현행 253석에서 225석으로 28개가 줄어들게 돼 있다.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또 반발을 떠나 우리나라 인구수 등을 고려할 때 의석수를 더 늘려서 지역구를 줄이지 말고 비례대표를 확대하자는 의견이 야당과 학계 등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나.

“협상 과정에서 야당, 특히 정의당 등에서 의석 확대를 많이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쉽게 수용하지 못했던 것은 먼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역구 225석 대 비례 75석은 지금 단계에서 우리 당론이며, 따라서 제가 쉽게 바꿔서 대답할 수는 없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생각하면 의석을 늘리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도 검찰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는데.

“수사권 조정은 검찰 권한을 엄청나게 뺏어서 경찰에게 주는 게 아니라 상명하복 관계에 있던 두 기관을 협력관계로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검찰은 여전히 주요 사건에 대한 수사권 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렇게 논란이 된 것은 막바지에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검찰의 주장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던 데서 비롯됐다.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한 문제인데 전체 합의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저희가 받았지만, 앞으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조정 가능하다고 본다.”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 후폭풍으로 내분을 겪고 있는데 당이 깨지거나 하면 합의사항이 지켜지기 어렵지 않나.

“바른미래당의 상황이 우려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안건과는 별 관계가 없다. 신속처리 안건은 처음에 상임위나 특위에서 지정할 때 의결 정족수가 3/5이지만, 그 이후에는 과반수로 결정된다. 저는 과반수 확보는 될 거라고 본다.”

대학(동국대 철학과·1977년 입학) 때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홍영표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 본격적인 사회변혁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1983년 용접공으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그는 중공업 분야 대기업으로서는 사상 처음이었던 1985년 4월 대우자동차 파업을 이끌었다. 이후 대기업노동조합연대회의 사무처장과 한국노동운동연구소장 등 노동운동가로 활약했다. 이때 학생 출신으로 인천에서 활동하던 노동운동가 부인(임영희·58)을 만났다. 노동운동으로 세 차례나 감옥에 갔던 홍영표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복직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바뀌었다. 1995년 그는 노사 합의로 대우자동차 사무직으로 복직해, 2001년까지 대우자동차 영국 판매법인에서 자동차 판매원으로 일했다. 귀국한 이듬해 그는 유시민과 함께 개혁국민정당(개혁당)을 만들었으며,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2004년 이해찬 총리 시절 국무총리실 시민사회비서관을 거쳐 2009년 보궐선거(인천 부평을)를 통해 국회에 들어왔다.

 

-노동운동가 출신인데 노동계와는 친하지 않은 것 같다.

“20대 국회 초반에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할 때부터 최저임금 산입문제나 탄력근로제 문제 등으로 인해 노동계에서 나를 많이 비판했다. 하지만 노동계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고 민주노총이 주로 그랬다. 원내대표 하는 동안에 민주노총 방문하겠다고 4번 정도 제안했는데 거기에서 오지 말라고 해서 못 가기도 했다.”

 

-노동계에서는 홍 원내대표가 기업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는 것 아니냐.

“그건 말도 안 된다. 지금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우리 경제나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체인데 그들을 무시하고 민주노총하고만 손잡고 일해야 한다는 식은 시대착오적인 거 아니냐. 사실 이 정부 들어와서 우리가 노동계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나. 최저임금 인상이라든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등 때문에 이 정권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나. 그런 평가는 하나도 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가 똑같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그런 시각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한겨레
홍영표 민주당 전 원내대표가 지난 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닭 그림을 가리키며 선거법 등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올린 과정 등을 밝히고 있다. 그림을 취미로 하고 있는 그의 딸이 꽉 막힌 정국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닭띠해인 아버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원내대표를 마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뭔가?

“유치원 3법을 처리하지 못한 것이다. 학부모와 국민의 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패스트트랙에 올렸을 뿐이다. 지난 9월에 일을 시작했어야 할 5·18진상조사위를 사실상 자유한국당의 사보타주 때문에 출범시키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초당적 협력으로 국회가 뒷받침해야 하는 남북간 평화와 비핵화 문제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해 아쉽다.”

 

-개혁당 때부터 따지면 정치권에 입문한 지도 17년이 됐다.

“의원을 하다 보니까 좀 더 국정이나 국가 전체의 미래나 비전에 대해 균형 있게 보게 되는 것 같다. 정치인으로서는 뭔가 열매를 맺는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많이 들고, 어떤 일을 시작하면 결말을 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는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그런 것은 없다. 원내대표를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좀 쉬는 게 꿈이다.(웃음)”

 

홍영표는 지난 7일 오전 원내대표 고별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제안했다. 공교롭게 그날 저녁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냈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가 뒤숭숭하긴 하지만, 우리 정부와 미국 태도로 볼 때 조만간 식량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홍영표의 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치인으로서 그의 시선이 한 차원 높아진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