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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는 음악을 계속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당연한 말

  • 오은
  • 입력 2019.05.12 16:15
3집 앨범 발표를 앞두고 지난 2일 <한겨레>와 만난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멤버들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지, 덕원, 잔디, 향기. 강재훈 선임기자<a href='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3489.html?_fr=mt2#csidx95ab249dd03c65bb184aaf83176de29'></div></a>
3집 앨범 발표를 앞두고 지난 2일 <한겨레>와 만난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멤버들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류지, 덕원, 잔디, 향기. 강재훈 선임기자 ⓒ한겨레

청춘에 대해 생각한다. 국어사전에는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가능성이 많다고 여겨지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최대한 감춰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할 말들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시기, 언젠가 그것들을 꺼내 하나하나 어루만져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기.

청춘의 시기에 몸담고 있을 때, ‘나는 지금 청춘이야!’라고 깨닫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를 무사히 지났다고 해도 취업과 결혼이라는 커다란 미션이 줄줄이 나타난다. 하나의 미션이 달성되면 기다렸다는 듯 다음 미션이 눈앞에 등장한다. 마음을 돌볼 시간도, 그것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다.

청춘이 끝날 때쯤 우리는 문득 청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느낀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른이 되는 일이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청춘이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고 도리질하기도 한다. 봄철이 점점 짧아지는 것처럼, 성장에는 으레 성장통이 따르는 것처럼, 청춘은 짧고 뼈아프다. 그러나 눈이 부셨던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내 표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오늘은 물론 내일도 살아야 한다. 살아나가야 한다.

브로콜리너마저는 지난 12년 동안 청춘과 삶, 청춘의 삶에 대해 노래해왔다. 덕원(38·보컬·베이스), 잔디(37·건반), 향기(35·기타), 류지(35·보컬·드럼)로 구성된 4인조 인디밴드로, 여성 멤버(3명)의 수가 남성(1명)보다 많은 몇 안 되는 밴드이기도 하다. 2007년에 싱글판(EP) <앵콜 요청 금지>를, 2008년에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인디밴드’로 출발했지만 1집 <보편적인 노래>는 별다른 홍보와 활동 없이 이례적으로 4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렸다. 브로콜리너마저에 열광한 이들 또한 다름 아닌 청춘이었다.

1집에 수록된 ‘보편적인 노래’와 2집에 수록된 ‘졸업’으로 2010년과 2011년 2년 연속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상을 수상했다. 2집이 나온 지 어느덧 9년이 흘렀다. 3집 <속물들> 발매를 며칠 앞둔 지난 2일, 청춘의 마음으로 홍대 부근에서 그들을 만났다. 빽빽한 시간을 비집고 새싹처럼 돋아나는 것이 있었다. 진심과 웃음이었다.

 

―코너 제목이 ‘요즘은’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향기 “요즘은 되게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엊그제는 3집 타이틀곡 뮤직비디오 촬영을 했어요. 주말에는 지방 클럽 투어를 다니고요. 사이사이, 3집 발매 기념 공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덕원 “최근에는 유튜브를 시작해서 ’류지의 혼자 사는 브이로그(비디오+블로그)의 촬영과 편집을 담당하고 있어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 같아요.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배우는 것처럼 어느 순간 이런 작업이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이 올 것 같아요. 계속해서 배워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엔 막막하기만 했는데 인이 박이기 시작하니 재밌어지기도 했고요.”

 

브로콜리너마저는 요즘 전국 클럽을 돌며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0일과 21일 부산 공연을 시작으로, 27일 광주, 지난 4일과 11일 대구, 대전에서 공연을 치렀다. 오는 17일 예정된 3집 <속물들>의 발매에 앞서 ‘혼자 살아요’와 ‘서른’ 등 두 곡을 4월 말에 선공개했다.

 

―선공개 곡들에 대한 반응이 기대했던 것만큼 뜨겁나요?

덕원 “대중가요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천편일률적인 면이 있잖아요. 곡을 쓰면서도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재밌게 표현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이게 과연 적당한 걸까 걱정했거든요. 처음에 음악 시작할 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발해지기 전이었으니까요. 곡의 메시지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든 재밌을 만한 요소들을 시도했는데 확실히 다양한 반응이 나왔어요.”

 

―혹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류지 “‘혼자 살아요’ 뮤직비디오를 보고 밝고 유쾌하고 귀엽다는 반응을 예상했는데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만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말은 요새 칭찬할 때 쓰는 말이죠. 작정하고 만든 것 같다는 얘기와도 같고요.

잔디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 너무 귀엽다는 반응도 기억에 남아요. 요새 일과 중 하나가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들을 읽는 거예요. ‘서른’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들을 읽으면서 혼자 울컥하고 그랬어요.”

 

‘서른’의 뮤직비디오에는 사회초년생이 등장한다. 상사의 희롱과 과도한 업무 지시에 힘들어하는 서른, 어떤 것을 막 시작해서 아직은 서툴기만 한 서른,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서 일상의 설움을 견뎌내는 서른,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내일을 생각하며 피식 웃기도 하는 서른. ‘서른’은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면/ 그건 참 유감이네/ 그동안은 아직 나는/ 행복하지 않았거든.” 서른도, 어른도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멤버 모두 30대이시네요. 본인의 서른을 돌이켜보면 어때요? 20대랑 비교해서 달라진 게 있을까요?

향기 “서른을 기점으로 명확하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몸을 잘 사리게 된 것 같아요. 20대 때는 일단 막 달리잖아요. 그러다 번아웃이 찾아와 뻗어버리곤 했죠. 피곤한 상황은 똑같이 오지만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금 더 잘 익히게 된 거 같아요.”

류지 “저도 비슷해요. 나를 돌보는 방법을 더 잘 알게 된 거 같아요. 여러 가지 운동을 계속해오면서 몸 컨디션을 관리하고 먹는 것도 더 잘 챙겨 먹으려고 해요.”

 

―서른 전후, 2집과 3집 사이, 잔디씨와 덕원씨는 결혼도 했잖아요?

잔디 “맞아요. 엄마가 된 시점도 서른이었어요. 예전에는 제 한 몸만 어떻게든 건사하면 되었는데 변화가 생긴 거죠. 2014년에 결혼해서 현재 6살 남자아이와 4살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감당해야 하는 게 늘어나면서 주위의 눈치를 살피게 된 것 같아요. 일과 육아를 자연스럽게 해내고 싶었거든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쉬운 일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야 아이들이 일하는 데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일하는 다른 엄마들도 많이들 그렇게 느낄 거예요.”

덕원 “2011년에 결혼해서 7살 남자아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아이가 생기고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지요.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마음과 결합되어 음악이 만들어졌지요. ‘이제는 어른이 되어야겠구나’, ‘이렇게 어른이 되는구나’라는 말이 ‘어른이 되었다’와 ‘어른이 되겠다’의 상태로 바뀌었죠. 어린아이가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게 되면 ‘다 컸네’라고 얘기하지만 다른 부분은 아직 아이잖아요. 반면 저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되었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느껴요.”

―서른을 기점으로 빼도 박도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덕원 “어른 되기를 유예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어른으로서 자각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거죠. 실제로 결혼을 하고 2013년에 아이가 태어난 후, 시간을 배분할 때 우선순위가 많이 달라졌어요. 일단 아이랑 어린이집 출퇴근을 같이하고 있어요. 어린이집 행사도 챙기고 아이와 최대한 시간을 보내려고 애써요.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잔디 “요새 ‘워아밸’이라는 말도 생겼어요. 육아의 ‘아’를 딴 셈이죠. 제가 주 양육자라 그 말에 더욱 공감이 됐지요. 아이가 두명이라 시간을 배분하는 게 항상 큰일이에요.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일하러 나갈 수 없으니까요.”

그들은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생활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마치 일이 생활을 잠식하는 순간, 음악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같았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난 십여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브로콜리너마저’라는 밴드 이름이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의미 없는 여러 단어를 나열하다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해왔다는 사실은 어떤 필연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공연을 함께할 수는 있어도 우연히 공연을 ‘오랫동안’ 함께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거기에는 음악에 대한 신념과 열정 말고도 다른 중요한 것이 또 있었다.

 

―함께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네명이 서로를 잘 알게 됐을 텐데.

4명 일동 “(입을 모아) 잘 알까요, 과연?”

덕원 “우리는 완벽하게 일할 때만 만나요. 시작하기 전과 끝나고 밥 먹는 거 빼곤 일만 하고 헤어집니다. 우리끼리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거죠.”

류지 “따로 약속을 잡아서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런 태도가 밴드 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보시는 거예요?

향기 “워낙 많이 만나거든요. 따로 시간을 잡아서 또 만나는 건 과부하죠.”

류지 “합주나 공연 때문에 일주일에 4~5회 이상 만나게 돼요. 며칠 전에도 뮤직비디오 찍는다고 20시간 이상 같이 있었고요.”

잔디 “저와 덕원은 오전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운동을 한 뒤 출근해요. 류지와 향기는 오후에 운동을 하고 오고요.”

 

―공연을 위해서 몸 관리가 정말 중요한가 보네요.

향기 “사실 공연하는 기간을 위해서라기보다 공연이 끝나고 난 다음을 위해서 몸 관리를 해야 돼요. 무대에 올라가면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어떻게든 연주하게 되거든요. 리허설 때 기운이 없다가도 무대에서는 안간힘으로 버티는 거죠.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에 불어닥치는 후폭풍이 무시무시하죠.”

 

지난 2일 <한겨레>와 만난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왼쪽부터 덕원, 류지, 잔디, 향기. 강재훈 선임기자
지난 2일 <한겨레>와 만난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왼쪽부터 덕원, 류지, 잔디, 향기. 강재훈 선임기자 ⓒ한겨레

 

―10년 정도 매년 공연을 했는데 오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나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류지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는데, 지금 대학생이 됐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신기해요.”

잔디 “‘중학생 때 미술선생님이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틀어줬어요. 그때는 밴드 이름이 재밌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제가 스물이 넘고 음악을 지금 다시 들으니까 너무 와닿아요. 그때 미술선생님이 생각나요’라는 댓글을 봤는데 정말 감동이었어요.”

류지 “자신이 대학 졸업할 때 ‘졸업’을 들었는데, 서른이 돼서 ‘서른’을 듣는다는 분도 계셨죠.”

잔디 “제가 댓글 보면서 괜히 울컥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하나하나가 너무 절절해서.”

 

―처음에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덕원 “처음 기타를 쳐본 건 중학생 때예요. 고등학교 때 밴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 하는지 몰랐거든요. 대학 입학 후 동아리에 들어갔지요. 공연을 하고 곡도 쓰기 시작했고요. 제대하고 나서 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함께하자고 처음으로 제가 손 내민 사람이 잔디예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잔디가 음악적인 역량이 굉장히 뛰어나다는 걸 알았거든요. 제가 이상한 걸 막 만들어내면 이 친구가 그걸 가지고 이것저것 밀어붙이는 일을 했죠. 다른 멤버는 조금씩 변하다가 2006년부터 류지, 향기와 함께했죠.”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나요?

덕원 “첫 앨범을 발매하던 해인 2008년까지 음반사에 다니고 있었어요. 직장에 따라 밴드 활동을 허락하는 데가 있고 엄격하게 제한하는 데가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후자였어요. 마침 앨범 녹음을 결정한 시점이라서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 그 당시에 음악으로 이미 약간의 수익이 발생한 상황이었거든요.”

 

―1집이 나오기도 전에요?

덕원 “1집을 내기 전에 발매한 <앵콜 요청 금지>라는 이피가 반응이 있었던 거죠. 운이 좋았어요. 저희는 거의 초창기부터 수익을 내며 시작한 밴드라서 이걸 바탕으로 키워볼 수 있겠다, 스물일곱이면 한창 젊은 나이니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죠.”

잔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2년 넘게 일하던 중이었어요. 3교대로 일하는 와중에 앨범도 준비했었죠. 1집까지는 병행하며 어찌어찌 냈지만 계속 유지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죠. 밴드에서도 어느 정도 비전이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가차 없이 그만뒀습니다.”

덕원 “1집을 전후로 해서 전업 뮤지션이 된 거죠.”

향기 “저희는 처음부터 전업이었어요.”

류지 “맞아요. 스물두살 때부터 했으니까요.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 돈까지 가져다주니 신기했어요.”

 

―밴드를 함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 있었을까요?

향기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 프로 뮤지션으로 일하기에 역량이 부족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실력인데도 나와 같이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는데 흔쾌히 좋다는 얘길 듣고 고맙기만 했지요. 그 고마움은 음악을 하는 즐거움이 되었죠.”

 

―진로를 고민할 틈도 없이 결정된 거네요?

향기 “그때는 음악이 이렇게 큰일이 될 줄 상상을 못했어요. 기타 한 대 메고 연습실에 갔다가 뒤풀이까지 함께한 신비로운(?) 경험을 했죠.”

류지 “저는 멤버 중 유일하게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어요. 드럼으로 실용음악과에 진학했거든요. 브로콜리너마저 멤버들이 한번 만나자고 해서 갔는데 만나자마자 드럼을 쳐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일종의 오디션이었던 셈이죠.”

―당시에는 다들 20대였잖아요. 그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게 있다면요?

덕원 “처음에 두려움이 컸어요. 당시에는 음악적 역량도 부족하고 동호인 수준에서 그냥저냥 하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늘 불안했죠. 10년을 넘게 하니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물론 스스로를 대단히 뛰어난 음악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일을 10년간 꾸준히 해왔다면 실력이 늘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결과를 확인하니 적어도 내가 좀 더 단단해졌다고 느껴요.”

향기 “처음에 정말이지 겁 없이 했어요. 지금도 무대에 오르는 게 떨리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멋모르고 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듣는 귀가 좋아졌죠. 좋은 소리와 더 좋은 소리를 판단할 수 있게 되었죠.”

류지 “공연할 때 떨리던 게 확실히 줄어들었어요. 생각해보니 드럼 치면서 노래도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도 달라졌네요.”

향기 “보통 다른 밴드에서는 멜로디악기 연주하는 분들이 보컬을 같이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리듬악기 다루는 사람들인 덕원과 류지가 보컬을 해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잔디 “옛날에는 사람들이 브로콜리너마저를 가리켜 약간 못하는 밴드, 아마추어 같은 밴드라고 얘기했어요. 자꾸 훈수를 뒀죠. 노래가 전반적으로 괜찮은데 이 부분은 좀 그렇다 같은 얘기 말이에요. 최근에 페스티벌에 참여했는데 연주가 깔끔하다, 음원이랑 똑같다, 이런 반응들이 많았어요. 분명한 것은 브로콜리너마저는 브로콜리너마저 곡을 가장 잘하는 팀이에요. 단순히 곡을 똑같이 연주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런 감성을 재현할 수 있는 팀이 사실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랫동안 하나의 이름으로, 같은 멤버들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게 가능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밴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류지 “수입이에요. 계속해서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덕원 “정말 중요한 동력이 돈이에요. 수입이 있어야 다음 활동을 궁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얘기 흔히들 하잖아요.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되니 사람들한테 이름 알리는 게 중요하지 않아?’나 ‘줄을 잘 타야 한다’와 같은 말. 저는 음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수익을 남겨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액수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결국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어요.”

향기 “현혹되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되게 좋은 기회니까 해봐라’, 이런 제안에 너무 혹하지 않는 태도 말이에요. 선을 긋는 거죠. 보통 밴드를 한다고 하면 흥청망청 삶을 소진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음악을 위해 몸을 불사르고 모든 걸 걸고. 그런 걸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사실, 건강하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게 더 진짜거든요.”

 

―공연해서 수익이 나면 네 분이 똑같이 나누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실제로 많은 밴드들이 그런가요?

덕원 “맞아요. 그런데 다른 밴드들은 모르겠어요. 친분이 있어도 공개하지 않지요.”

처음 의기투합을 한 뒤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자신들의 운을 인정하는 건강함, 자신들만의 무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강함, 공연이 끝나고 사이좋게 수익을 나누는 건강함, 밴드 내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궁리하는 건강함이 브로콜리너마저에게 있었다. ‘열정페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는 요즘,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물질적 보상을 받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또 얼마나 당연한가. 이는 그들이 선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선은 나를 보호하는 선이면서도 나의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선이기도 하다. 음악에 예술에 목숨 거는 게 아니라 삶의 터전을 소홀히 하지 않는 선, 내 인생의 중심에 나를 두는 선.

 

―생활 속에서 자극을 받아야 삶도 흥미진진해지고 음악적인 영감도 떠오르잖아요. 그런 순간들이 언제인가요?

향기 “한 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하고 나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자신감이 충만해져요. 책을 읽다가 갑자기 엉뚱한 게 생각이 날 때도 좋아요. 일이랑 상관없는 다른 것을 할 때 역설적으로 일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요즘은 그런 마음으로 건반도 배워보고 있어요.”

잔디 “일하고 집에 가면 쉼 없이 육아를 해요. 올해 네살짜리 둘째도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서 오전에 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변화였지요. 그때 운동을 삶에 녹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아를 하는 와중에도 제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인지 몰라요.”

덕원 “어린이집에서 애들한테 인기가 많을 때 좋은 자극을 받아요. 제가 공동육아 어린이집(학부모와 교사가 운영 주체인 어린이집)에서 이사장을 맡기도 하는 등 열심히 활동하고 있거든요. 애들과 소통하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낍니다.”

 

―아이들과 소통이 되나요?

덕원 “그럼요. 네이티브 수준이에요.”(웃음)

 

―지금의 브로콜리너마저를 있게 해준 청춘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향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행복해하고 괴로워해야 해요.”

잔디 “‘서른’ 뮤직비디오에서 상사가 괴롭히는 장면이 두번 나와요. 처음에는 주인공이 그 행동에 대응하지 못해요. 대부분 말 못하고 그냥 속으로 삭이겠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요. 두번째 그랬을 때는 대응하잖아요. 그러니까 연습을 해야 하는 거예요. 나를 지키는 연습.”

덕원 “선을 잘 그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남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게 둬서도 안 되지만 내가 남에게 함부로 하는 것도 안 돼요. 그렇게 선을 긋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은 수익을 똑같이 나눈다. 강재훈 선임기자
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은 수익을 똑같이 나눈다. 강재훈 선임기자 ⓒ한겨레

 

위로하지 않는 방식으로 위로

그들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위로한다. 위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위로한다. 2집 <졸업>에 수록된 곡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에서 브로콜리너마저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런 말이 있어/ 그런 마음이 있어/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버릴 것 같아서.” 그들은 알고 있다. 어떤 슬픔이나 아픔에는 감히 손을 건네기 어렵다는 사실을. 상대의 처지에 공감했다고 해서 그것을 “괜찮아”나 “잘될 거야”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게 브로콜리너마저의 윤리다.

인터뷰를 하면서 멤버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단어는 ‘계속’이었다. 계속 연주하고 계속 이야기하다 마침내 ‘계속’을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는 사람을 떠올렸다. 무대 위의 진심은 그렇게 무대 아래로 전해진다. 그럴 때 무대의 경계는, 위아래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그들은 그런 음악을 한다. 그들은 그렇게 일을 한다. 생각해보니 그들은 ‘음악을 하다’라는 표현보다 ‘일을 하다’라는 표현을 월등히 많이 썼다. 음악은 그들에게 일이다. 노동이기도 하고 나를 발견하게 해주거나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일.

멤버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선’을 늘 염두에 둘 것이다. 선(線)을 지키면서, 자신이 말할 수 있는 선에서만 최선을 다해 이야기할 것이다. 이 선은 마침내 어떤 선(善)에 가닿을 것이다. 보편적인 노래 속에서 점점 특수해질 것이다.

 

ⓒHuffpost KR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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